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 명인 고등학교의 외국어 영역 평균 등급은 매우 높다. 그건 이 학교가 서울에서도 알아주는 명문 고등학교이기에 그렇기도 하지만, 언어도 아니고 수리도 아닌 하필이면 ‘외국어 영역’ 만이 유독 하늘을 찌를 정도로 더 높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 원인제공자는 믿기 힘들겠지만 단 한 명의 선생님이다. '남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그는 학생들을 엄청난 공포에 떨게 만드는 호랑이 선생님이라거나, 아니면 전교생의 성적 관리를 일일이 다 도맡아 하는 초능력자가 아닐까 하는데 천만의 말씀. 그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모두 탄성을 내지르며 감탄함과 함께 그 위력에 대해 적극 공감한다. '막 해가 뜨기 시작하는 이른 아침, 지금 그 장본인이 보는 이들마저 상큼한 기분으로 만들 만큼의 눈부신 미소를 지으며 출근하는 중이었다. 바로 현재 3학년 1~7반 영어 담당을 맡고 있는 강세준 선생! 그 주위에는 바늘을 쫓는 실 마냥, 한 무더기의 여학생들이 갖은 애교와 아양으로 완전무장을 한 채 졸졸 따라붙고 있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오!”'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이 선생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여학생들은 그를 발견하자마자 하나같이 교복 치마를 두 세단은 접어 올렸는지 치마 길이가 심히 짧았다. 그런 그녀들에게 한 손을 들어 화답하는 강세준 선생의 얼굴에 다시 한 번 말간 미소가 새겨지자 그 중 한 명이 반쯤 입을 벌린 채 그 모습을 넋 나간 듯 바라보다가 발을 헛디뎌 휘청거렸다. 주위 학생들은 이런 일 쯤은 굉장히 익숙하다는 듯 친구의 팔을 붙들어 넘어지지 않도록 도와주면서도 아침부터 안구 정화를 완벽하게 시켜주는 이 선생에게서 눈을 떼질 않았다. '모두들 순수의 절정을 달리는 해맑은 여고생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금방이라도 침을 줄줄 흘릴 듯 헤벌쭉한 얼굴들이었다. 강세준 선생,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한창 싱그럽게 피어나는 꽃인 그녀들을 저런 지경으로까지 만드는 걸까. '그에 대하여 말하자면, 잘 생겼다 라든지 멋있다, 혹은 예쁘다, 라는 한 마디 말들로 표현해 내기란 불가능했다. 그런 식상한 말로는 뭐랄까……, 터무니없이 부족하다고나 할까. 차라리 지구상에 존재하는 같은 인류가 아니라든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털끝만큼의 단점이 한 군데도 보이지 않는 창조주의 완벽한 걸작품 이라든지 하는 약간 비현실적인 묘사들 쪽이 더 어울린다고 할 수 있었다.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훤칠한 키와 남자답게 딱 벌어진 어깨, 그리고 아무나 갖추기 어렵다던 환상적인 신체적 비율. 항상 깔끔하게 차려입고 다니는 정장이 눈부시게 잘 어울리는 이 사람은 말 그대로 걸어 다니는 화보였다. 더군다나 여학생들과 여선생들을 단체로 쓰러지게 만드는 그 저주받을 미모는 웬만한 영화배우들이나 탤런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돋보기를 대고 봐도 잡티 하나 보이지 않을 법한 피부는 나이에 맞지 않게 보송보송하여 그렇지 않아도 동안인 얼굴을 더욱 어려 보이게 만들었고, 여자보다도 더 섬세하고 아름다운 얼굴 윤곽과 예쁘게 조각해 놓은 듯한 이목구비는 그저 잘생겼다는 느낌 뿐 아니라 지적이고 세련된 미남이라는 인상을 가져다주었다. 반듯한 이마를 덮고 있는 까만 머리카락은 어찌나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지, 감히 만져본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밍크털이나 실크보다 더 부드러울 게 분명할 거라고 다들 확신했다. '“선생님, 저번 수업 복습하다가 아무리 봐도 이해가 가질 않는 문제가 있어서요. 이따가 교무실로 찾아뵈러 가도 될까요?”'“그럼. 미영이 이 녀석, 요새 영어공부 열심히 하는 거 보니 기특한데? 언제든 찾아 와. 아니면 이따 내 수업 끝나고 질문해도 괜찮고.” '“꺅! 그럼 1교시 끝나고 찾아뵈러 갈 테니까 꼭, 꼭 기다리셔야 해욧!”'잘난 사람들이란 보통 반반한 얼굴값을 하느라 싸가지를 어느 정도 상실하는 건 인지상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건만, 저런 황홀한 외모를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선생은 지금 이 상황처럼 귀찮을 정도로 들러붙어 대는 여학생들에게 언제나 부드러운 미소를 잃지 않는 천사표인 데다가 혹시라도 수업에 관련되지 않은 쓸데없는 질문들이 나올 시에는 재치 있게 받아넘길 줄 아는 센스까지도 갖추고 있었다. '그러니 이 학교의 정원 중 약 50%를 차지하고 있는 여학생들이 조금이라도 더 그와 대화를 하기 위해, 혹은 그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 눈에 불을 켜고 교재를 통째로 씹어 먹을 듯이 영어 공부를 해 대는 건 당연한 결과였고 자연스레 이 학교의 모의고사 외국어 영역 평균까지도 무서울 정도로 수직 상승하게 된 것이다. '이른 아침부터 이렇듯 교문 앞을 요란 벅적지근하게 만들어 대는 여학생들을 적당히 상대해 주고 난 후에 좌측에 위치한 3학년 건물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세준은, 다른 여자아이들과는 달리 자신을 그냥 휙 지나쳐 가려다가 눈이 마주치자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만 조금 까딱 해 보이고 다시 등을 돌려서 가던 길을 걸어가는 한 여학생에게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약간이라도 손을 대거나 줄인 흔적이 없는 단정한 교복 차림에 잔머리가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깔끔하게 손질된 생머리, 학교 규정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 반질반질한 학생용 구두를 신고 가지런한 자세로 걸어가고 있는 그 여학생은 가까이 가면 비누 향기가 날 것만 같은 깨끗한 이미지를 풍기고 있었다. 현재 3학년 1반의 부반장을 맡고 있는 그녀는, 오늘도 어김없이 사이비 교주를 따르는 광신도를 연상케 할 정도로 강세준 선생의 옆에 찰싹 붙어서 그를 찬양해 대던 여학생들의 광경을 생각하며 걷는 내내 인상을 찌푸렸다. '그 꼴보기 싫은 장면을 보지 않으려면 등교 시간을 조금 늦추면 될 테지만 2년이 넘도록 이어 온 생활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란 힘들기 때문에 벌써 몇 달째 그녀는 매일 아침마다 원치 않는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걷고 있던 그녀의 앞에 갑자기 어느 거대한 무엇인가가 길을 가로막아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녀가 깜짝 놀랄 새도 없이 그 무엇인가는 몸을 굽히고 쑥 내려가더니, 풀려 있는 그녀의 구두끈을 긴 손가락으로 살며시 매만졌고 이내 예쁘게 매듭을 지어놓은 후 다시 일어나 그녀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3학년 1반 17번 이유나. 맞지? 그렇게 구두끈 풀린 채로 걸어 다니면 넘어질 수도 있어.”'세준의 친절한 태도를 저 멀리서 지켜 본 다른 여학생들은 서로 손을 맞잡고 꺅꺅거리며 난리도 아니었다. 전혀 익숙치 않은 이 상황에 양 볼이 사과처럼 붉게 달아오른 채 고개를 푹 수그러뜨린 유나는 어색한 목소리로 고마움을 표했다. '“아, 감사합니다…….” '“너희 반 오늘 첫 수업이 나니까, 조금 있으면 또 보겠네. 유나는 언제나 내 수업에 딴 생각 않고 똑바로 집중해 줘서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네.”'학교의 스타인 이 선생이 한껏 다정하게 말을 걸어옴에도 불구하고, 유나는 무미건조한 단답형의 대답만을 내 놓고는 살짝 허리를 굽혀 인사한 후 다시 건물 입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버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세준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학생이든 공평하게 대해야 할 선생으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아니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나는 개인적으로 참 친하게 지내보고 싶은 학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다른 여학생, 여선생들과는 달리 그에게 사심을 품고 접근하지도 않았고 1반의 임원으로서 언제나 있는 듯 없는 듯 할일만 야무지게 해 냈으며 학생의 본분인 학업에도 매우 충실했다. 여학생들에게는 사랑의 오로라를, 남학생들에게는 엄청난 질투와 시기심, 존경심이 골고루 섞인 부담스러운 눈길을 받고 있는 그에게 있어서는 보기 드문 학생인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열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쿵쿵거리는 소리를 내며 3학년 건물 계단을 부지런히 오르고 있는 유나 쪽에서는 그와 친하게 지낼 마음이 눈꼽만치도 없었다. 겉보기엔 거짓이라고는 조금도 섞여 있지 않은 듯 보이는 세준의 봄바람처럼 따뜻한 미소를 떠올리며,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가식 덩어리 같으니라고……. '유나는 알고 있었다. 그 번지르르하게 웃고 있는 얼굴 뒤에 있는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지를. 교내의 선생들과 학생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칭송하는 그에 대한 잘못된 진실들까지도! 친절하다고? 자상하다고? 더군다나, 착하기까지 하다고? 당신들은 모두 속고 있는 거에요. 저 거짓말쟁이 강세준한테! '이미 그 선생의 본성을 봐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아까 그녀에게 잠깐 보여준 그의 가증스러울 만큼 친절한 행동에 왜 아직까지도 가슴이 두근대는 건지, 붉게 물든 이 얼굴은 왜 진정이 되질 않는 건지.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나저나 오늘 1교시가 영어라구? 첫 시간부터 그 보기 싫은 인간 얼굴을 또 봐야 한다니……. 아, 정말이지 재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