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샤가 작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키며 한자 한자 열심히 말했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미안함에 수아가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수아의 웃음에 침울해진 미샤가 곧 그녀의 품으로 파고들자 익숙한 체온에 아이의 등을 쓸었다.'“쏘냐, 열 있는 것 같아.”'어차피 수아가 듣지 못할 테지만 그래도 걱정된 마음에 그녀에게 중얼거리던 미샤는 이내 문이 열리는 소리에 돌아보았다. '문이 열린 사실도 모른 채 멍하게 미샤를 안고 창밖을 바라보던 수아는 품 안에 있던 미샤가 몸을 일으키는 느낌에 덩달아 뒤를 돌아보았다.'“이안.”'그의 손에 들린 액자에 가장 먼저 시선이 갔다. 이안이 무어라 말하자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내 자리를 피하는 미샤를 보고 수아가 그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나 말하는 거 이상하지 않아요?”'목소리를 낼 때마다 목 안쪽의 울림에 그에게 의사가 전달된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래도 역시 듣지 못하는 상태에서 하는 말은 조금 어색했다.'이안이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바라보던 수아가 이내 그의 손에 들린 액자를 가리켰다.'“그림이에요? 사진?”'포장에 싸여 볼 순 없었지만, 그가 자신을 위해 가져온 그림이 분명했다. 항상 여유롭고 나른하기까지 한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평소와는 다른 이안의 분위기에 수아는 자신에게 좋지 못한 소식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쓰게 웃었다.'“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결국엔 그리 되었어야 했던 일인 거예요.”'수아의 말에 어떠한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이안은 손에 들린 액자에서 포장을 벗겨내어 침대와 마주보는 벽에 걸었다. '붉은색 계통의 그림이 언뜻 보였지만, 전체적인 모습은 그가 가리고 있어 그림을 보기 위해 짧은 시간 동안 기다렸다. 이내 그림이 안정적으로 걸렸다는 것을 확인한 이안이 수아가 그림을 볼 수 있게 옆으로 비켜서자 침대에 앉아 있던 그녀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아…….”'차디 찬 겨울이 분명한데 그림에서 전해져 오는 따뜻하고 포근한 기운은 마치 가을의 조용함과 고요함을 담고 있었다. '“인디안 썸머.”'수아는 지금 들리지 않아 모르겠지만 이안은 이 그림의 제목을 그녀에게 꼭 말해주고 싶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그림의 앞까지 다가온 수아가 이안과 나란히 서서 살아있다는 붉은 생기를 가득 뿜어내는 그림의 존재를 감상했다.'“시베리아의 여름은 아주 짧아. 여름이 가면 가을도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지지. 그리고 또다시 겨울이 오는 거야.”'찰나가 고스란히 담긴 그림은 사진보다 더한 충격을 주었다. 그림이기에 이런 색감을 나타낼 수 있는 걸까. 하지만 수아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마치 사람의 눈을 통해서 바라 본, 이 그림을 그린 화가의 혼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그림 앞에서 차마 발을 뗄 수가 없었다.'여기서 한 발이라도 앞으로 나가면 저 주홍빛 낙엽이 떨어지는 그곳에 서있을 것만 같았다. '“눈을 뗄 수가 없어요.”'붉게 물든 가슴에서 치밀어 오른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눈물에 반사된 그림을 거울처럼 바라보던 이안이 그녀의 눈물에 입술을 묻었다. '“나도 당신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어.”'낮은 탄식. 그가 하는 말이 들리진 않았지만 그의 가슴을 통해 전해져 오는 안타까움이 수아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왜 내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나요?”'그의 탄식이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 자신에게 그 무엇도 말해주려 하지 않는지, 무엇이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지, 그는 알고 있으면서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을 위함이라는 건 머리로 수아도 알고 있었다. '“숨긴다고 숨겨지던가요.”'그녀의 볼에 키스하던 이안의 입술이 다급히 수아의 입술을 찾아들었다. 몇 번의 키스와는 다르게 다소 성급한 키스에 그가 느끼는 불안함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세상 두려울 게 없는 남자가 두려워하고 있다. '어느새 깡마른 몸에 헐거운 잠옷이 벗겨지고 이안의 성마른 손이 그녀의 허리를 안아 올려 침대에 뉘였다. 열로 인해 뜨겁게 달아오른 몸에 다른 은밀한 열기가 점차 다리 끝에서부터 서서히 올라왔다. '한 팔을 수아의 머리에 두고 아래의 그녀를 내려다보는 이안의 눈빛이 흔들렸다. 처음엔 허락을 구하는 눈빛으로, 그리고 이내 그런 자신의 본능을 억누르려는 눈빛, 그리고 그녀를 강제로라도 소유하고 싶어 하는 여러 가지 복잡한 눈빛이 차례대로 지나가자 수아가 먼저 손을 뻗어 그의 목을 껴안았다.'“지금 안기고 싶지 않아요.”'그녀의 말과는 다르게 어설픈 입술이 그의 쇄골을 찾았다. '“당신은 내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난 듣지 못하잖아. 불공평해.”'온 몸으로 불안하다 말하는 이 남자에게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가 바라는 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체 웃는 일뿐이었다. 쇄골에 머물러 따뜻한 숨을 내쉬던 입술이 점차 아래로 내려가 그의 가슴을 지분거리자 이안이 수아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단숨에 그녀를 위로 끌어 올렸다.'수아가 미처 그 행동을 막기도 전에 이안이 미끄러지듯 그녀의 발끝까지 내려가더니 허벅지 안쪽의 여린 살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리고 발끝에서 이어지는 짜릿한 쾌감. 얼마 전 그녀의 발을 씻겨주며 하지 못한 나머지 일을 지금이라도 하겠다는 사람처럼 열정적으로 수아의 발을 애무했다. '그때 그녀가 느꼈던 흥분이 그저 감질 맛만 나게 했다면, 지금 발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그의 뜨거운 혀는 수아의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었다.'“하아…….”'자신이 내뱉는 신음조차 듣지 못한 채, 그를 올려다 볼 자신조차 없어 그저 천장을 바라보며 그가 해주는 애무를 받던 수아가 몸을 뒤틀었다.'“Я хочу тебя. (난 널 원해.)”'어느새 올라온 이안이 수아의 귓가에 대고 열망에 들뜬 신음과 함께 진심을 담아 전했다. 귓가에 느껴지는 그의 입술에 수아의 입이 열렸다.'“당신을 원해요.”'햇빛 한 점 보지 못한 것처럼 새하얗다 못해 창백한 그녀의 목덜미를 이안이 이를 세워 물었다. '“아파…….”'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아파서 자신도 모르게 버둥거리며 앞으로 나가려는 수아의 허리를 꽉 껴안은 채 이안이 그녀의 몸을 자신에게 밀착시켰다. 누구의 열기인지도 모를 뜨거운 서로의 몸이 맞닿자 주체할 수 없는 열기가 퍼져 나갔다. '“이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