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마음으로 말하다

윤하는 연신 쿵쿵거리는 음악소리에 머리가 깨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대학 때부터 절친하게 지내온 친구이자, 회사동료인 진주가 처녀로 보내는 마지막 생일파티이기에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한 채 나이트의 어두운 조명 아래 어색하게 앉아있을 뿐이었다. '이미 만취상태인 진주는 한 달이 지나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는 1월이면 아름다운 신부가 될 터였다. 이런 호사는 마지막일 테니 장단을 맞춰주고 싶은 마음에 따라나서긴 했지만 몸치인 그녀는 나이트 스테이지에 나가 춤을 추는 대신 테이블에 앉아 술만 홀짝 홀짝 마셔댔다. '“윤하야.”'귀가 찢어질듯 울리는 큰 음악소리 사이로 자신을 부르는 듯한 진주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자 윤하는 서둘러 그녀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뒤로 홱 젖힌 채 허공을 향해 거친 숨을 후후 불어대고 있는 진주의 모습이 윤하의 눈에 들어왔다.'“진주야 왜? 속 안 좋아?”'진주 가까이 다가가 귓가에 대고 말을 했지만, 그저 술주정일 뿐이었던 것인지 계속해서 ‘윤하야’라고 이름만 불러댈 뿐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휴대폰을 꺼내들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대방이 받지 않은 것인지, 또 다른 곳으로 전화를 거는 모습이 보였다.'이번엔 통화가 연결된 것인지 제법 혀가 꼬인 진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통화 내용으로 보아 며칠 전 귀국했다는 그녀의 오빠에게 전화를 해 데리러 와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곧 전화를 끊고 옆에 앉아 있는 윤하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마치 잠을 자는 것 같기도 하고 그저 기대고 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윤하는 신경 쓰지 않은 채 그런 그녀를 다독여 줄 뿐이었다.'“괜찮아? 오빠 온대?”'“응. 우리 오빠……, 멋진 우리 오빠가 지금 데리러 온댔어. 나 걱정하지 마.”'윤하가 살짝 웃어보이자 진주도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고는 살짝 미소 지어 보이더니 이내 눈을 감았다. 그때 다시 진주의 휴대폰이 울려댔다. 아니 벨소리가 들렸다기보단 액정이 밝게 빛나 전화가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진주가 전화를 받을 생각을 하지 않자, 윤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한 번 내쉰 후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건 사람을 확인했다. 휴대폰 액정에는 ‘우리자기’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진주의 약혼자인 기석의 전화였다. 부재중 전화가 온 것을 보고 이제야 전화를 한 것 같았지만 진주는 여전히 전화를 받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친오빠가 데리러온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그녀의 약혼자인 기석이 걱정할까봐 윤하는 진주를 흔들어 깨우기로 마음을 정하고 몇 번 어깨를 툭툭 쳤다.'잠든 것이 아니라 그냥 기대고만 있었던 것인지 진주는 곧 정신을 차렸고 윤하가 내민 휴대폰을 보고는 금세 환한 얼굴이 되어 전화를 받았다.'오빠가 오기로 했던 것은 까맣게 잊은 것인지 기석에게도 데리러 와 달라는 말을 전하고 전화를 끊은 진주는 핸드백에서 콤팩트를 꺼내들고는 얼굴 상태를 확인했다. 발갛게 달아오른 모습 때문인지 살짝 화장을 고치고는 곧 자리를 떠날 준비를 마친 진주는 윤하를 향해 얼굴전체가 웃고 있는 듯한 행복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을 때 결혼이라는 것을 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자 윤하도 피식 웃음이 났다. '난 언제쯤 저런 표정을 지어 보일 수 있을까? 제대로 된 연애 한번 해본 적이 없으니 선을 봐서 결혼을 해야 하는 건가? '별 영양가 없는 생각이 잠시 들자, 윤하의 입이 좀 더 큰 동선을 그리며 피식하는 웃음을 흘렸다.'근처에 있었던 것인지 기석은 10분도 되지 않아 나이트에 도착했다. 진주를 부축하고는 윤하에게도 데려다 주겠다고 말을 하는 그에게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의 예의를 갖춰 정중하게 거절하고는 먼저 가보라는 손짓을 건넸다. 기석 역시 그에게 기대고 있는 진주의 무게로 인해 서 있기 힘들었던 것인지 고개를 끄덕였다.'지갑에서 골드카드를 꺼내 남은 친구들과 더 놀다 가라는 그의 청을 거절하고 있는데, 진주가 생글거리며 자꾸 받으라는 통에 윤하의 손엔 얼떨결에 카드가 쥐어지게 되었다. 진주가 자리를 뜨고 자신도 곧 나이트에서 나갈 생각이었기에 난감하긴 했지만, 그들 앞에선 내색하지 않은 채 배웅하고는 테이블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좀 더 있다 춤추고 있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일어설까 했지만, 그녀들은 진주와 친한 쪽이지 자신과는 그다지 친분이 있는 쪽이 아니었기에 아무래도 지금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가방을 챙겨 들었다. 나갈 준비를 마치고 조심스레 스테이지로 걸어가 춤추고 있는 친구들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들 중 그나마 윤하가 잘 알고 있고 신용이 가는 소영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잠시 불러내 카드를 전해주었다. 소영이 그녀의 의도를 알아들었다는 듯 미소 짓자 그제야 윤하는 이제 할 일을 다 마쳤다는 생각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이트를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살짝 살짝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웨이터들의 인사를 받으며 막 입구를 나오려던 윤하의 표정이 급속도로 굳어가기 시작했다. '조금 전 자신을 스쳐지나간 한 남자로 인해 급히 발걸음을 멈춘 그녀는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잘못 봤을 리가 없다며 서둘러 다시 나이트 안으로 들어가 조금 전 스쳐지나간 남자를 찾기 위해 정신이 없었다. '여기저기 테이블을 들여다보고 스테이지를 찾아보았지만 그녀가 보았던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잘못 본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도 생생한 모습이었다.'윤하를 스쳐지나간 이는 분명 그녀의 첫사랑인 진태혁, 그가 확실했다. 물론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래서 그저 닮은 사람을 보았을 수도 있겠지만, 윤하는 그 짧은 순간 자신의 곁을 스쳐지나간 사람이 태혁이 맞다고 확신했다. 사랑했던 사람이기에 알 수 있는 그만의 분위기와 걸음걸이, 분명 그였다.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태혁이라는 존재에 10년이라는 세월을 더하면 영락없이 지금 스쳐지나간 그 사람의 모습이었다.

미리보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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