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꺄…… 꺄아아악!”'아침 조회 시간. 교직원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이번에 새로 온 양호 선생님의 등장에 강당은 여자아이들의 비명과 남학생들의 아쉬워하는 탄식이 뒤섞여 터져 나왔다. '주먹만 한 얼굴, 커다란 눈동자, 긴 속눈썹, 오독한 콧날, 붉은 입술, 뽀얗고 잡티 하나 없는 피부, 길고 섬세한 손가락, 175cm 정도의 키, 말랐지만 적당히 근육이 붙어 잘 받는 옷발!'“야,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여자 아니고 남자 맞지?”'“꺄…… 저 초절정 미모 어쩔 거야!”'남, 여 구분 안 하고, 학생, 선생 구분 안 하고 소란스럽기 그지없는 강당 안에서 유일하게 잔뜩 구겨진 얼굴로 뒷걸음치는 한 명.'손하진.'이 학교의 3학년이자, 선도 부장인 학생이었다.'차가운 성격, 남자들도 한수 접어주는 무술 실력, 전교 석차 1등에 빛나는 카리스마 선도 부장님이었다.'어떤 일에도 겁먹지 않는, 170cm 가까이 되는 훤칠한 키의 미소년으로 추대 받는 언니님인 그녀가 저렇게까지 인상을 구기는 건 보기 드문 일이었다.'“강우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OH MY GOD!'하진은 마음속 깊이 절규했다.'저 악마가…… 저 악마가 여긴 왜!'그것도 지금 나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선생? 선새애앵!'저 겉만 천사 같은, 속은 시커먼 악마 중의 악마인 그와는 이미 13년 전부터 안면이 있었다.'13년 전에도 저 천사 같은 얼굴로 사교계의 꽃이자 아이돌이었던 그였다. '물론 지금까지도 그는 명실상부 사교계의 꽃이자 프린스였다.'하진에게도 그런 우현은 우상이었고, 존경의 대상일 만큼 그는 매우 부드럽고 따스했으며 봄바람 같은 상큼함과 행복함을 몰고 다니는 타칭 ‘천사님’이었다.'11년 전. 우연히 그의 악마본성을 목격하지 않았다면, 아니, 목격했다는 사실을 그에게 들키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 지금까지 자신에게 천사님 같이 행동했을 것이며, 그로 인해 하진의 우상으로 아직까지도 굳건히 자리매김 하고 있었을 것이다.'11년 전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갔을 때, 가만히 기다리라는 호텔에서 탈출해 밤거리를 헤매다가 길을 잃은 것이 시초.'어쩌다 뒷골목에서 한 명이 붕붕 날아다니며 여러 남자들을 자근자근 잔인하게 밟는 것을 발견한 것이 실수.'그 뒤 멋모르고 ‘어! 우현 오빠다!’라고 반가운 목소리로 외쳐 그에게 내 존재를 알린 건 재앙.'내게 잔인하고 사나운 본성을 들킨 저 남자는 날 자신의 부하처럼 부려먹기 일쑤였고, 나는 그의 장난감으로 전락했다.'꼴딱꼴딱…… 마른침이 마구 목을 타고 넘어간다.'하필이면 재수가 없으려고 자리 잡은 건지 그는 선도부 담당 교사가 되었고, 난…… 당당히 나를 호출한 그 악질을 보려고 왔으나 차마 들어가지는 못하고 양호실 앞에서 마른침만 삼키고 있을 뿐이었다.'“밖에 있는 거 다 아니까 들어와.”'제. 기. 랄!'하진은 힘겹게 손을 들어 양호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문 잘 닫아라.”'“……왜…… 부르셨어요…….”'“음. 어떤 버릇없는 녀석이 일주일이 지나도록 인사도 안 와서 말이야.”'젠장젠장젠장젠장!'도망가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듯이 등 뒤에 문을 둔 채로 미간을 찌푸린 얼굴을 하고, 꼼짝 안 하는 하진의 행동에 우현은 설핏 봐도 넋이 나갈 만큼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성큼 하진의 코앞으로 다가왔다.'“어떻게 생각하나, 선도 부장?”'“……뭐가요?”'도망은 생각도 말라는 듯 느긋하게 한 손으로 문을 누르며 그 아름다운 얼굴을 하진의 코앞으로 밀며 달콤한 밀어를 속삭이듯 부드럽게 말을 잇는다.'“그 버릇없는 약혼녀에게 어떤 벌을 줘야 할까?”'“약혼녀는 누가!”'욱! 하고 숙이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던 하진은 아슬하게 닿을 거리까지 바짝 와 있는 우현의 붉은 입술에 입을 다물었다.'“그래, 약혼녀. 머리 굳은 영감들이 친분 쌓으라고 이 짜증나는 애새끼들 속으로 1년이나 날 보내게 한 원흉.”'등 뒤로 느껴지는 서늘하기 그지없는 양호실 문, 도망은 꿈도 못 꾸도록 자신의 옆에 위협적으로 뻗어 있는 팔, 얼굴을 간질이는 부드럽기 그지없는 따스한 숨결, 귓가를 어지럽히는 달콤한 목소리.'하진은 그 모든 게 정말 울고 싶을 만큼 절망스러웠다.'그런 하진의 표정에 우현은 더 깊게 미소 지었고, 하진은 그 미소에 등 뒤로 소름이 스멀스멀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이 세상 모든 사람이 저 아름답기 그지없는 미소에 속는 한이 있어도 자신은 결코 저 미소가 반갑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 남자의 미소가 꽃과 같이 아름다워질수록 화가 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그녀로서는 죽도록 피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자……잘못했어요.”'자존심?'개나 줘 버리라고 해! 난 살고 싶어!'“오냐. 그럼 벌을 받아야겠지?”'하진은 결국 울상을 지었다.'이 인간 성격 뻔히 알았으면서 도망 다닐 궁리는 했었다니…….'멍청한 손하진! 자학을 해봤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