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지 모르게 귓가에 들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소리를 막기 위해 손을 움직였다. 직감으로 이미 해가 뜬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을 알았지만 눈이 떠지지 않는 건 간밤에 늦도록 친구의 푸념을 들어주며 저녁도 먹지 않은 채 쉼 없이 들이켰던 술 때문이었다.'“뭐야. 뭐가 이리 시끄러워.”'시끄러운 소리를 막기 위해 움직였건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제야 제 손이 귀가 아니라 눈을 덮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양 귀를 막아 보지만 소용없었다.'“제발 좀!”'귀를 막아도 소리는 전혀 작아지지 않았다. 이에 귀를 막은 손을 움직여 이불을 끌어 올렸다. 머리끝까지 뒤집어썼음에도 소리는 여전히 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되레 더 크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은민은 이불을 걷어내며 벌떡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머리가 울리며 뭔가가 머리를 관통하는 듯한 느낌이 스쳐갔다.'“에이 씨. 진짜.”'깨질 듯한 두통에 손을 들어 머리를 감싸 안았다. 채 깨지 않은 잠으로 인해 눈을 억지로 떠 보지만 빡빡함에 눈이 아파왔다. 은민은 커다란 눈을 깜빡여 빡빡함이 사라지길 기다렸다. 눈의 통증이 조금 사라지면서,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어 소음이라 치부했던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뭐야, 이거. 울음소리? 아이?”'아이의 울음소리. 그것도 작은 아이의 울음소리인 것처럼 그 소리는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힘이 없었다. 은민은 허겁지겁 침대에서 내려와 벌컥 현관문을 열었다. 이미 잠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눈의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눈앞에 보이는 건 두꺼운 하얀색 포대기에 쌓여있는 작은 아이뿐이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악을 쓰며 운 것인지 아이의 조막만 한 얼굴이 붉게 변해 있었다. '은민은 뭔가에 이끌린 듯 다가가 아이를 품에 안았다. 아이를 처음 안아 보는 거라 서툴기는 했지만 혹여 아이를 품에서 떨어트릴까, 너무 세게 안아 아이를 아프게 하는 것은 아닌가하여 그 손길은 조심스럽기만 했다.'품에 안기자마자 자지러질듯 울던 아이의 울음소리가 멈췄다. 엄마의 품이라고 여긴 것일까? 붉게 물들었던 아이의 얼굴이 제 색을 찾기 시작하자 입을 크게 벌리고 악을 쓰며 울 때는 보이지 않던 아이의 얼굴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예쁘다.”'이렇게 가까이에서 작은 아이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제 품에 안겨 커다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까르르 웃는 아이의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인 것처럼 예뻐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절로 지어지는 웃음에 아이를 품에 안은 은민이 오른손을 움직여 거짓말 조금 보태어 제 주먹보다 작은 아이의 얼굴에 검지를 가져갔다.'“우와. 부드럽다.”'잡티 하나 없이 뽀얗고 매끄러운 것이 너무도 부러웠다. 나이는 속이지 못하는 것일까? 수분기를 잃어가고 탄력을 잃어가며, 고가의 화장품의 도움이 절실한 제 피부를 떠올리며 은민은 아이의 얼굴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볼을 톡톡 건드리던 은민의 손가락이 조금씩 아래로 움직였다. 손가락이 아이의 입가에 내려갔을 때였다. 웃고 있던 아이의 입술이 오물오물 거리며 은민의 손가락 쪽으로 움직였다. 그 작은 움직임에 은민의 손가락이 아이의 입속으로 쏙 들어갔다. 갑작스런 상황 변화에 은민이 화들짝 놀라며 제 손을 거둬들였다.'“뭐야? 이 느낌은.”'뭐라 표현할 수 없는, 처음으로 느끼는 느낌이었다. 포근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흐뭇하다고 해야 하나?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에 은민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저절로 시선이 가는 작은 아이, 처음으로 보는 낯선 아이지만 왜인지 모르게 시선이 떼어지지 않았다. 제 품에 폭 안긴 채 따뜻함을 주는 아이가 사라질까 은민은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아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드는 생소한 감정이 어떤 것인지 떠올리던 은민은 아이의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아차 싶었다. '“근데 이 아이는 누구야? 왜 여기 있는 거야?”'주의를 둘러봐도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이는 없었다. 그와 동시에 뭔가가 은민의 머릿속을 관통했다.'“버려진……, 거야?”'생각이 쉽게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버려진다는 게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은민이었다. 그래서 아이를 품에서 떼어 놓을 수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들자 아이를 바라보며 지었던 웃음이 씻은 듯 사라졌다.'은민이 살고 있는 건물 하나 빌라 3층은 긴 복도 옆으로 두 집이 있었다. 은민이 살고 있는 301호와 누가 사는지 알지 못하는 옆집 302호. 그리고 보니 은민이 서 있는 곳은 두 집의 중간이었다. '자기가 알지 못하는 아이인 건 분명하니 저 아니면 다른 이와 연관이 된 아이일 터. 그러면 딱 한 집밖에 없었다. 머릿속에 ‘아이 = 옆집’이라는 수식이 정리되자 굳어 있던 은민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은민은 질끈 세게 눈을 감았다 뜨고 긴 숨을 들이쉰 후 302호 문을 두드렸다. 그 소리는 마치 문을 부수기라도 할 것처럼 컸다.''이른 새벽까지 필름이 끊기도록 술을 마신 사람에게 있어 소음이라 치부할 소리는 끔찍하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움직임의 여파로 머리가 울렸다. 술을 많이 마신 게 문제가 아니었다. 소주와 맥주를 반반씩 섞여 마셔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는 제 형의 행방을 물으며 찾아 달라 떼쓰던 이와 술잔을 기울인 게 화근이었다. '엎드린 상태에서 손을 움직여 베개로 양 귀를 막았다. 그럼에도 소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에 자포자기를 한 듯 긴 한숨을 내쉬며 귀를 막고 있는 새하얀 베개를 치웠다. 그와 동시에 아이의 울음소리가 기다렸다는 듯 파고들었다. '“에씨. 뭐야. 애기가 울면 달랠 것이지. 도대체 뭐하는 거야! 새벽부터!”'온갖 짜증을 담아 투덜거렸음에도 멈추지 않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이불을 뒤집어쓰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이건 아이 울음소리가 아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고로 난 다시 잠이 들 것이다.’ 그 최면이 통한 것인지 끊어지지 않고 들리던 아이의 울음소리가 철컥 소리에 이어 멈췄다.'“진작 달랠 것이지.”'아이의 울음소리가 멈추자 적막이 내려앉았다. 그럼에도 한번 사라진 잠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고, 잠이 사라진 빈자리에 지독한 두통과 숙취가 자리 잡았다.'“속 쓰려 죽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