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흑……”'그렇게나 가쁘게 숨을 몰아쉬던 한나는 차에 올라타기 무섭게 서럽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 처연한 울음소리에 신형은 선뜻 괜찮으냐는 말을 물을 수가 없었다.'선혈이 흐르는 곳은 손바닥만이 아니었다. 그녀를 안고 뛰는 사이 한쪽 샌들이 벗겨진 발에서도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대체 무슨 일일까…….'다행이 그녀는 와인 케이브 안에서처럼 숨을 몰아쉬지는 않았다.'“잠깐 차에 있을 수 있지? 이 차장한테 얘기하고 올 동안 마음 가라앉히고 있어.”'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인색한 위로라고 생각하며, 신형은 조수석의 문을 닫았다. 지하도 아니고 파스타 하우스 정문 안에 있는 주차장이니, 한나를 잠시 혼자 둔다고 해도 위험할 일은 없었다.'지하에 있는 와인 케이브 안으로 들어선 그는 자리에 앉아있는 진호에게 양해를 구했다.'“미안하게 됐습니다, 동행한 직원이 몸이 좋지 못해서 먼저 자리를 비웠습니다.”'“저희도 이만 일어나죠.”'신형은 자신이 하려던 말을 먼저 하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꼿꼿한 눈매와 한 일 자를 그리듯 굳게 다물어진 입매는, 그간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이진호의 얼굴이 아닌 것 같았다.'“오늘 치프로 승진한 터라 여러모로 부담이 돼서 그랬던 것 같은데, 마음이 상했다면 이해하세요.”'“제가 왜 그런 일로 마음이 상해야 합니까?”'되묻는 그에게서 신형은 까닭 모를 불편함을 느꼈다. 섬광 같은 예감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빠른 속도로 스쳐지나간 예감은 그의 본능을 자극했다.'“혹, 장 대리를 아십니까?”'“후후……”'“!”'번연히 다 아는 사실을 왜 묻느냐는 듯 헛헛한 웃음을 던지는 진호를 보며 그는 확신했다. 분위기 파악이라곤 눈곱만큼도 하지 못하는, 둔감하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한나가, 지하라는 공간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그 친구 안고 뛰어나가는 모습 봤습니다. 괜한 겉치레 말은 이쯤에서 그만두고 나가 보시죠.”'“알겠습니다. 그럼 주중에 회사에서 보도록 합시다.”'저돌적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공격적이라고 해야 할지, 그간 보인 서글서글함과 달리 이진호는 갑작스러운 감정의 변화를 엿보이고 있었다. 태연한 척 헛헛한 웃음을 보이는 그 역시 당황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와인 케이브 문을 나서는 찰나, 그가 물어왔다.'“사적인 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뭐죠?”'“장한나하고는 어떤 사이입니까?”'극도로 감정이 상하는 건 이진호의 말 때문이 아니다.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가 애써 감추려고 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감춰지지 못하는 감정의 변화 때문이다.'영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몇 차례 만나 본 이진호는, 어떤 상황 앞에서도 스스로를 컨트롤할 줄 아는 대범함이 돋보인 인물이었다.'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할 만큼 당황한 순간, 자신에게 한나와의 관계를 물어오는 그에게 신형은 강한 반감을 느꼈다.'마치 어느 한쪽이 피해자인 것처럼, 다른 한쪽이 가해자인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반감이었다.'“사적인 질문이니 노코멘트 하겠습니다.”'계산을 하고 난 신형은 그에게 차를 어디에 세워두었느냐고 물었다.'“지하 주차장에 있습니다.”'“여기서 인사를 나눠야겠군요. 전 정문 쪽에 차를 세워둔 지라. 그럼 이만.”'주차장과 연결된 지상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와 헤어진 신형은 주차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기껏해야 이진호와 한나 사이에 얽힌 사적인 문제이겠지만, 사뭇 느낌이 좋지 않았다. 아마도 생경스럽기 그지없는 한나의 모습이 적잖은 충격으로 각인된 때문인 듯 했다.'성큼성큼 주차장 안으로 들어선 그는 조수석 문 앞으로 다가섰다.'“!”'차 안에 있어야 할 한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거칠게 조수석의 문을 연 그는 황당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차장 바닥에 떨어져있는 한 짝의 샌들이 눈에 들어왔다.''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는 회오리가 점령한 머릿속엔 바람 한 점 불어오지 않는다.'“병원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니우?”'늙은 택시기사의 걱정스런 목소리가 늘어진 해초처럼 가쁜 호흡을 휘감는다. 통증조차 느낄 수 없는 손바닥을 가슴에 얹고, 답답한 숨을 토해보지만 간절한 바람 한 점은 끝내 들숨 끝에 묻어나지 못한다.'택시가 대문 앞에 멈춰 섰다.'왼손으로 핸드백을 연 한나는 택시비를 지불하고 천천히 차에서 내렸다.'텅 비어버린 머릿속이 견딜 수 없는데, 터질 것처럼 답답한 가슴을 견딜 수 없는데, 차가운 바닥에 닿은 발바닥에서 이는 통증은 고스란히 살아있었다. 찢겨지고 상한 살갗이 멀리 달아나듯 극심한 통증이, 다문 입술 사이로 신음을 토하게 했다.'걸음을 옮길 때마다 온몸을 쪼갤 것 같은 통증이 찾아들었다. 겨우 대문을 연 한나는 난간에 몸을 기댄 채 조심조심 계단 위로 올라섰다.'“으음……”'터져 나오는 신음을 삼키느라 입술을 꼭 때문 그녀는 현관문을 닫음과 동시에 쿵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