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싱 유 (Kissing you) - 해외편.''''언제나처럼 학교 오후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설연은 체육관으로 가기 위해 용구가방을 들고 거실로 내려갔다. 그러자 들고 있던 무선전화기를 내팽개친 민 여사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뛰어왔다. '“설연아. 이 일을 어떡하냐?” '불안에 사로잡힌 설연은 민 여사의 팔을 붙잡았다. '“엄마. 뭔데? 왜 그러세요?” '“네 아버지 회사에 부도가 났다!” '“부도?” '깜짝 놀란 설연의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아버지는 한국전력공사의 전무였다. 아버지가 다니시는 회사가 부도 났다면 대한민국 전력은 누가 보급해 준단 말인가! '“엄마. 확실해?” '“내가 지금 거짓말하는 것 같니? 이것 봐라! 거실에도 전기가 안 들어오잖니!” '민 여사의 울부짖음에 천정을 올려다본 설연은 계단 참에 털푸덕 주저앉았다. 엄마의 말처럼 천정 샹들리에에는 활활 불타오르는 촛대가 꽂혀있었다. '“설연아. 이제 너에게 동경행 비행기 표를 끊어줄 돈이 없구나. 이번 챔피언십 대회는 포기해야겠다.” '“그럴 수 없어. 어떻게 따낸 동경행 출전권인데, 헤엄쳐서라도 갈 거야!” '믿기지 않는 말에 설연은 처절히 오열했다. 순간 주방 커튼을 헤치며 은회색 디지털 카메라를 든 남동생이 거실로 달려나왔다. '“무슨 소리! 누나는 국익을 위해서 동경에 가면 안돼!” '“그게 무슨 말이야? 국익을 위해 동경에 가면 안 된다니?” '놀란 설연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게 바로 한설연이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바다를 건널 수 없는 증빙자료다! 으하하하!” '뿔 달린 악마처럼 크게 웃은 남동생이 카메라를 거실 벽 쪽으로 돌리자, 디지털 카메라 렌즈에서 빛이 확 쏘아져나가며 거실이 깜깜해졌다. '설연은 영화관 스크린처럼 동영상이 펼쳐지고 있는 거실 벽을 쳐다보았다. '어느 새 커다란 스크린으로 변한 거실 벽에선 컨트리풍의 꽃분홍 경기복을 입은 한 소녀의 모습이 나타나 있었다. 빙판을 어설프게 활주하는 소녀의 모습에 설연은 파르르 떨리는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 장면은 바로 재작년 세계청소년대회에 출전했던 자신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만 정지! 스톱!” '설연은 절규했다. 하지만 스크린 속 소녀는 불안한 자세로 뛰어오르더니, 얼굴부터 빙판 위로 콱 처박으며 주르륵 밀려나갔다. '“으악! 저건 거짓말이야! 난 저렇게 심하게 넘어지지 않았어!” '“거짓말이라고? 그렇다면 다시 보여주마!” '남동생이 카메라 옆에 장착된 붉은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빙판에 얼굴을 콱 쳐 박았던 소녀가 후다닥 뒤로 달려갔다가 다시 똑같은 자세로 활주해 와 이번엔 더 우스꽝스러운 동작으로 떼구르르 굴러 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