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이라는 나이는 그렇게 촉박할 나이도 아니지만 그렇게 느긋할 나이도 아니다. 제대로 찐하게 연애 한 번 하고 싶은 나에게는 더더욱 짧은 시간이다. 아무리 요즘 세상이 바뀌어서 서른 넘은 여자도 당당한 사회라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달걀 한 판 꽉 채우고 남는 달걀까지 주머니에 차고 있는 여자는 조금 볼썽사납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내가 지금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과 나는 다른 사람들이 말을 하는 보편적 연애를 제대로 즐기고 있다. 적당한 스킨십과 적당한 연락, 그리고 서로의 부모님도 알고 있는 사이니 보편적인 연애의 틀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짜릿한 무언가를 원한다. 그러니까 온몸이 저릿저릿한? 그 사람에게는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 그와 그것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느낀 적이 없었다. 오, 오, 를 외치다가 그냥 뒤로 넘어가 버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회의가 느껴질 적도 많다.'서로의 얼굴을 보는 데도 더 이상 재미있다는 느낌도 없다. 퇴근 후에 먹는 저녁 식사, 그리고 약간의 드라이브와 섹스. 주말에는 대학로에 가서 연극을 보고 밥을 먹고 섹스를 하거나,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섹스를 한다. 모든 결과가 다 섹스로 다가가는 그 연애는 어느 정도 연애의 과정을 지나간 보편적 커플이라면 누구나 겪는 상황이지만 나는 조금씩 그 상황들이 지겨워져 간다. 그러나 이 상황을 끝내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다. 아무리 보편적인 연애라고 하더라도 이 사람은 놓치고 싶은 사람은 아니니까. 그, 그 뭐더라? 그래, 한자어 계륵에 딱 어울리는 남자가 바로 그이다. 딱히 먹을 것이 없기는 한데 그래도 남을 주기는 너무나도 아까운 사내가 바로 그다.''''“말씀은 감사하지만 저에게 이미 사귀는 사람이 있어서요.”'“그게 무슨 상관이 있나요?”'사내는 더욱더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아니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도 이렇게 능청스럽게 들이댈 수가 있단 말인가?'“골키퍼 있다고 골이 안 들어가는 건 아니잖아요?”'식상한 멘트, 너무나도 식상한 멘트에 금방이라도 정강이에 조인트를 까고 싶지만 나는 도도하고 당당하고, 그리고 멋있는 여성이기에 그렇게 저급한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을 거였다. 게다가 폭행과 그냥 싸우는 것은 경찰서에 가도 급이 달랐으니까.'“축구하다고 골 들어간다고 골키퍼가 바뀌는 거 봤어요? 아무리 당신이 그래도 골키퍼 바꾸지 않을 거예요.”'어딘가 주워들은 말이긴 했는데 써먹겠지, 써먹겠지 하다가 드디어 써먹게 되는 말이었다.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짓던 사내는 다시 씩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예상치 못한 한 방이 더욱 유쾌하게 만든 모양이었다.'“그래도 축구 보면 골을 너무 많이 먹으면 골키퍼를 바꾸기도 하던데, 절대로 골키퍼를 바꿀 생각이 없다고 말을 하는 거예요?”'“그래요. 절대로 골키퍼 바꾸지 않을 거예요. 지금 골키퍼가 잘하고 있는데 굳이 바꿀 필요는 없잖아요.”'“새 골키퍼가 더 잘할 수도 있는 거지.”'딱 두 번 만났지만 이 남자와 이야기를 하면 머리가 더 아플 거라는 사실은 확실한 일이었다. 보편적 연애 상대와는 다르게 단 한마디도 그녀의 말에 져 주는 흉내도 내지 않는 까탈스러운 성격의 사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