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어린 나이에 칼을 처음 든 홍연은 할아버지 대무예 무왕으로부터 ‘아들이 아님이 원통하다’ 할 정도로 기개와 무예를 갖추었다. 오빠인 대굉음이 유약하고 온순했던 만큼 할아버지의 통한은 더 컸을 것이다. 할아버지인 무왕과 부왕인 대흠무의 기대가 남다른 만큼 홍연은 열심히 검술을 닦아 장차 대진국을 위해 밑거름이 되고자 했다. 언니인 소연과 동생인 아연은 아름다운 옷으로 치장하기를 좋아했으며 글씨와 서화 실력 또한 뛰어난 어머니를 닮아 지혜롭고 아름다워 주변국으로 부터 칭송이 자자했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을 남자아이처럼 바지저고리 차림에 말 타기를 즐겨하고 군사들과 같이 연무장을 뒹구는 자신을 보고는 아마도 아름답다고 말해 주는 이가 없었다. 항상 존경하고 두려워하기만 했다.'“언니…….”'“누구냐?”'“저예요. 아연.”'“들어오너라!”'“언니…… 뭐하세요?”'“난 어머니께서 모레까지 여기 이 천 조각으로 옷을 짓지 않으면 다시는 연무장에 나가지 못하게 하시겠다! 하셨다.”'“그럼 언니. 그거 제가 해 드릴 테니 오늘밤 저를 저자에 데리고 나가 주셔요.”'“저자라니? 너도 그런 곳에 나가느냐?”'“아뇨. 그래서 가보고 싶어요. 그러니…….”'“얘, 아연아. 정말 네가 이 옷을 지어 줄 것이냐?”'“예. 언니”'“그래…… 그럼 언제 갈련?”'“지금요. 준비는 저희가 다 했어요.”'“저희라니?”'“소연 언니도 같이 가실 거예요.”'“언니도?”'“예. 어서 가요.”'“그래…… 그러자.”'''대진국 수도인 상경에는 여러 곳에서 교역을 하러온 장사치들로 항상 붐비는 저자가 제일 볼거리 많고 재미있는 곳이라는 소문이 났지만 높은 궁궐 속 공주라는 신분으로 살아가는 세 자매는 함부로 가 볼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러던 중 소연 공주의 생일을 맞아 막내인 아연이 제안한 것이 저자 구경이었다. 용기를 내어 저자 구경을 나서기로 두 자매는 결심을 하였지만 호위부를 대동하면 왕의 귀에 품신이 들어갈 터이고 즐거이 다녀 보지도 못하고 일이 틀어질 수도 있기에 생각해낸 것이 둘째 언니인 홍연을 대동하는 것이었다. 대진국에서 따를 자가 없는 검술, 마술과 궁술을 가진 홍연이 자신들을 호위해 준다면 호위부 무사 몇을 거느린 것보다 더 안전할 것이기에 어머니께서 하명하신 옷을 대신 지어 주는 조건으로 같이 나들이를 가자고 청했다.'모처럼 언니와 동생을 따라 저자에 나온 홍연은 처음 본 신기한 것들에 정신이 없는 자매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을 훔쳐보듯 지나쳐가는 아가씨들 때문에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좋아한 붉은색 비단 바지저고리를 입은 홍연은 언뜻 보기에도 귀족 집안의 늠름한 도령 같아 보였기에 연무장에서도, 마술장에서도 자신을 따르는 아가씨들의 눈길에 익숙한 터였다. 부왕이신 대무예를 닮아 짙고 미려한 눈썹이며 오뚝한 콧날, 쌍꺼풀진 큰 눈에다 6척에 가까운 큰 키 그 모든 것이 잘생긴 도령 같아 보일 것임에 홍연은 쓴웃음만 나왔다. 오늘따라 정월대보름 준비로 붐비는 저자거리를 신나 뛰어 다니는 언니와 동생을 보며 자신의 신세 한탄을 하던 홍연은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잘못하다간 두 자매를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이보시오. 같이 좀 놀자는데. 왜 이러는 것이오?”'“무엄하다. 누구에게 같이 놀자고 하는 게냐?”'“무엄하다? 이것들이 예쁘다고 봐주니 안중에 보이는 것이 없구나!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나는 예서랑의 아들이다. 그런데 감히 네깟 것들이 내게 반항을 하다니……. 죽고 싶지 않으면 따라오너라.”'“언니! 뭐하세요? 이자들을…….”'아연의 호통에 꿈쩍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홍연 자신이 나서야 할 것임은 분명하지만 저자대로에서 싸움질을 했다간 부왕의 귀에 들어갈 것이 분명했기에 망설이고 있었더니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았다. 갑자기 나타난 붉은 옷의 무사는 마치 하늘을 날 듯 장사치들의 난전을 피해 솟아오르더니 예서랑의 아들이라고 칭하던 자의 목에 단번에 칼을 대었다.'“네가 감히 겁도 없이 우리 댁 아가씨들에게 방자한 행동을 하다니 죽고 싶은 게냐?”'“너……넌 누구냐?”'“내가 누군가가 중요한 게 아니다. 네가 잘못을 빌어야 하는 쪽은 내가 아니니…… 어서 빌어라!”'“저…… 제가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십시오.”'“아가씨들! 어찌 할까요? 이자의 목을 칠까요? 아님 살려 보낼까요?”'“그만 됐다. 그까짓 무뢰배를 죽여 뭐하겠느냐!”'“알겠습니다. 가라! 그리고 다시는 이런 짓을 말아라!”'큰소리치던 남자가 엉금엉금 기어 도망가자 저자거리에서 구경하던 모든 이들이 대소했다. 저자에서 시선의 대상이 되면 좋을 것이 없다 생각한 홍연이 앞으로 나서며 길을 잡았고 그 뒤를 따르는 두 자매도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빨리 길을 재촉했다. '''그런 자매들의 머리 너머로 한 사내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자거리에서 보기 힘든 미모의 여자들을 바라보지 않은 사내들이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 자신도 처음에는 그런 사내들의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그러나 곧 그들의 행동거지는 일반인들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었다. 우아함과 다른 군림하는 자의 그 어떤 것이 보였다. 특히 뒤에 붉은 홍의를 입은 수려한 외모의 사내에게서는 위엄마저 보였다. 거기다 연배에 비해 뛰어난 무공과 칼을 목에 가누는 순간 섬뜩할 정도의 기는 평범한 무사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그는 그들의 뒤를 따르며 정체를 알아보기로 했다.'“무야! 넌 그저 따르기만 해야 한다! 절대 앞으로 나서지 마라! 알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