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 족제비는 단지 죽이기 위해 살육한다.'''#... 1''화장대 옆에 있는 긴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노을의 얼굴이 자못 심각하다. 무릎 위로 껑충 올라가 있는 그녀의 청치마를 오빠인 규현이 보았다면 잘생긴 얼굴을 찌푸리며 갈아입으라는 말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상체를 숙여 자신의 앳된 얼굴을 거울 가까이 들여다보던 노을이 불만스레 입술을 삐죽거리자 그녀의 오른쪽 볼에 보조개가 폭 패여 들어간다. 올해 대학생이 된 그녀임에도 보통은 고등학생으로 보거나 심한 경우 중학생으로 보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어려 보인다는 건 쥐 눈곱만 한 장점에 비해 수많은 단점을 떠안아야 한다.'“됐어. 이게 뭐가 짧아?”'경영학과 여학생들 대부분이 키가 크고 성숙해 보이는 걸 생각하며 조금이라도 어른스럽게 보이기 위해 고른 짧은 치마를 맘에 걸려 할 이유가 없다. 청치마와 흰색의 반팔 티셔츠 위에 가벼운 7부 소매 재킷을 걸친 후 노을은 경쾌한 발걸음으로 학교를 향했다.'''전공기초 과목인 경영학 원론 수업은 가끔 매우 지루하다. 조심스레 주변 친구들을 둘러보던 노을은 김시후와 또 눈이 마주쳤다. 언제부터인가 그와 눈이 마주칠 때가 부쩍 많아졌다. 정확히 말하면 노을이 고개를 돌릴 때마다 그녀를 쳐다보고 있는 그와 눈이 마주친다. 어지간하면 눈이 마주치는 순간 고개를 돌려버릴 법도 한데 김시후는 그녀와 눈이 마주친 후에도 조금의 동요도 없이 노을을 응시하곤 한다. 항상 그녀가 먼저 허둥대며 고개를 돌려버릴 만큼 무언가 압도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그에게 공연히 짜증이 난다. 수업을 마친 교수가 나가자마자 노을에게 쪼르르 뛰어온 조민지가 그녀를 잡아 일으킨다.'“빨리 밥 먹으러 가자. 나 지금 아사 직전이야.”'“너 힘센 거 알고 있으니까 놔봐.”'“뭐 먹을까아. 아웅 행복해.”'“넌 맨날 먹을 때만 행복하지?”'“노을아. 민지야. 같이 가아!”'민지와 노을의 사이에 몸을 던지듯 끼어들어 팔짱을 껴는 신다희와 함께 학교 밖으로 걷는 그녀들은 재잘재잘 점심메뉴를 정하느라 의견이 분분하다. 이틀 후면 시작될 중간시험 때문에 노을은 요즘 수업을 마치면 항상 도서관으로 향한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행복한 포만감으로 식당을 나온 그녀들은 테이크아웃 커피를 먼저 산 후 노을의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기로 했다. 어릴 적부터 아이스크림 중독녀라는 말을 들을 만큼 노을은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그녀가 만약 살이 찌는 체질이었다면 진즉에 뚱보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테이크아웃 커피 매장으로 걷던 노을은 언제부터인지 빈번하게 눈이 마주치는 김시후의 모습이 떠올라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김시후 말이야, 좀 이상해.”'“뭐가?”'“그냥…… 말도 없고…….”'“김시후 선배 뭐가 궁금해? 첨에 딱 내 타입이라 찍었었는데. 내가 또 카리스마 있는 놈한테 약하잖냐.”'김시후의 이야기가 나오자 다희가 눈빛을 반짝이며 말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경영학과 남학생들 중 누구하고도 친한 사람이 없이 늘 혼자 다니는 김시후가 그들보다 2살이 더 많다는 것 정도는 그녀도 알고 있다. 대학에 들어와 두 달 가까이 지나는 동안 누군가와 대화라는 걸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그는 지독히 말이 없고 언제나 혼자이지만 그렇게 혼자인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게 조금도 불편해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