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어떻게 하실 거예요?”'“구두?”'“당신이 무참히 짓밟은 내 아가 말이야!”'“음……. 아, 생각났다.”'이 말투는 일부러 약을 올리려는 게 분명했다. 준아의 표정이 점점 더 일그러진다.'“어떻게 하실 거냐고요.”'“똑같은 걸로 구해 두면 돼?”'“당연하죠. 그리고 내 발을 밟고 간 무례하기 그지없는 정신적 피해 보상비까지 내놔요.”'도하는 기가 찬 듯 웃었다. 그녀가 이참에 자신에게 돈을 뜯어내려는 심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정말이지 세상 무서운지 모르는 여자였다. 자기가 누군 줄 알고 이렇게 떠드는가. 법적 근거를 대며 겁을 줄까 생각하다가 도하는 부드러운 음성을 이었다.'“좋아, 줄게. 지금 나올 수 있어?”'“지금?”'“1시간 안에 보자. 한국 호텔로 와.”'“한국 호텔이라뇨?”'“사람들 많은 곳에서 보면 나한테 얼마나 큰 타격인지 몰라서 그래?”'조금 놀라긴 했지만 도하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그는 톱스타이니 아무 데서나 쉽게 여잘 만날 순 없겠지……. 그러나 여전히 호텔이란 말에 망설여졌다. 그 순간 준아의 눈에 죽어간 신상 구두가 들어왔다. '“네. 당장 만나죠.”'그렇게 전화를 끊은 준아는 빠르게 집을 나섰다. 그래, 만나서 아주 껍데기까지 다 빨아 먹고 올 테다. 이 건방진 자식아! 준아는 풀리지 않은 분노로 이를 갈았다. '30분 후, 호텔 앞에 도착한 준아가 다시 휴대폰을 들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도착했는데 어디로 가면 되죠?”'“1205호.”'그는 자신의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뚝 끊는다. 어쩜 이렇게 싸가지가 없으신지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그냥 확 호텔에서 단둘이 사진 찍어 인터넷에 배포할까 하다가 그건 너무 비양심적인 일이라 참기로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계속 이 태도로 나온다면 진짜로 일을 저지를지도 모르는 여자였다. 그에게 또다시 발을 밟힐까 봐 녹색 운동화를 신은 그녀가 1205호 앞에 도착했다. 천천히 노크하던 그녀는 혹여나 사람이 있으면 어쩌나, 맘이 조마조마하다. 그리고 곧 철컥, 문이 열리며 젖은 머리에 하얀 가운을 입은 강도하의 모습이 보였다. 그 외모가 얼마나 섹시한지 그대로 정신을 잃을 뻔했지만, 준아는 죽은 구두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들어와.”'그의 말이 떨어지고 그녀는 천천히 방 안으로 발을 옮겼다.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운 스위트룸이었다. 이런 방에서 자려면 하루에 얼마나 필요할까? 준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진짜 왔네.”'“그럼, 가짜로 와요?”'준아는 날카롭게 말했다. 그를 물어뜯을 생각만 가득한 그녀의 눈이 그를 흘겨봤다.'“됐고요. 말했다시피 구두하고 피해 보상비 줘요. 그게 얼마나 소중한 구두인 줄이나 알아요?”'도하는 그녀의 얼굴을 희미하게 웃으며 바라봤다. 보아하니, 아직 어린 여자애 같은데 벌써 돈이나 밝히고.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그리고 사람 발을 밟았으면 미안하다고 하던가. 그랬으면 나도 이렇게 화내진 않았잖아요. 안 그래요?”'“너.”'도하가 짧게 말하자, 준아의 입이 자연스레 다물어졌다.'“여기가 어딘 줄 알고 와?”'“네?”'“여기 호텔인 거 몰라?”'“그런데요?”'“남자가 호텔로 부른다고 진짜로 오다니 진짜 돈만 원하는 거 맞아?”'도하는 빈정거리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살짝 당황한 준아가 천천히 뒷걸음질쳤다.'“무슨 말이에요? 당신이 사람들 보면 안 된다고 여기로 오라고…….”'“그 말을 믿는 게 이상한 거 아니야? 남자가 여자를 호텔로 불러내는 이유가 뭐겠어? 그리고 여자가 호텔이란 걸 알고도 왔다면 말 다한 거 아니야?”'저런 순진한 얼굴로 거짓말을 하다니, 참 맹랑한 여자다. 도하의 몸이 더욱 그녀에게 다가왔고 그러면 그럴수록 준아의 발도 계속 뒷걸음질쳤다. 준아는 이해할 수 없는 듯 계속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난 그런 생각은 조금도 없었어요.”'“그런 생각? 무슨 생각?”'그의 입술은 더 말려 올라갔다. 그러면 그럴수록 둘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진다.'“구두는 날 다시 만날 빌미였고 날 만나면서 돈까지 얻으려던 건가?”'“왜, 왜 이래요.”'“만나서 뭐하려던 건데?”'“오, 오지 마. 더 가까이 오면 소리 지를 거야. 가, 가만 안 둘 거야.”'그의 눈빛이 노골적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다. 준아는 도하의 행동에 점점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강도하와 자신 단, 둘. 그가 무슨 짓을 한다고 한들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뒷걸음질치던 준아가 침대에 발에 걸려, 그대로 침대로 쓰러졌다. 당황한 그녀의 손이 살며시 떨려온다.'“오, 오지 마! 지, 진짜 가만 안 둘 거야! 인터넷에 확 올려 버린다?”'“인터넷? 뭐로 올릴 건데? 증거도 없잖아. 루머는 어차피 루머잖아?”'“하지 마!”'공포감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는 걸 반복하며 그의 얼굴을 피했다. 그럼 그럴수록 그와의 거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세상에 아무리 싸가지가 없어도 이 정도일 줄이야. 무엇보다 이대로 인생 종 치는 것은 아닐까. 끔찍한 생각마저 들었다. 눈물이 나올 것같이 무서웠다.'“얼마나 뜯었어?”'“뭐?”'“이런 식으로 몇 남자나 등쳐먹은 거야?”'바로 앞까지 다가온 도하의 물음에 준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의 팔이 침대 위에 올려지며 좀 더 그녀에게 다가설 무렵. 준아는 짧은 비명과 함께 그의 배를 걷어찼다.'“악!”'그가 배를 부여잡으며 침대 옆으로 고꾸라졌다. 재빨리 침대에서 벗어난 준아는 놀란 나머지 옷을 여미며 눈물이 나왔다. '“야! 너 죽을…….”'몸을 번쩍 일으키며 소리를 지르던 그의 입술이 멈칫거렸다. 그녀의 눈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