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거대한 새는 검붉은 날개를 펄럭이며 물었다. 순록의 뿔과 백로의 목, 공작孔雀의 꼬리와 해저海猪의 등, 학의 턱, 황새의 부리까지 새는 남방신 주작과 무척이나 닮아있었다. 다만 몸 전체를 덮은 털이 흑색일 따름이다. '새의 정체는 마신수 흑작黑雀이었다. 마신수라 함은 앞에 붙은 마魔자가 가리키듯이 요사스러운 이의 수족 노릇을 하는 신수로, 본디 요괴들만이 부릴 수 있음이라. 본디 정갈한 기운을 받아 태어난 신수와 달리 마신수는 태생부터 요사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신수가 빛이라면 마신수는 그림자였다. '“별 것 아니니라.”'사마승후는 하얀 천으로 도에 묻은 피를 닦으며 답하였다. 사실 사마승후는 방금 전의 대치를 떠올리고 있었다. 신수 해태와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던 서방신 백호, 파한선인의 제자, 그리고 인간 하나. '본디 해태는 신수이나 전투력은 약하니 경계대상이 되지 못하였고, 서방신은 어찌하여서인지 공세에 소극적이었다. 백호가 전력을 다하였더라면 사마승후도 마신수를 소환하여 대적하지 아니할 수 없었을 테다. 신수 중에서도 한손가락에 꼽히는 전투력을 자랑하는 백호다. 그런데 어찌하여서인지 백호는 전투 내내 마음이 다른 곳에 가있는 듯하였다. '“소환자가 그 자리에 없었던 거야.”'사마승후는 천천히 자신의 행적을 되짚어보았다. 백리향을 허리에 맨 여인이 운학산에서 하산하였다는 말을 들었다. 백리향은 자오선인, 즉 인간 시절 사마군려의 상징과도 같은 검이라. 하여 여인의 뒤를 추적하였는데, 어찌하여서인지 중간에 만난 인간 하나가 길을 방해하더니 신수에 선도까지 합세하여 여인을 쫓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사마승후는 도의 날이 선 부분을 닦으면서 생각을 이어나갔다. 자오선인이 환술을 부린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검선劍仙이라는 호칭에 걸맞게 사마군려는 오로지 검의 길만을 추구하는 여인이었다. 또한 파한선인의 제자는 술력이 없는 듯하였다. 인간은 백택과 해태의 주인일지언정 백호의 주인은 아닌 듯하였다. 그러하다면 백호를 소환한 자는 누구란 말인가?'아니, 그것은 기실 별로 궁금하지도 중요하지도 아니하다. 갑자기 흑작이 나타나 긴급소집령이 내렸으니 당장 귀환하여야 한다고 하지만 아니하였더라면 그대로 스러졌을 목숨들에 무에 궁금한 것이 있을까. 사대선인 중 하나인 파한선인의 제자라 하여도 부질없다. 오대요선과 사대선인이 동수라 평가되니 등활요선에는 파한선인 본인이 맞서야 격이 맞는 것이다. '선계 최고 기인의 제자와 서방신, 신수 해태에 인세에 보기 드므리 뛰어난 환술사까지. 분명 뛰어난 이들이지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뿐이다. 얼마나 시간이 걸리느냐의 차이이지 계속 이어나갔더라면 결과는 예정된 대로 흘러갔을 것이다. 사마승후는 그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상념에 젖어있는 중에도 사마승후는 도의 피를 말끔하게 닦아내었다. 소위 눈을 감고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사마승후에게는 도의 손질이었다. 사마승후는 만족스러운 눈길로 도를 나려다보았다. 예기가 흐르는 날에는 얼룩 한 점 남아있지 아니하였다. 반대쪽 면 역시 보지 아니하여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사마승후가 의례적으로 도를 뒤집었을 때였다.'똑. '들릴 리 없는 소리였으나 귓가에 그러한 환청이 맴돌았다. 사마승후는 몇 번이고 눈을 깜빡였다. 평평한 날에 피 한 방울이 떨어져 있었다. 육안으로 보기에는 오래된 것이 아님이라. 사마승후는 식지로 도면刀面을 쓸어내렸다. 핏방울이 그대로 손끝에 묻어나왔다. 갓 신체에서 흘러나온 살아있는 피다.'사마승후는 이번에는 장지를 들어 자신의 목덜미에 가져다대었다. 짐작이 서는 곳 근처에서 한참을 지분거리니 화한 느낌과 함께 손끝을 타고 이질감이 느껴졌다. 살과 살 사이의 가느다란 틈, 미세한 벌어짐, 작은 균열, 달갑지 아니한 균탁. 사마승후의 입가에 거즛말처럼 미소가 떠올랐다. '“그자인가.”'백택과 해태. 그만큼 사내의 신분을 여실히 드러내는 신수는 없을 터였다.'“한 수가 있었군.”'-예?'“아니야.”'사마승후는 흑작의 물음에 가븨얍게 고개를 저은 후 이어 말하였다.'“어서 가지.”''“아직 수행이 부족한 모양입니다.”'재윤이 그리 말함과 동시에 멀쩡해보였던 부채가 두 동강이 나 바닥으로 떨어졌다. '“강하다 익히 들어왔지만 이정도일 줄이야.”'상투에서 몇 가닥 흘러나온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재윤의 손길에 자못 힘이 들어갔다. 표정에서 관冠이 없음을 아쉬워하는 것이 역력하였다.'헌이 검집에 검을 넣으며 입을 열었다.'“어찌하여 요선이 인제를…….”'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신선도 그러하지만 요선이라는 것은 더더욱 인간과는 인연이 없는 존재인지라, 갑작스러운 사마승후의 등장에 헌이 의아함을 느낀 것은 당연하였다. '재윤이 품 안에서 두루마리를 하나 꺼내들며 말하였다.'“당신이 아닙니다. 그의 목적은 재야입니다.”''‘당신에게 무엇인가를 빼앗으러 온 자지.’''재윤의 말과 함께 사마승후가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진득한 피비린내와 광기에 잠식된 눈동자. 헌의 표정이 굳었다. 사마승후는 위험한 자다. 어찌 그런 이가 재야를 노린단 말인가? 절로 물음이 흘러나왔다.'“어찌하여서입니까?”'재윤은 지그시 헌을 바라보았다. 어딘지 모르게 재야의 것을 닮은 눈동자에 헌은 기묘함을 느끼지 아니할 수 없었다. '“궁금하면 당사자에게 물어보시지요.”'마땅찮다는 감정이 얼픳 비치는 눈동자로 재윤이 이어 말하였다.'“저는 재야가 대답하고 싶어 할지 아닐지 알지 못합니다.”'재윤의 말은 구구절절 옳아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헌의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새삼 재야는 비밀이 많은 이임이 가슴에 와 닿았다. 어릴 적에도 그러하였다. 여자인 것을 숨겼고, 술력을 이전하기 전에는 능히 사방신을 동시에 소환할 수 있었을 터인데 그것도 숨겼다. '헌은 재야가 어찌하여서 그 어린 나이에 홀로 남장을 하고 돌아다녔는지 알지 못하고, 어찌하여서 세자의 자리를 필요로 하였는지도 알지 못한다. 므스것을 목적으로 궁에 들어왔는지도, 또 왜 궁을 떠났는지도 여전히 모른다. 우연으로 만나게 되지 아니하였다면 오라비가 있다는 소소한 사실조차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도대체 므스것 때문에 재야는 남장을 하고 어린 나이에 사고무친 혈혈단신의 몸으로 떠돌다 궁에 들어왔고, 끝내 군주의 자리를 거부하고 떠났는가. '헌의 깊숙한 곳에서 열띤 감정이 들끓었다. 머릿속 차가운 이성부터 심장의 뜨거운 고동에 이르기까지 이재야라는 여인의 모든 것을 알고 소유해야만 가라앉을 맹렬한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젊은 군주는 제 감정을 숨기는데 능숙하여 열기를 품은 마음과는 달리 단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재야 소저는 궁에 있을 것입니다. 함께 가시지요.”'청년은 젊은 군주의 눈동자를 응시하다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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