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저녁, 가게 안은 무척이나 부산해 보였다.'한 달 전부터 직원을 3명이나 늘렸는데도 주문이 밀리고 밀려, 레스토랑「테스」의 직원들은 다들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큰 규모의 가게도 아니었고, 목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한번 오면 그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담백한 음식맛과 클래식한 분위기의 가게 인테리어에 매료되어 단골손님이 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그 덕에 지금 같은 주말, 거기에 더해 저녁시간에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이 분주한 유명 레스토랑이 되었다.'이렇게 바쁠 때면 사장인 희원도 직원들과 함께 재게 움직였다. '그녀가 주방으로 가기 위해 막 몸을 틀었을 때, 일주일 전 홀 매니저 은정의 추천으로 일하게 된 난경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신입으로 들어온 직원들 중 가장 일을 빨리 익힌 그녀였지만, 주말 일은 조금은 벅찬 듯 보여 안쓰러운 마음이 살짝 일었다.'희원이 주문받은 것을 주방에 전하고 또 다른 테이블의 주문을 받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액정에 떠오른 이름은 그녀의 남편 정민이었다. '[많이 바쁘니?]'“응, 조금 바빠. 정민아, 급한 일 아니면 나중에 통화하자. 내가 한가해지면 다시 전화할게.”'[그래, 알았어. 수고해.]'평소보다 밝은 정민의 음성에 희원은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나 싶었지만 곧 바쁜 가게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전화를 끊고 주방을 나가려는데, 주방장 혜순이 생글거리며 희원의 어깨를 툭 쳤다. 큼직한 눈가에 있는 주름 몇 가닥을 제외하고는 건강미가 돋보이는 그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걸었다.'“희원 씨 남편은 언제나 다정하단 말이야. 노처녀 부럽게.”'혜순과 희원은 3년 전 가게를 처음 열 때부터 함께 해온 사이다.'“그냥 전화 온 거 가지고 뭘요.”'“내가 노처녀여서 그렇지, 어디 내 친구들은 결혼 안 했어? 결혼 4년차면 애정 다 식고 정으로 사는 거지, 정민 씨처럼 그런 남자 없어. 여전히 신혼 분위기를 풍기는 건 애가 없어서 그런가?”'“그, 그런가 봐요.”'아이 얘기가 나오자 희원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지만 혜순이 눈치 채기 전 서둘러 표정을 가다듬었다. 혜순과는 가족같이 가까운 사이였지만, 그녀는 희원이 가지고 있는 아이에 대한 아픔을 몰랐다. '남들이 볼 때 희원은 그저 결혼을 조금 일찍 한, 아직은 젊은 28살의 여자일 뿐이었다. 그래서 아기 가지는 것을 조금 미루고 신혼처럼 산다고 생각할 터였다.'하지만 희원은 아기 가지는 것을 미루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그녀 자신이 정민과 사이에서 아이를 낳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 있었다. 비록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지만…….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 아닌 실수였던 것처럼, 정말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정민과 희원은 대학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다. 그리고 서로 첫눈에 반해 순식간에 빠져들어 사귀게 되었다.'그 와중에 희원은 모친인 미옥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모친은 결국 1년을 견디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그 힘든 시기에 정민은 그녀의 곁을 내내 지켜 주며, 희원이 외롭지 않도록 다독여 주었다. '정민이 군대에 갔을 때 희원은 오롯이 한곳만 쳐다보는 나무처럼 그를 기다렸고, 전역 뒤 다시 열렬하게 서로에게 빠져들어 24살 어린 나이에 정민의 아이를 임신했다. 급히 혼인신고를 먼저 하고는 배가 불러오기 전 조촐하게 식을 올렸다.'시어머니인 인숙은 고아나 다름없는 희원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아들의 핏줄이기도 한 아이가 희원의 뱃속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다행히 시아버지인 경식은 참하고 착하기만 한 희원을 예뻐했다. '생각해보면 그것이 그나마 힘든 시집 생활을 견뎌 낼 수 있던 이유였을 것이다.'그리고 그때 일이 터졌다. 잠시의 행복은 마치 처음부터 남의 것이었던 것처럼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희원이 임신 네 달째가 되어 갈 무렵 심한 복통을 일으켜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는데, 바로 그 날 아이가 유산된 것이다. '손이 귀한 집안이었기에 그때부터 시어머니인 인숙의 시집살이는 날이 갈수록 더 심해졌다.''—우리 정민이가 4대 독자인데 이렇게 몸이 약한 애가 집안에 들어왔으니 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친구들과의 통화를 가장한 노골적인 비난이 희원의 가슴을 후벼 팠다. 물론 시아버지인 경식은 그런 인숙에게 며늘애가 아직 나이도 어리니 괜찮다고 늘 희원의 편을 들어주었다.'그런 그의 편들기에도 인숙의 시집살이는 수그러들지가 않았다. 그래서 보다 못한 경식과 정민이 그녀를 집 밖으로 빼내 주기 위해 지금의 가게를 차려 준 것이다. '가게를 운영하면서도 희원은 집안일에 소홀하지 않았다. 바빠도 시부모를 모심에 있어서도 늘 최선을 다하려 애썼다.'그렇게 힘겨운 줄타기를 하며 지내던 중, 작년 겨울쯤 경식이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병원 신세를 지게 된 일이 있었다. 희원은 어머니를 간병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성심을 다해 시아버지를 간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