“손 꼭 잡고 가는 거 보니 남자가 산을 잘 골랐네 그려. 허허.”'“그럼, 그럼. 그런 게 또 등산의 재미지.”'반대 방향으로 산을 타는 어르신 두 분이 껄껄 대시며 그들을 스쳐지나갔다. '‘등산의 고수인가? 가파른 계단을 올라오면서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던지시고.’'계단에만 집중하며 내려가던 보라의 눈동자가 의아함을 품고 시오에게 닿은 건 몇 초 지나지 않아서였다. 어쩐지 바로 보이는 그의 옆얼굴이 무언가를 들킨 사람처럼 굳어 있었다. '“선생님. 혹시…….”'“……빨리 가죠.”'“혹시 일부러 어려운 산 고르신 거예요?”'하지만 그는 산을 내려오는 내내 묵묵부답이었다. 손을 빼내려는 그녀의 손을 꽉 쥔 채로 성큼성큼 산을 내려가기만 할 뿐이었다.'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보라는 부들거리는 다리를 주체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어떻게 속일 수가 있어요?”'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듯 뻔뻔하게 앞서가던 시오는 마침내 멈춰서 그녀를 돌아보았다.'“누가 속여요?”'“초행이라는 거 알면서 힘든 산 고른 이유가 뭔데요?”'“마음이 확 뚫리고 싶다면서? 그래서 경치 좋고 다 내려다보이는 여기 고른 거지.”'“이…….”'“빨리 와요. 차 있는 데까지 걸어가야 하니까.”'“네? 거기까지 어떻게 걸어가요? 다리 아파서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겠다구요.”'절망이 가득한 눈동자엔 이미 서러움의 눈물이 고여 있었다. 주저앉은 채, 꼼짝도 안 하는 보라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시오는 터벅터벅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다리가 눈앞에 가득차자, 보라는 불만스런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녀를 내려다보며 피식, 심술궂게 웃던 그는 이내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췄다. '“다리 많이 아파요?”'“그걸 말이라고 하세요?”'미소를 띠운 채, 손을 들어 그녀의 이마에 맺혀있는 땀방울을 닦아준 그는 이내 쪼그려 앉은 채로 등을 보였다.'“업혀요.”'“내가 왜요? 싫어요.”'“다리 아파서 못 움직이겠다며.”'“…….”'“버리고 가요? 내가 못 할 것 같아요?”'보라는 우물쭈물하다가 그가 내뱉은 마지막 말에 결국 그의 등에 업혔다. 정말이지 다리가 후들거려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운동 좀 열심히 할 걸.'“정말 차 있는 데까지 걸어가요?”'“거기까지 어떻게 걸어가? 택시 타고 가야지.”'“왜 거짓말을 해요?”'“웃기려고.”'“하나도 안 웃기거든요.”'“그럼 다음에 웃겨줄게요.”'“됐거든요.”'보라는 바람에 살랑거리는 그의 머리칼을 바라보다가 바로 앞에 있는 넓은 어깨를 내려다봤다. 또다시 가슴이 두근거릴 채비를 하고 있었다. '“집에 가서 다리 풀어줘요. 안 그러면 내일 엄청 아플 테니까.”'“…….”'“귀찮다고 그냥 놔두면 알 이만한 거 박혀서 치마 못 입어요.”'“진짜요?”'“진짜.”'“큰일이네.”'“원래는 지금 걸으면서 풀어줘야 하는데 못 움직이겠다고 하니까.”'“그럼 내려주시던 지요.”'“싫어. 진짜…… 처음 만날 때부터 어찌나 손이 많이 가는지.”'반박을 하려던 보라는 처음 만난 날, 그에게 커피를 쏟았다는 걸 기억하고는 입을 다물었다.'“어쩌겠어. 먼저 반한 내가 죄지.”'보라는 멈칫한 채, 그의 뒤통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거 진짜, 진심……이에요?”'“어찌나 기억력도 형편없으신지.”'“뭐예요?”'시오는 피식 웃으며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사실, 더 쉬운 산을 찾을 수도 있었지만 약간의 스킨십과 더 가까워지기 위한 그의 음흉한 속셈이 숨어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계산착오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의 체력을 고려 못하고 너무 어려운 코스를 택한 것이다. 그래도 그녀와 더 가까워진 것 같으니 반은 성공한 셈이었다. 그의 입가가 살며시 올라가려는데 문득 뒤에서 미안해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선생님.”'“네.”'“안 힘드세요?”'“안 힘들어요. 나 체력 좋은 남자니까 이참에 확 잡아버려요.”'“뭐래.”'두런거리는 소리가 선선한 바람에 스쳐 점점 희미해질 무렵, 두 사람의 입가에 기분 좋은 설렘이 고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