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진지하게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오늘 우리 둘이서 보자.’'하리는 자꾸만 윤호의 말이 머리에 맴돌고 있었다. 단둘이 보자니, 그건 누가 보더라도 엄연한 프러포즈용 대사였다.'“어떻게? 어떻게?”'만난 지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혼이니 뭐니 그런 건 전혀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던 하리였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그가 청혼을 한다면 도대체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사랑을 하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아직 이 남자에게 평생을 걸어도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청혼을 받을 수도 거절할 수도 없는 그런 애매한 상황에 빠진 그녀였다.'‘Rrrrr Rrrrr''액정을 확인하니 윤호였다. 하리는 한 번 크게 심호흡을 하고,'“여보세요.”'“뭐하고 있어?”'“그, 그냥 있어요.”'하리는 책상 위의 거울을 뒤집어 놓았다. 방금 전까지 고민을 하면서도 또 그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 꽃단장을 하고 있었다고 어떻게 말을 한단 말인가?'“무슨 일이 있어요? 조금 있다가 보기로 했잖아요.”'“아, 내가 일이 조금 늦게 끝날 것 같아서 픽업은 못 해줄 것 같아서. 내가 가지 않아도 혼자서 올 수 있죠?”'“그럼요. 거기까지 가는 길이 힘든 것도 아니고 버스 한 번만 타면 되는데 뭐가 어렵다고 못 가겠어요. 갈 수 있어요. 괜히 나에게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내가 오히려 미안해지잖아요.”'하리는 조금이나마 시간을 벌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갑작스럽게 그를 본다면 분명히 심장이 불쾌할 정도로 두근거릴 것이 분명했다. 그런 것은 싫었다.'“그럼 어디서 볼까요?”'“저기 부천에 있는 해산물 레스토랑에 예약 해 놓았거든.”'“아, 그래요.”'하리는 조용하고 차분한 느낌의 레스토랑이 아닌, 뷔페형 레스토랑이라는 사실에 살짝 실망을 했지만 자신이 그 어떤 식당보다 그곳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의 깊은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직장에서 가려면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했지만, 그런 것은 별다른 것도 되지 못했다.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일 것이다.'“그럼 조금 있다 보자.”'“네, 조금 있다 봬요.”'“후우.”'휴대전화의 종료버튼을 누르고 하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와 함께 사귀면서 산 스마트폰을 보니 마음이 더욱 싱숭생숭해져 버렸다.'“아, 정말 어떻게 해야 하니?”'결혼을 생각할 나이는 아니었다. 이제 겨우 스물셋, 아직 꽃다운 나이, 다만 남자 쪽인 윤호의 나이가 30이라는 사실이 다소 고민이 되는 부분이었다.'‘Rrrrr Rrrrr''“하리야. 상담.”'“아? 응.”'하리는 목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네, 안녕하세요. 부부 상담센터 상담원 강하리입니다.”'“이혼을 생각하고 있는데요.”'하리는 다시 자신의 본업에 집중했다.''''“후우.”'윤호는 긴장된 표정으로 손목시계를 바라봤다. 그녀와 만날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하아.”'평소에도 그녀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결혼은 지옥이라고.'“그래, 그 지옥. 지옥이라고 했으니까.”'윤호의 머리에 한 가지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오빠, 오늘도요. 상담을 하는데 정말 어쩜 남자들이란 다 그럴 수가 있어요? 자기 처한테 어떻게 그래요?”'“오늘은 아줌마가 직접 왔는데 눈에 이따만한 멍이 든 거 있죠?”'“애가 보는 앞에서 욕을 한대요.”'“어떻게 아줌마가 평생 모은 돈을, 악착같이 모은 돈을 다 가져갈 수가 있어요?”'“남편이 노름을 해서 집안 형편이 장난이 아니래요?”'“알코올 중독자라서 센터까지 다녀왔는데도 안 낫고 아직까지 아줌마를 괴롭히고 있대요? 어떻게 살아요?”''''윤호는 사실 하리를 만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담센터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러나 그녀를 만나고 나서 세상에는 살만한 남자보다 살만하지 않은 남자가 많다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들었다.'늘 그런 하리의 말끝에 붙은 말.'“저는 절대로 결혼은 안 해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