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이 많이 아파. 삼촌 저런 모습 처음이라 겁이 나서 잠을 들 수가 없어. 고모가 한 번 들어가 봐 줘.”''눈물을 찔끔 흘리며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시현은 그게 더 안쓰럽다.''“가서 자. 너네 삼촌은 내가 돌봐 줄게.”''시현은 지금 그렇게 말했던 것을 후회한다. 진욱의 말을 듣고 한번 살피려고 온 것뿐인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일어나 봐요! 아픈 거 좀 낫게 해줄 테니 빨리 일어나요.”''끙끙 앓고 있는 사람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던 시현은 아무 생각 없이 아프다는 사람을 깨웠다.''“나 아프다. 여기저기 쑤시고 끊어질 것만 같아. 그냥 가만히 있어도 아픈데 일어나면 죽을지도 몰라.”''“으이그, 말 같지도 않은 말은 이제 그만하고, 아픈 거 줄이기 싫으면 그냥 있던가.”''시현은 미련도 보이지 않고 뒤 돌아서서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아파서 죽을 것 같다는 사람이 동작도 참 잽싸기도 했다. 그는 다급하게 팔을 뻗어 시현을 붙잡았다.''이러면서 아파서 죽을 것 같다고? 흥이다!''“정말 아프지 않게 할 수 있어?”''시현의 말이 귀가 번쩍 뜨였나 보다. 시현은 그저 웃으며 잠깐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욕실로 갔다. 안마, 마사지 기능이 되어 있는 욕조는 일 층에 있어서 사용할 수 없고 단순하게 온수욕이나 하게 해야겠다. 욕실로 들어가 뜨거운 물을 꽐꽐 틀었다.''그리고 석준을 데리러 그의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는 깨어 있을 때나, 선잠을 자고 있을 때에도 계속 끙끙거린다.''아프긴 정말 아픈 모양이다.''시현은 침대 가까이 다가가 손목을 쥐고 살짝 잡아당겼다. 피곤한지 감긴 눈은 쉬이 떠지지 않는다. 그 덕에 생겨진 여유는 시현의 시선을 남자의 얼굴로 잡아끌었다.''새까맣지는 않지만 까무잡잡한 피부에 참 잘생긴 얼굴이다. 눈썹은 알맞은 굵기로 새까맣게 남자답고 코는 오뚝하니 콧대가 참 높다. 입술은 마치 라인을 그려놓은 것처럼 뚜렷하고 입매가 참 아름답다. 어머님을 닮아서 이목구비가 참 빼어난 호남형이었다.''시현이 정신을 놓고 감상하고 있었던가보다. 그가 깊어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흠……음…… 꿀꺽…… 저기…… 욕조에 물을 담고 있어요. 지금 준비하고 나가야 하는데, 속옷도 챙겨가야 하고…… 그러니까…… 준비하고 나오세요.”''“나 진짜 힘드니까, 꼬맹이 네가 내 속옷 좀 챙겨줘.”''“네에?”''소스라치게 놀라는 시현, 급 당황한다. 이 남자 별거를 다 시킨다. 나 원 참말로…… 시킬 걸 시켜야지. 참내…… 그러나 끙끙거리며 일어나는 커다란 곰의 모양새가 기막히게 불쌍해 보였다. 그래서…… 마지못해 느리적거리며 걸어가서 옷장 문을 열고, 한 쪽을 지그시 감았다. 떠진 한 쪽 눈으로 대충 보고 아무렇게나 남자의 속옷을 꺼내들었다.''“부축해 줘야지. 빨리 와.”''아픈 사람이 부탁하는데 들어주지 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꾸 이러면 불길, 한데.''어제부터 계속 저 사람과 자신의 몸이 닿는다. 이러는 건 좋은 징조가 아닌데, 어쩌지?''“꼬맹아, 머리 굴리지 말고 빨리 와! 환자가 널 어떻게 할까 봐서 그래? 염려마라. 나 몸은 이렇게 아파도 정신은 온전하거든. 네가 아직 꼬맹이인건 자각하고 있다고.”''“치, 아프다면서 곧 죽어도 큰 소리, 잘난 척 이라니까.”''시현은 투덜거렸다. 아프다면서 또 놀리려 한다. 그녀는 종종 걸어서 천천히 그의 옆에 섰다. 이게 정말 무슨 짓인지……''커다란 몸이 시현의 몸의 덮쳤다. 아니 움찔 놀랄만큼 큰 덩치가 자신의 몸에 닿자 어이없게도 확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무게에 눌러 얼른 그 커다란 몸에 팔을 둘렀다.''왜?''모르겠다……아마도 반사적인 반응일 것이다.''“내가 꼬맹이 같은 걸 어떻게 한데? 기분 나쁘게 왜 움찔거리고 그래. 나 지금 근육들이 조각조각 나는 아픔을 느끼고 있거든…… 그렇게 싫으면 저리 가.”''잔인할 정도로 거칠게 시현의 몸을 억지로 떼어내고 되돌아서서 침대에 도로 누우려 한다. 시현은 얼른 붙잡았다. 잘못한 것도 없이 주눅 들어서 잘못했다고 빌고 싶은 심정이었다.''힐난 하듯이 쳐다보는 눈빛이 너무도 싫어서 미안하다고 해야 할 것만 같았고, 그렇게 해야만 욕조에 들어갈 것 같았다.''참 걱정도 팔자다. 어린 나이에 벌써 이 정도로 오지랖이 넓으면 살기 힘든데…… 그냥 버려두고 나가자하면서 가슴 속에서 간살스럽게 속삭이지만, 그녀의 양심이 이기고, 곧 성질을 죽인다.''정윤주 여사의 딸이 어디 가겠니?''휴우…… 한숨을 크게 내쉬고 꾸욱 참았다.''민며느리가 되고부터 계속 당하고만 살았다. 처음엔 자신이 너무 어려 어리버리해서 당하고 요즘은, 요즘은 …… 잘 모르겠다. 그냥 참아야 할 것 같은 기분, 본능이 그렇게 시키니까.''시현은 근육통에 몸살을 앓고 있는 남자를 뜨거운 욕조에 빠뜨렸다. 아니 석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온 몸을 시현에게 기대고 있던 남자의 몸무게에 못 이겨 둘이 함께 그 속으로 텀벙 빠져 버렸다.''찰나의 순간에 물을 먹었고 빠른 순간에 구출 되었다. 석준이 죽을 것 같이 아프다면서 순발력은 굉장히 뛰어났다.''그녀의 상반신이 물의 여신처럼 물 밖으로 불쑥 올라왔다.''컥…… 입 안에 머금었던 물을 뱉어내고 쿨럭거렸다. 그러는 사이 사근사근한 손길이 그녀의 얼굴에 묻어 있는 물기를 닦아내어 주고 있었다.''“하여간 제대로 하는 게 없어요…….”''자상하고 굉장히 사려 깊은 손길과 걱정이 한껏 묻어 있는 얼굴이었으나, 말투만큼은 얄밉게도 빈정거림이다.''“그러고 계속 있을 거야? 그럼 나야 좋지. 아주 섹시한 여자가 도발 해 주겠다는데, 당연히 받아줘야지. 내 상태가 이래도 타고난 체력이 있는데, 남아도는 정력도 지금은 넘쳐나고…… 남자는 아파도 말이다, 금세 살아나는 게 있는 법이야. 쩝, 조금, 아주 조금 만족이 덜 되더라도 이해해라.”''뭐야, 이런 싸가지.''시현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주루룩 옷에서 떨어지는 물이 욕조 안 물과 합류 되었다. 그리고 허겁지겁 욕조 밖으로 나와서도 옷이 머금은 물은 계속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모양새가 참 요상하기만 하다.''이런 시현의 모습을 남자는 짙은 눈빛으로 바라보면서도 계속 이기죽거린다. 아무래도 옷이 착 달라붙어서 그녀는 불편했으나 남자는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어쮸, 라인이 살아 있는데…… 꼬맹이 너, 조금 더 크면 몸매 끝내주겠다.”''하여간 말은 유들유들하게 밉살스럽게 잘 한다니까. 아유 얄미워, 밉살스러워.''어디서 놈팽이 짓이야. 껄렁껄렁하고 경박하게 잘도 말한다. 시현의 온 몸은 뜨거운 물에 한번 빨갛게 물들고,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또 뻘겋게 달아올랐다.''획 뒤돌아섰다. 물이 뚝뚝 떨어져도 무시하고 나왔다. 안에서 화통하게 웃어 제키는 남자의 웃음소리는,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하여간 아파 죽을 것 같다고 한 것도 순 거짓말이지.''욕실에서 빠르게 나오다가 미끄덩거려서 넘어질 뻔 했지만 간신히 바로 옆에 있는 가구를 잡고 일어섰다. 그리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왔다.''붉어진 얼굴을 손으로 감싸 안았다. 그의 변태적인 말들…… 때문에 정말 함께 있는 것이 민망하다.''저 깐죽거림은 언제 끝날 것인가?''간신히 옷을 벗어 놓고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젖은 옷을 세탁실로 가져다 놓고 흥건하게 젖은 바닥도 모두 닦았을 즈음, 욕실에서 석준이 소리쳐 그녀를 부른다.''싫은데, 가기 싫은데…… 말간 외침이 계속 이어졌다. 아이들이 깰지도 모르는데, 이그…… 징그럽다.''시현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욕실로 다가갔다. 거의 가까이 가고 있는데, 벌컥 문이 열리고 하체에 수건만 두르고 나오는 남자가 안에서 나왔다. 시현은 냉큼 뒤로 돌아 섰다.''“흠…… 우리 사이에 이런 걸 부끄러워하면 되나? 내숭 그만 떨고 잠깐 부탁이 있어…… 허리가 너무 아파서 속옷을 입을 수가 없어. 구부리면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 네가 입혀 줄래?”''뭐어? 혹시 그거?''“변태!”''소리치고 방으로 들어왔다. 이젠 놀리는 방법을 달리 하려는지 계속 저런 식이다. 이젠 절대 옆으로 가지 말아야지…… 앞으로 바보 같은 짓은 그만하자.''결심 결심 또, 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