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하얗게 눈이 반짝이는 밤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들뜬 도시의 밤과는 딴 세상인 듯 높은 담벼락에 둘러싸인 저택의 정원은 달빛만 고고하다. 어둠이 내려앉은 저택의 유일한 불빛은 아무도 없는 응접실의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의 반짝이는 조명뿐이다. 커다란 창에 반짝반짝 꼬마전구가 반사되고 있다. '탈칵.'적막한 침실의 공기를 가르며 조심스레 문이 열리고 맨발 하나가 천천히 방안으로 내딛고 있다. 섬세한 뼈가 들어나는 하얀 발, 매끈한 종아리, 하얀 가운, 가느다란 목이 다 드러나도록 짧게 자른 단발머리가 달빛에 찰랑거린다. 여자는 가슴이 부풀어 오를 정도로 크게 쉼 호흡한 뒤 주먹을 꼭 쥐고 천천히 침대 쪽으로 다가갔다.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걸음을 옮기는 여자의 모습은 전쟁터로 가는 사람처럼 비장해 보였다.'침대에 무릎이 닿자 여자는 다시 한 번 쉼 호흡을 했다.'“후…….” '침실로 들어서면서부터 느꼈던 미미한 알코올 향과 익숙하지 않은 알싸하고 낯선 향기가 여자를 왠지 불안하게 하고 있었다.'여자는 숨이 가쁜지 입술을 약간 벌리고 떨리는 하얀 손을 천천히 올려 자신의 가운 끈을 잡아당겨 풀었다. 하얗게 떠오르는 나신…… 목소리를 잃고 다리를 얻은 인어공주의 나신처럼, 그렇게 달빛 속에 여자의 하얀 나신이 떠올랐다.'여자는 떨리는 손길과는 달리 재빨리 시트를 들추고는 결심한 듯 침대 속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그리고 엎드려 잠이 든 침대주인의 귓가에 다가가 속삭였다. '“오빠……. Merry Christmas…….”'“음…… 누구?” '오빠라고 불린 남자는 잔뜩 쉰 목소리로 뒤척이더니 여자 쪽으로 고개들 돌렸다. 그 때 구름이 달빛을 가리며 침실은 암흑 속으로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