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한테 관심도 없다면서? 왜? 왜? 여자보다 서류가 더 좋아?”'“도대체 뭐가 궁금한 거야?”'냉랭한 그의 질문에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가만히 있던 진주는 조금 물러나 앉아 팔짱을 꼈다. 그러고 보니 도대체 뭐가 궁금한 건지 스스로에게 의문이 들었다. 여자에게 관심이 없다면 그동안 여자들이 없었다는 말도 되니 조금은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한편으론 나도 여자인데 하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그 정도로 서류가 좋은 거냐고 묻는 것뿐이야.”'“그래, 서류가 더 좋아.”'현수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서류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여전히 팔짱을 낀 채 그를 보고 있던 진주는 호기심이 슬금슬금 올라오자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여자 정말 없었어?”'드디어 궁금했던 것을 묻고 나니 속이 시원해졌지만 냉기가 흐르는 그의 눈빛을 보게 되었을 땐 꿀꺽 마른침을 삼키고 말았다.'“이혼하겠다는 사람이 내가 여자가 있었든 없었든 무슨 상관이야?”'얼굴을 붉히며 뚱한 표정을 짓던 진주는 다시 엎드려 누워 애꿎은 잡지를 찢어져라 넘겨댔다.'“그래, 알았어. 알았다고. 그래, 나 이혼할 거야. 그러니까 기대하는 게 좋아. 나 고집 엄청 세거든? 한다면 꼭 하고 마는 엣지 있는 여자라고.”'“그만 좀 떠들어.”'위에서 내리꽂히는 그의 말 한마디에 책장을 넘기던 손을 우뚝 멈춘 진주가 고개를 휙 돌리고 여전히 서류를 보고 있는 현수를 노려보았다.'“내가 그 정도로 별로야?”'그의 시선이 서류에서 멀어지며 다시 그녀에게로 향했다. 진주가 발딱 일어나 무릎을 대고 일어서며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내가 키 작은 것 빼고는 완벽한 여자거든? 어떻게 이렇게 탐스러운 내 몸매를 보고 아무렇지 않을 수 있어? 응? 자기 남자 맞아?”'모든 남자들이 탐내하는 자신의 완벽한 몸매가 그에게 먹히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자 진주는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어디 남자들뿐이랴. 그녀 주변에 있던 모든 여자들도 찬사를 아끼지 않던 몸매였다. '씩씩거리며 쳐다보고 있는 진주에서 시선을 돌려 서류를 내려놓은 그가 한 손으로 미간을 주무르더니 오른쪽 손을 들어 그녀에게 까딱거렸다.'“응?”'“이리 와 봐.”'한숨을 푹 내쉰 그가 낮은 소리로 말하며 다시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진주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오른쪽 손을 뻗으며 그녀의 목을 감고 강하게 잡아당겼다. 놀란 진주가 그의 어깨를 잡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늦어버려 그의 품에 갇힌 채 그의 입술과 마주쳤다. '그의 입술은 성급하지 않았지만 굳게 닫혀 있는 입술을 끈질기게 공략해 왔다. 눈을 질끈 감은 진주가 파르르 떨며 숨이라도 쉬어보겠노라고 입을 열었지만 그건 그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뜨겁고 말캉한 것이 갑자기 밀려들어오자 당황한 진주는 다시 숨을 삼켰다.'머릿속이 빙글빙글 돌았다. 같이 어울려 다니던 친구 중에 모든 남자를 섭렵했다는 친구의 경험담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의 것인지 자신의 것인지 모를 타액이 넘어오고 넘어가는 동안 진주는 무아지경에 빠져버렸다.'“윽!”'어느덧 허리에서 가슴께로 넘어오는 그의 손길을 느낀 진주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인상을 찌푸릴 때 그가 갑자기 그녀의 어깨를 놓아주었다.'“하아, 하아. 뭐, 뭐야?”'그에게서 자유를 얻은 진주가 가슴팍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그런데 그는 전혀 감정이 없어 보였다. 심지어 숨소리조차 흐트러지지 않은 채 멀쩡했다.'“내가 너한테 왜 손도 안 대는지 궁금해?”'진주는 올라오는 화를 참기 위해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넌 아직 애기거든.”'“뭐?”'“난 남자지만 넌 아직 여자 아니다.”'“김현수!”'“그만 입 닫으시고 주무셔.”'“안 자!”'오기가 생긴 진주가 다시 소리를 높이자 귀를 꽉 막고 있던 그가 서류를 다시 집어 들었다.'“어머니한테 다 이를 거야.”'“뭐라고 하게?”'그러고 보니 무슨 말을 하겠다는 건지 정신이 없었다.'“오빠가 저한테 손도 안 대요. 아니면 오빠가 저랑 섹스를 안 해요. 뭐 이러게?”'그의 입에서 아무렇지 않게 흘러나오는 섹스라는 단어에 진주는 기절초풍하는 줄 알았다.'“풋. 그렇게 얘기해 봐. 재밌겠네.”'“변태 같아.”'“고마워.”'“미쳤지!”'“맘대로 생각해.”'원래 이러던 것은 아닌데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 버리자 짜증나고 신경질 나고 분하고 정말이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