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오신 거예요?”'“땅콩 너 보러.”'“절…… 왜…요?”'“너. 바보냐? 눈치라는 건 안 키우지?”'“…….”'“좋아해.”'“!” '“지금 이 상황에서 할 말은 아닌데……. 네가 좋다. 오늘부로 네 남자친구한테서 널 빼앗아 올 거야. 그 마음 하나로 여기까지 왔어. 널 좋아해. 은설하.”'줄곧 그의 시선을 피하며 창밖만 바라보던 설하가 창백한 얼굴을 들어 준휘를 바라보았고 두 사람의 시선이 한데 얽혔다. '[미리보기]''“네? 자동차 보험이 만료 됐다구요? 그, 그럴 리가.” '[보험 갱신하라고 안내서도 몇 차례 나갔을 텐데……. 확인 안 해 보셨어요?]'“네. 아니 연락은 받은 거 같았는데……. 언제 까지였는지 기억이……. 깜빡했나봐요.”'[보험갱신 기간이 3일이 지났네요. 보험이 만료되는 날부터 매일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빨리 보험 가입하시고 피해차량 운전자와는 합의를 보셔야겠네요.]'“하……합의요? 만약 합의를 못 보면 그……그럼, 저 경찰서 끌려가나요?”'[피해 차량 운전자가 걸고넘어지면 그럴 수도 있죠. 그럼 문제가 커지니까. 이런 무보험 사고는 개인적으로 합의를 보시는 게 가장 좋습니다. 일단 가해자께 100% 과실이 있기 때문에 피해자 분 잘 설득하셔서 경찰에 사고접수까지 가지 않게 하시구요. 만약 터무니없는 합의금을 제시한다면 재판까지 가셔야 할 겁니다. 숙지하고 계세요. 고객님, 원만한 합의 보시고 빨리 보험 재가입부터 하세요.]'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리고 말았다. 귀가 윙윙 울리면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설하는 침대에 풀썩 주저앉았다. 휴대폰을 든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그 남자에게 보험으로 해결하겠다고 큰소리를 뻥뻥 쳤는데 무보험 차니 합의 해달라고 어떻게 말을 할 수 있을까. 피해자가 설령 합의를 해준들 탈탈 털어도 나올 돈이 없는 엄마 주머니에서 몇 백 또는 몇 천이 될지도 모르는 돈을 어떻게 받아내나?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왔다. 내 돈 내 삼천만 원 만 있었어도……. 설하는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에 손으로 가슴을 퉁퉁 쳐댔다. '모든 게 후회스러웠다. 그렇게 열 받아서 차를 타고 나가는 게 아니었다. 아니, 그 남자 얼굴에 맥주를 퍼 붓지 말았어야 했다. 편의점에서 마신 소주 한 팩에 이성을 상실 했던가보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 모든 걸 되돌리고 싶었다. 설하가 침대에 걸터앉은 채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한참을 앉아있는데 마침 그녀의 전화기에 멜로디가 흐르며 전화가 걸려왔다.'“여보세요.”'[야, 땅콩.]'“땅콩? 누구세요?”'[어제 네가 맥주 끼얹은 쉐끼다.]'“네?”'[나 병원 입원했으니까 합의금 들고 나와.]'“네에?”'[평화병원 701호. 20분 준다. 늦으면 10분당 합의금 백만 원씩 올릴 거니까 알아서 해.]'“배…배…백만 원이요? 저…저…저기요.”'뚜뚜뚜. 일방적으로 전화가 끊겼다.'“여보세요. 여보세요?”'설하가 전화기를 붙들고 다급하게 상대를 불렀지만 무심한 신호음만이 울릴 뿐 대답이 없었다. 10분당 백만 원? 잘못 걸려도 한참 잘못 걸렸구나. 이 사기꾼 쉐끼. 내일 보자는 게 바로 이거였어? 양아치인줄은 그 반반한 얼굴 보고 짐작했지만 이렇게 까지 질이 나쁜 놈 일 줄이야. 설하는 대충 옷을 끼어 입으며 엄마 미옥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늘 집에서 빈둥대던 형부와 언니도 오늘따라 어딜 나갔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이지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이란 생각을 하며 설하는 대문을 나서자마자 꽁지에 불붙은 새 마냥 퍼드덕 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평화병원은 도보로 삼십분 거리지만 촌각을 다투는 중대한 사안인지라 설하는 큰길에서 택시를 잡아탔다. '강준휘라는 이름이 쓰여 있는 병실 앞에 선 설하는 노크를 한 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병원복 차림의 준휘가 침대위에 누워 링거를 맞고 있었다. 어제처럼 완벽한 차림이 아닌데도 그의 외모에서는 빛이 났고 설하는 자체발광이란 말은 이런데 쓰는가보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준휘의 눈빛이 자신에게 고정되자 설하는 조금은 주눅이 든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어제까지 멀쩡해놓고 왜 입원을 하고 그러세요?”'“멀쩡하긴 누가? 원래 자동차 사고는 후유증이 무서운 거야. 당일에는 근육들이 놀라서 모르다가 다음날 긴장이 풀리면서 아프거든.”'“그래도 이건 아니죠. 게다가 일 인실이라니…….”'“아니긴 뭐가? 시끄럽고! 아래 내려가서 커피한잔 사와.”'보자마자 심부름? 설하는 준휘의 명령조에 기분이 나빠져 자신이 가해자라는 사실도 잊고 목소리를 높였다.'“커피를 사오라고요? 내가 왜요?”'씩씩거리는 설하를 향해 준휘가 싱긋 미소를 지어보였다.'“너 나한테 소리 지르면 안 될 텐데?”'“안 되긴 뭐가 안 돼요?”'“너…… 차 무보험 차더라.”'“네에? 헉. 그걸 어떻게…….”'“합의 안 해주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조용하고 나긋한 말투지만 설하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짧은 순간, 죄수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과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부모님의 얼굴이 오버랩 되면서 심장이 다 쪼그라드는 것 같아 설하는 다급하게 남자의 손을 움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