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도 안 돼!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럴 수가잖아!'묘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이사를 그녀는 유령이라도 만난 듯 기겁한 얼굴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일 년 동안 자신이 부렸던 갖은 추태와 온갖 주접이 머릿속으로 휙휙 지나가고 있었다. 거기에 낙하산, 덧붙여서 재수 없는 왕싸가지라고 했던 것까지…….'‘어지러운 척 하면서 그냥 픽 쓰러져 버릴까?’ '아, 젠장! 젠장! '천장이 무너져서 깔려버리거나, 바닥이 내려앉아 밑으로 사라져버리는 상상을 하며 그녀가 열심히 머리를 굴려댔다.'일단 튀어! '순간 머릿속을 울리는 외침에 그녀가 얼른 몸을 돌려 계단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하! 어딜…….”'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온갖 표정을 만들어내던 작은 얼굴을 여유 있게 내려다보던 형우는 갑작스런 그녀의 돌발행동에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쿵쿵, 또각, 또각, 쿵쿵. '쫓고 쫓기는 두 사람의 요란한 발자국소리가 조용한 비상구 안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쾅! 겨우 잡은 하란의 팔을 형우가 홱 잡아당기자, 가슴팍으로 안겨든 그녀를 안은 그의 몸이 뒤로 밀리면서 비상구 문에 부딪혔다.'“윽! 제기랄!” '“하아, 하아.” '그녀는 뒤에서 감싸는 단단한 두 팔에 양 손목을 묶여 그의 가슴에 푹 안겨있었다. 귓가를 자극하는 남자의 나지막한 욕설과 거친 숨소리, 얇은 블라우스 한 장 사이로 느껴지는 남자의 들썩이는 가슴근육까지……. '하란은 이 끔찍한 상황과 생경한 느낌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던 그녀가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아, 죽었다! 네 맘대로 해라. 안 되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더니…….’'거친 숨을 고르며 문에 기댔던 머리를 드니 가느다란 목덜미가 그의 시야에 잡혔다. 이젠 체념한 듯, 병든 닭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안겨서 꼼짝도 안 하는 하란의 부드러운 느낌을 즐기며 그가 입술 끝을 말아 올렸다.'“어이, 닭. 무슨 죄라도 졌어? 도망은 왜 가나?” '“후우…….” '형우가 고개를 기울이며 그녀의 귓가에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었다. 순간 움찔하며 몸을 비틀던 그녀가 꿈적도 안 하고 더욱 조여드는 단단한 두 팔에 긴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저번에 그렇게 물어도 안 가르쳐주더니, 뭐? 미친개? 하!” '“너…… 이사, 님도 저보고 닭대가리라면서요.” '“그거야, 그쪽, 고 팀장이 닭대가리 같은 짓만……. 좋아, 그건 서로 피차일반이니 패스. 그럼, 정말 난 줄 몰랐어?” '“……네. 아니, 전번에 혹시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었을 때, 처음엔 조폭이랬다가, 그 다음엔 물건 파는 사람이라고 그랬잖아……요.” '“맞잖아, 물건 파는 사람. 이것저것 판다고. 철근도 팔고, 차도 팔고, 냉장고에 핸드폰, 웬만한 전자제품은 다 판다고 그랬지. 내가 삼우전자 미국지사에서 삼우철강, 그리고 지금 삼우자동차까지 거치며 왔으니 틀린 말은 아닌데?” '“후유, 전자제품 판다고 해서, 어디 전자대리점 같은데 다니는 사람인 줄……. 그럼, 이, 사님은 저인지 한 번도 생각 못하셨어요?” '그래, 너 잘났다. 누가 그렇게 애매모호하게 말하래? 진즉에 알았으면 내가 미쳤냐? 너한테 전화질을 했겠냐고!'“아니, 전혀! 그 닭대가리랑, 까칠한 고 팀장이랑 전혀 매치가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지.” '“하! 기가 막혀서. 제가 뭘 그렇게 까칠하게 굴었다고……. 그런데 이거 좀 놓고 말하면 안 돼……요?” '이 인간, 진짜 남 말하고 있네. 까칠하기론 널 따라갈 인간이 어디 있냐?'“싫은데? 또 도망가면 어쩌라고?” '“안 가요, 안 가! 치사하고 더러워서…… 안 가요.” '항의하듯 고개를 발딱 쳐들던 그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곤 ‘도망 안 간다’고 작게 읊조렸다.'“안 돼. 자아 그럼, 이젠 어제 얘기 좀 해 볼까?” '움찔 하는 가느다란 허리를 양손으로 잡은 형우가 그녀의 몸을 빙그르르 돌려 정면으로 마주 안았다. 동그랗게 치켜 뜬 그녀의 눈매가 섹시한 고양이의 그것처럼 길게 늘어졌다가 이내 그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한쪽으로 돌렸다.'“다시 말하지. 어제 한 말, 진심인가?” '“……아, 음, 그, 그게…….” '무심코 올려다본 그녀는 웃음기 가득한 눈동자와 마주치자, 달아오르는 얼굴을 돌려버렸다.'“어서…….” '대답을 채근하며 그가 여자의 허리에 감은 양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하아, 그, 그게 그러니깐…….” '핑핑 잘 돌아가던 머릿속의 회로는 에러가 났는지, 하란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지금 당장은 그저 족쇄처럼 자신을 칭칭 감고 있는 이 남자의 팔을 얼른 벗어났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