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소리에 눈을 뜬 지미는 길게 기지개를 켰다.'“하아암.”'길게 하품을 하고 천근처럼 무거운 눈꺼풀을 손등으로 쑥쑥 문지르며 지미는 현관을 나갔다. 우유를 꺼내며 무심히 옆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지미의 눈은 휘둥그레졌다.'먼저 살던 사람이 이사 간 것은 한 달도 전이었다.'사람 사는 기색이 없어서 비어 있구나 했는데, 그녀도 모르는 새 누군가가 이사를 왔나 보다.'“어? 길슨 웨이드다.”'아니, 이런 횡재를.'옆집 문 앞에 휙 던져져 있는 신문에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금발의 미남 배우 길슨 웨이드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지미는 신문을 집어 들고 길슨 웨이드의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보기만 해도 황홀해지는 미소를 띤 할리우드의 미남 배우의 사진 위에 그보다 굵은 글씨의 헤드라인이 커다랗게 눈을 끌었다.''길슨 웨이드, 비공식 내한.'[할리우드의 대표 스타라 할 수 있는 길슨 웨이드. 이번에 출연할 영화 촬영을 앞두고 갑자기 내한한다는 의사를 밝혀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가 무슨 이유로 비공식 내한을 하는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길슨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오, 오! 길슨이 한국에 온다고?'지미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벙긋거렸다. 지미의 소원 중 하나가 길슨을 직접 만나보는 것이다. 원래 지미는 그의 손가락 끝에 한 번만 닿아도 원이 없는 길슨의 광팬이었다.'오오, 기쁘다. 길슨과 같은 하늘을 머리에 두고, 아 원래 같은 하늘이 맞구나. 그도 나도 지구인이니. 그러니 원래부터 같은 하늘 아래 사는 것이겠지?'아무튼 길슨과 같은 시대에 태어나 같은 하늘 아래 사는 것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지미였는데 이제 도시의 같은 공기를 숨 쉴 수 있게 됐다. 꿈처럼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팬레터를 보낸 것도 길슨 웨이드였는데.'본래 지미는 스타에 열광하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빠져들면 미칠 듯이 폭 빠져 버리는데 유일한 대상이 길슨 웨이드였다. 그래서 친구에게 번역을 부탁하고는 길슨에 대한 찬양을 늘어놓는 장문의 팬레터와 함께 그녀가 정성 들여 직접 그린 길슨의 초상화를 국제우편으로 보내고는 혼자서 행복해했었다.'지금 생각하면 그 초상화를 보낸 것은 참 안 하느니만 못한 행동이었지만. 눈 코 입이 비뚤어진 그림을 받은 길슨이 좋아나 했을까 모르겠다.'지미는 신문이 놓였던 옆집의 문이 슬그머니 열리며 손이 뻗어 나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한 채 그저 길슨의 기사에 푹 빠져 있었다. 그녀가 그러고 있는 사이 문에서 나온 손은 신문을 찾아 바닥을 더듬거렸다.'이게 어디에 있지?'석빈은 좀 더 손을 길게 뻗었다. 밤을 꼬박 새워 일을 한 것이 피곤하긴 한 모양이었다. 무겁게 휘몰아쳐 오는 잠으로 인해 눈이 떠지지 않는다. 대충 신문을 훑어보고 이대로 잠 속으로 파묻혀 내일 아침까지 잠만 잘 생각인지라, 잡히지 않는 신문에 조금 짜증이 났다.'마지막으로 손을 내밀던 석빈은 그의 손에 잡힌 무엇으로 인해 눈을 번쩍 떴다.'“어?”'잠이 확 달아나 버렸다. 그의 손에 잡힌 것은 여자의 발목이었다.'뭐야?'눈이 휘둥그레진 석빈만큼이나 발목의 주인인 여자의 눈도 커져 있었다. 신문을 펼쳐 들고 있는 여자는 동작과 표정이 모두 얼어 있었다.'“엄마야!”'“앗!”'먼저 움직이고 소리친 것은 여자였다. 기겁을 한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면서 여자가 급히 한 걸음 물러섰고 그로 인해 석빈은 균형이 무너졌다. 엇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석빈은 잡고 있던 손잡이를 놓치면서 앞으로 넘어졌다. 석빈이 간신히 나동그라질 뻔한 것만 모면하고 문 바깥으로 휘청 몸이 나온 순간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혀 버렸다.'젠장.'석빈은 욕을 중얼거리고 일어섰다. 석빈은 지금 속옷만 입고 있었다. 그것도 현란하게 늑대 캐릭터가 프린트된 아주 웃기는 트렁크. 이 여자가 여기서 소리라도 지른다면 그야말로 대망신이다. 그는 지미가 자신의 속옷으로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선방을 날렸다. 계속 소리를 지르려는 여자를 향해 쭉 손을 내밀었다.'“그거 내 신문인 거 같은데?”'그의 말이 여자가 내려는 비명을 막은 모양이다. 비명 대신 여자가 다른 소리를 중얼거렸다.'“벼…….”'안 들어도 뻔하다. 변태라는 말을 할 참인 게지. 이럴 때는 선제공격이 최고다. 아무 소리 못하게 해버려야 한다. 이 여자가 그의 신문을 가져가 보지 않았으면 이런 꼴을 당할 일은 없는 거 아닌가. 게다가 속옷을 입은 것이 변태라면 자기도 변태 아닌가? 여자도 잠옷차림이니 말이다. 저런 옷을 입고 자면 배기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여자의 잠옷은 온통 꼬불거리는 레이스가 정신없이 달려 있었다.'“왜 남의 신문은 가져가?”'뚱한 석빈의 말에 여자의 얼굴이 새빨개졌다.'“내…… 신문이야. 이 변태야.”'쾅! 문을 닫고 여자가 들어가 버렸다.'여자가 제 것이라 우기긴 했어도 신문은 분명 그의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자기 신문이면 가지고 들어가서 봤지 현관문을 열고 서서 읽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이 여자 거짓말쟁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