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운전''''''[내가, 내가 너처럼 운전 못하는 애는 첨 봤다. 더 밟아! 뒤에서 빵빵거리는 거 안 들려?]''[소리 지르지 마세요. 손 떨려서 더 못 하겠잖아요.]''[밟으라고!]''[밟으면 될 거 아니에요!]''있는 힘껏 밟는 순간, 은지는 자신의 눈앞을 향해 사정없이 다가오는 거대한 고급차의 모습에 놀라 브레이크를 급하게 밟았다. 그게 문제였다. 브레이크였다. 분명, 밟는 순간 그렇게 생각하고 밟았다. 그러나 도로주행용 자동차는 제트엔진을 달아 놓은 것 마냥 총알처럼 이름만 들어본, 뱀머라(BMW760Li)는 차를 받아 버렸다. 둔하기 그지없는 운동신경이 오늘은 왜 그리도 순발력을 발휘했는지, 운전강사가 브레이크 밟는 속도를 따라 잡고 말았던 것이다. 자동차는 심하게 찌그러졌다. 우리 학원차가…….''고급차 아니랄까봐 뱀은 거의 멀쩡했다. 우리 학원 차만, 심하다 싶을 정도로 범퍼가 하늘을 향해 입을 벌렸다. 나는 핸들에 엎드렸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난 기절한 것이다. 학원 접수할 때 든 보험료 만원이 절대 아깝지 않았다.''[야!, 은지야? 괜찮아? 야 다쳤냐?]''난, 죽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나와 밖의 상황 속에서 방황하던 강사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안도의 숨이 절로 나왔다. 강사가 과장되게 사과하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다고 말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꽤나 듣기 좋았다. 갑자기 말소리가 뚝! 멈추었다. 그런데, 그 후 사람들의 발걸음이 한꺼번에 내게로 몰려왔다.''[다친 겁니까?]''[놀라서 기절한 것 같습니다.]''그냥, 가. 나 기절 안했어. 알아서 깨어날 기회를 줘야지.''[병원에 연락 먼저 하시죠. 차야, 나중에 고쳐도 되는 것이고 사람이 우선 아닙니까? 이봐요! 학생!]''학생? 아가씨도 아니고 학생? 이런 땐 근사하게 아가씨 괜찮아요? 하고 나와야 하는 거 아니야? 내 나이 스물 셋이란 말이야. 대학교 4학년. 씨~!'갑자기 목덜미에 뜨듯한 숨결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뒤로 누군가 귓가로 입김을 불어 넣으며 저음으로 속삭이기 시작했다.''[그만 눈 뜨시지.]'''허걱.'''살그머니 눈을 떴다. 코앞에서 장난스럽게 반짝이는 눈을 하고 어떤 남자가 눈높이를 맞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된다는 말, 그건 정말 사실적인 표현이었다. 웃음기 머금은 그 남자는 나를 바라보면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정말로 참기가 어렵다는 듯 피식피식 웃고 있었다.''[그래 가지고는 여우주연상 못 받아.]''[야! 김은지! 이 자식 기절한척 했던 거야?]''이건 명백한 성희롱이다. 아무리 내가 어려 보인다 한들 스물세 살 먹은 여자의 뒤통수를 때리며 구박할 수 있단 말인가? 난 강사를 째려보았다.''[난 정말 기절했었단 말이에요.]''[내가 너 때문에 못산다.]''씨, 나도 못살아. 운전면허 따기가 이렇게 힘드냐? 나 학과는 98점으로 통과했단 말이야. 내 기필코 돈 벌어서 운전사가 운전하는 차, 타고 다닌다.'[너 평생, 버스나 타고 다녀 인마. 민폐 끼치지 말고.]''헉…… 운전사가 운전하는 차……. 버스.''강사와 내가 티격태격하는 사이 남자는 계속 웃기만 했다. 양복을 잘 차려입은 다른 남자가 그에게 다가가 조용히 속삭이자 시계를 보고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다시 나와 강사를 보았다.''[차는, 수리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아니, 수리한 청구서를 그 쪽으로 보내드리죠.]''[저희 학원에서 하는 정비소가 있어서…….]''조금이라도 수리비를 덜 나오게 하려고 용을 쓰는 강사 옆에서 나는 남자의 얼굴을 감상했다. 남자는 명함을 꺼내 강사에게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잽싸게 빼앗았다. 그러나 미처 명함에 적힌 글자를 읽기도 전에 강사의 서릿발 같은 말이 날아들었다.''[니가 수리비 낼래?]''난, 얌전히 명함을 강사의 손에 돌려줬다.''[요즘은 고등학교 다니면서도 운전배우는 사람들이 많은가 봅니다. 학생 잘해 봐요.]''고, 고, 고등학교?''남자는 망가진 뱀을 놓고 다─ 모라는 차를 타고 갔다. 너 죽(다이)었어. 나를 고등학생으로 봤다 이거지. 하지만, 만나지도 못 할 텐데 어떻게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에혀.''''''며칠 뒤!''[너, 보험료 아주 톡톡히 써먹었다. 매일 같이 사고 날 일이 뭐가 있냐며 보험료 아깝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더니. 내일 도로주행 시험은 잘 보겠냐?]''[왜 이러세요. 감각은 둔할지 몰라도 이제까지 다 한번에 패스했단 말이에요.]''[잘 해 보시죠, 고등학생.]''[으이씨!]''''''운명의 날.''오늘이 지나면 나는 드디어 드라이버가 되는 것이다. 팔지 못하게 근 두 달을 매달려온 언니의 티코가 내 것이 되는 것이다.''으하하하! 합격했다. 72점. 정말 아슬아슬했다. 역시, 난 시험 운이 있다. 이틀 뒤 면허증 찾으러 오라는 말과 함께 학원에서는 붉은 장미 한 송이를 줬다. 잘 말려서 후대에 가보로 물려줘야지.''행운은 나날이 나에게 손짓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 영어와 프랑스어를 본토 사람처럼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수행비서 자리 추천이 들어왔다며 교수는 내게 어떠냐는 의견을 물어왔다. 연봉은 이천 육백이었다. 허걱! 초봉 이천 육백. 당연히 하는 것이지 망설일게 뭐 있겠는가.''나는 머리도 펴고, 부티 나게 염색도 했다. 아깝지만 오이로 맛사지도 했다.(역시 아까워, 붙이다가 반은 먹었음) 특수직이기에 공채보다는 능력 있는 사람을 수시 채용한다고 했다. 물론 이미 합격이 보장된 한 것은 아니었다. 나 말고도 한명의 남자가 더 있었다. 남자 상사의 수행비서니 만큼 남자가 더 유리할 지도 모른다. 나는 이미 불리한 상황이었다. 한명씩 들어가는 면담이 아니라 회의실에 나와 나의 적을 동시에 불러들였다. 스무 명도 넘게 앉을 것 같은 회의용 탁자에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설마, 저 사람은 아니겠지? 부사장의 수행비서라고 했는데, 저 나이에 부사장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어떻게 하긴, 회장의 아들로 태어나면 되겠지.''[앉으시죠.<──(영어)]''둘 다 앉았다.''[만나서 반갑습니다.<──(프랑스어)]''수많은 질문들 끝에 뜬금없는 질문이 날아 왔다.''[10년 후엔 자신이 뭘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영어)]''나의 적. 정말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기업 경영이 어쩌고저쩌고……. 나? 백조나 안 되어 있으면 다행이지.''여기서 정말 다행인건, 변장은 역시 무섭다는 것이다. 내가 부사장의 뱀을 들이박은 그 사람이라는 걸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듯 했다. 허긴, 고등학교 졸업한 사람이 이런대 면접을 보러 올리는 없으니까. 죽는 날까지 알아보지 못하기를. 그래야 나는 취직할 수 있으니까.''[김은지 씨는?]''나의 적의 화려한 꿈에 대한 이야기가 끝났나보다. 잠시 나는 갈등했다. 진짜 내가 바라는 것을 말해야 할지, 아니면 약간의 아부성 발언을 해야 할지. 그런데 부사장의 눈이 웃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야겠다. 어흑.''[(불어)세계여행을 하고 있을 겁니다. 제 꿈은 여행가 입니다. 제가 외국어에 열심히였던 것은 세계여행을 꿈으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영어)그렇다면 언제든지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에 뛰어 들 수 있다 그런 뜻입니까?]''잠시 또 갈등, 그러나 밀어붙임.''[(영어) 네.]''부사장, 재미있다는 듯 웃는다. 나는 하나도 재미없다. 나의 적도 웃는다. 재수 없는 놈, 묘하게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면접이 끝났다는 말에 정중히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회의실로 안내했던 사람이 봉투를 내밀었다. 차비라고 한다. 차비가 참, 많이 들어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친구들과 취하도록 술을 먹었다. 역시, 아부를 했어야 했다. 난, 너무 솔직한 게 탈이야. 놀이터 정말 오랜만이다. 바람도 시원하고, 여기서 쫌만 술 깨고 가야지.''''''가끔 행운의 여신이 실수를 하는 때도 있는 것 같다. 연락이 왔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하라고. 두 달간의 인턴을 거친 후 정식 발령이 있을 거라고 했다. 그날 저녁, 난 이천 육백 만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적어 봤다. 행복했다.''''''Best Driver''안전운전''음주운전''난폭운전''대리운전''무면허 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