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오는 눈을 부라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이 남자가 그 숱한 CF에서 생글생글 웃어가며 부드러운 남자의 대명사로 군림하는 이민재가 맞는지, 특히 요즘은 데드라인에서 하도 여심을 흔들어놓아 대한민국 남자들의 질투를 한 몸에 받고 있다는 그 남자주인공이랑 같은 남자인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좀 깨웠기로서니 이렇게까지 지랄을 떨 필요는 없잖아?’'단오는 이민재의 실체에 충격을 받아서 정신이 다 멍했다. 아무래도 이 남자, 카메라 앞에서만 부드럽고 착한 척하는 이중인격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람 오빠가 가장 존경하는 선배라기에 좀 괜찮은 줄 알았는데, 뭐 이따위야?’'단오가 그렇게 속으로 궁싯대는 동안 민재도 제 나름대로 사태를 분석해보고 있었다. '‘혹시 스태프가 아닌 일반인?’'처음엔 자신이 너무 윽박을 질러서 여자가 풀이 죽었나 하고 조금 찔린 마음에 요리조리 여자를 살펴봤는데, 보다 보니 뭔가 좀 이상했다. 민재의 시선이 이불 위의 상자로 옮겨갔다. 여자가 떨어뜨린 조막만한 상자는 화려하게 리본까지 달려 있어서 딱 봐도 선물상자가 분명했다. 팬도 아닌 스태프가 이런 선물을 들고 그를 찾아올 리 없지 않은가. 게다가 여자의 목엔 방송국의 STAFF임을 알려주는 목줄도 안 걸려 있었다. '‘이런 제길! 설마 내 팬?’'선물상자와 쭈뼛쭈뼛 서 있는 단오를 번갈아 쳐다보던 그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쪽, 촬영팀 스태프 아니야?”'“아닌데요.”'“그럼…… 혹시 팬?”'“죄송해요. 오빠가 여기서 주무신다는 말을 듣고…….”'‘딱 걸렸네, 젠장!’'민재가 터져 나오려는 욕설을 가까스로 참으며 대외용 미소를 만들었다. 늘 하는 일이라 그까짓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아, 난 또!”'“주무시는데 죄송했습니다.”'인사를 꾸벅 한 단오가 상자를 집어 들고 허겁지겁 돌아서는데, 그녀를 잡겠다는 일념으로 튕기듯 침대를 벗어난 민재가 더 빨리 그녀를 자기 쪽으로 돌려 세웠다. '“잠깐만! ……팬이면 그렇다고 말을 하지. ……그러니까, 음, 내가 방금 전에 악몽을 꿨거든. 스태프한테 막 시달리는 꿈을 꿨는데, 꿈이 어찌나 리얼한지 눈을 뜨고도 깬 걸 몰랐어. 꿈속인 줄 알고 나도 막 짜증을 낸 거야.”'“아아.”'“그 스태프가 꿈속에서도 어찌나 괴롭히던지. ……나 때문에 놀랐다면 미안해!”'“아,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무슨 남자가 자다 일어나도 저렇게 완벽할까? 미안하다며 환하게 웃는 이민재는 너무 눈이 부셔서 도저히 속세의 인간 같지가 않았다. 방금 전 눈을 부라리던 남자가 어쩜 저렇게 돌변을 했는지 믿어지지 않았다. 어쨌든 단오는 그의 눈부신 미소에 전염되어 덩달아 그를 따라 웃고 있었다. '“그럼 계속 주무세요. 실례했습니다.”'“그냥 보낼 순 없지.”'“에?”'“자다 일어나서 엉망이지만 그러려니 하고 봐줘.”'“엉망이라뇨? 아주 후, 훌륭하세요.”'“훌륭해? 하하하.”'손으로 대충 머리를 매만진 민재가 그녀 옆에 서서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해주더니 가만있는 단오를 의아하게 쳐다봤다. '“미안하지만 내가 좀 바빠서. 빨리 찍을래?”'민재의 턱이 단오의 손에 쥐어진 휴대폰을 가리켰다. '‘오 마이 갓!’'얼떨결에 그와 사진을 박은 단오는 연이어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선물 고마워. 나중에 풀어볼게.”'민재가 그녀의 손에 있던 상자를 낚아채서 바지 주머니에 넣더니 다시 한 번 환한 미소를 날리며 퇴장해버린 것이었다. 눈곱만큼의 의심도 없이 그 선물이 자신의 것이라고 확신하는 그에게, 그리고 그런 그와 스타 인증 샷까지 찍은 마당에 차마 그쪽 거 아니라는 말을 할 수 없어서 단오는 멀어지는 민재를 보며 발만 동동 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