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전, 동북아 외진 야장 마을.'훅훅 찌는 열기가 칠흑같이 어두운 야장을 점점 더 뜨겁게 달구고 있다. 뜨겁게 달군 쇳덩이를 망치로 두드릴 때마다 튕기는 불꽃이 눈을 감고 있을 때보다 더 어두컴컴한 단철장을 별꽃처럼 수놓았다가 사라지기를 규칙적으로 반복하고 있다.'장님 야장장이 호로가 두드릴 때마다 나는 “캉! 캉! 캉!” 쇳소리는 대장간 안이 아니라 정수리 안을 울리고 있다. 데이고 터지고 굳은살이 박이기를 수백 번이나 되풀이한 그의 양손은 검은 때와 피로 얼룩진 헝겊으로 칭칭 동여매어져 있다. 그가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걸치고 있는 누더기는 뻣뻣해질 정도로 때가 찌들어 있고, 살아온 나이 수만큼 새겨진 얼굴의 주름살은 깊이 패어져 있다. 불어터진 입술은 그의 묵직한 성격을 결집해 놓기라도 한 듯 고집스럽게 닫혀 있다.'귀가 먹먹할 정도로 높은 망치질 소리가 멈추고 나서야 항아리 속에 물을 옮겨 담는 소리가 쪼르륵 들린다. 호로의 무남독녀 외동딸 단영이 냇가에서 길어와 사흘 밤낮을 정화시킨 물을 옮겨 담고 있다. 그녀는 맑은 물 한 바가지를 떠서 호로에게 내밀었다.'“아버지, 아직 식사도 못하셨지요?”'매캐하고 수두룩하게 쌓인 야장의 먼지가 말끔하게 치워지는 것만 같은 보름달처럼 부드럽고 깨끗한 목소리다.'“풀무질에나 정신을 쏟아라.”'그는 꿀이 들어간 듯 달디단 물을 시원하게 벌컥벌컥 마시고 빈 바가지를 딸에게 돌려주었다. 바가지를 든 그녀의 손도 아비 못지않게 데이고 짓무른 상처투성이다.'“그래도…….”'“음흠!”'호로는 짐짓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크게 헛기침을 하고 다시 집게와 망치를 들었다.'단영은 아무 대꾸도 못하고 붉다 못하여 샛노란 쇳물이 펄펄 끓고 있는 철통을 걸어놓은 불구멍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아비가 두드려대는 쇠망치질 소리가 가슴을 캉캉 울렸다. 글씨를 새기다 만 거푸집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陰(음)과 陽(양)이 양각으로 도드라지도록 만든 검파(劍把:검의 손잡이)의 형틀이다.'호로는 이 일대 야장의 야장장이 중에서도 단연 솜씨가 으뜸이었다. 숯을 이용하여 만드는 그의 강철은 지방 관리들뿐만 아니라 중앙의 왕족들도 탐내하였다. 선황(先皇)은 그가 더 이상 천하제일 검(劍)을 만들지 못하도록 그가 자신에게 바친 검으로 직접 눈을 멀게 하였었다.'호로의 얼굴과 가슴에서 떨어지는 땀방울이 시뻘건 쇳덩이 위에 비 오듯이 떨어졌다. 이를 악물고 망치를 내려칠 때마다 그의 주름은 한층 더 깊게 새겨졌다. 앞이 보이지 않는 대신 그의 손끝은 더욱 예민해졌다. 가슴속에서 훨훨 타오르는 불씨는 금방이라도 심장을 뚫고 나와 육신을 태워 버릴 것처럼 뜨겁다.'펄럭, 하고 문 대신 야장 입구를 가린 거적이 들춰졌다. 단영은 침착하고 재빠르게 거푸집을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겼다. 호로는 감긴 눈으로 침입자를 흘겨보았다.'“열흘 남았어!”'사내도 계집도 아닌 무당이 고막이 찢길 정도로 높게 소리 질렀다. 땅에 끌리도록 길게 늘어뜨린 흰 천을 두른 몸뚱이, 횟가루를 허옇게 바른 얼굴, 선을 따라 촘촘히 눈썹먹으로 메운 검은 눈가, 붉은 잇꽃 가루를 칠한 입술이 섬뜩하고 기괴하다.'무당의 뒤로 호위무사 네댓 명이 창끝을 하늘로 향하게 하고 우뚝 서 있었다. 하나같이 모두가 표정이 없다. 무사들의 뒤로 나이와 분위기가 호로와 퍽이나 닮은 마을 장정 예닐곱 명이 초췌한 몰골로 불편한 기색을 띠며 서 있다.'“용신께 바쳐지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호로는 들은 척도 안 하고 “캉! 캉! 캉!” 쇠강 위에 올려놓은 벌건 쇳덩이를 망치질하였다. 불꽃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뜨거운 쇳덩이를 물이 가득 담긴 항아리 속에 집어넣자 치지직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물방울과 뿌연 연기가 튀어 올랐다.'이 마을에서는 해마다 용신 제사 때가 되면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 한 해의 농사를 주관하는 용신은 그 능력만큼이나 색욕이 강하여 해마다 첫 경을 치른 처녀를 제게 보내지 않으면 가뭄 혹은 비바람, 눈사태 등으로 마을을 초토화시켰다. 차마 용신에게 대적할 힘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씩 자기 딸들을 바치게 되었는데, 올해가 호로의 딸 단영이 차례였다.'담금질과 망치질을 반복하는 호로의 땀구멍에서 울분에 섞인 피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도망칠 수도 없다. 죽을 수도 없다. 다른 지역에 사는 여자를 살 수 있는 돈도 없다.'“내일 밤에 신부를 데리러 올 거야! 허튼짓했다가는 저주를 받을 줄 알아!”'무당의 목소리는 듣는 이에게 두려움보다는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단영은 무리들이 나가자 불구덩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 풀무질을 하였다. 미동도 없는 눈동자에서 솟아난 눈물이 볼을 타고 수도 없이 흘러내렸다.'호로는 혼신을 다하여 붉은 쇳덩이를 두드렸다. 잇몸이 내려앉을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울음과 분노를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집어삼켰다.'‘검아, 내 아기를 살려다오! 어려 어미 잃고 소리 내어 우는 법도 모르는 내 아기를 살려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