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스쿼시 가르쳐 줘요.”'묵묵부답인 그의 앞에서 생글거리며 웃은 여자가 먼저 유리문을 밀고 스쿼시 세트로 들어가 버렸다. 준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으나 모두 사람이 들어 있었다. 유리문 안쪽에서 손을 흔드는 희를 본 준이 라켓으로 바닥을 쿵쿵 쳤다. '‘약속이니까.’'그는 자신은 약속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약속이었다는 말을 거듭 되풀이하며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테니스나 배드민턴 같은 거죠?”'라켓을 양손으로 쥔 희가 득의양양한 눈빛을 보였다. 양손으로 라켓만 쥐고 있을 뿐 희의 탄력 있는 엉덩이는 뒤로 쭉 빠져 있었고 무릎은 빳빳하게 펴져 있었다. 배드민턴도 그렇지만 스쿼시 역시 마찬가지다. 자세는 낮추는 것이 기본이었다.'“자세 낮추십시오.”'“이렇게요?”'희가 엉덩이를 뒤로 더 빼고는 허리만 숙였다.'“다리 구부리십시오.”'준은 멀찍이 떨어져서 말로만 지시했다. 또 찌릿거리는 전류를 감당하는 위험을 부담하고 싶진 않으므로 희의 곁에서 떨어져 서 있었다.'“이렇게요.”'준이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라켓을 오른손에 쥐고는 기본자세를 취했다. 희도 열심히 따라하기는 했지만 온몸이 가늘어서 그런지 영 엉성하기만 했다. '“이렇게 말입니다. 안 보입니까?”'덤덤하게 말은 하지만 그의 음성에는 답답함이 어려 있었다. 희가 미간을 찌푸렸다. 직접 자세를 교정해 주면 좋을 텐데 표정을 굳힌 채 지시만 했다.'또 어정쩡하게 기마자세를 한 희가 라켓을 똑같이 한 손에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팔이 잘못된 모양이었다.'“라켓이 그렇게 뒤로 휘면 공을 어떻게 칩니까? 제대로 잡으세요.”'희의 곁으로 조금 다가 선 준이 냉랭하게 말했다.'“이렇게요?”'까만 눈망울이 그를 향했다. '“아니요. 팔을 더 뻗으십시오.”'“이렇게요?”'도무지 나오지 않는 각이다. 저렇게 서 있기도 힘들 것 같았다.'준이 결국에는 가까이 다가가 어정쩡하게 접힌 팔을 안쪽으로 잡아 주고 잠시 머뭇거리다 가는 무릎에도 손을 가져가 그가 원하는 각도에 맞게 구부렸다. 또한 뒤로 쭉 빠져 있는 엉덩이를 불만스레 노려보다 한 움큼에 잡힐 만큼 가는 허리를 잡아 곧게 세웠다. '온몸의 감각이 손끝으로 내달린 듯 뜨거운 기운이 그에게로 흘러들었다. 얼굴을 전보다 더욱 단단히 굳힌 그는 희의 자세를 모두 교정해 준 뒤에야 뒤로 물러섰다.'“귀가 빨개요.”'아하, 하며 라켓을 앞뒤로 흔들어 보던 희가 준을 돌아보다 눈이 동그래졌다. 귀 끝이 빨개진 채 얼음이 휘몰아칠 것 같은 얼굴을 한 준이 그녀를 쏘아보고 있었다.'“됐습니다. 공이나 던지죠.”'골이 난 듯 돌아서서 공을 줍는 준의 뒷모습을 보며 희가 빙그레 웃었다. 차갑고 서늘한 손이 그녀의 팔이며 다리, 허리를 만질 때 그녀 역시 그 작은 터치 하나하나에 알 수 없는 감각이 들었다. 최대한 닿지 않으려는 듯 각을 맞추곤 바로 떨어지는 손길에 헛헛함마저 돌 지경이었다. 야릇한 감각에 희가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눈 끝을 돌려 준을 보는 그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럼 이렇게 휘둘러요?”'희가 휘잉, 소리가 나도록 라켓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순간 손에서 힘이 빠져 라켓이 훌훌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정면에 있는 벽에 세게 부딪혔다.'“어…….”'희가 머리를 빙빙 돌리며 날아가 커다란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져 버린 라켓을 보고 고개를 돌려 준을 바라보았다.'“공을 치는 겁니다.”'‘저 입을 그냥 콱!’'희가 준을 향해 눈을 흘기고는 쭈뼛거리며 걸어가 허리를 숙여 라켓을 주웠다.'“흡!”'숨을 거세게 들이마시는 소리에 희가 몸을 일으켜 돌아보자 준의 귀 끝이 빨개져 있었다.'“왜요?”'“왜, 운동하는데 그런 바지를 입는 겁니까?”'준은 보았다, 희의 짧은 트레이닝팬츠 아래 감질나게 드러난 엉덩이 곡선을. '라켓을 주우려 몸을 숙인 희의 엉덩이가 그의 눈앞에 둥둥 떠다녔다. 바짓단 아래로 탱글거리며 올라온 엉덩이 선이 슬쩍 드러나자 준은 자신도 모르게 반응해 버렸다. '희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을 돌려 버린 준이 라켓을 꼭 움켜잡았다.'“뭐가요, 네?”'발걸음도 가볍게 소리 없이 다가온 희가 그의 앞에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한 세트 하죠.”'준이 희에게서 떨어지며 차갑게 말했다. '미란 이후로는 여자를 돌보듯 사업 도구로만 재고 그 가치를 결정해 왔던 그였다. 그런데 이런 몹쓸 반응이라니! '뱃속에 단단하게 뭉치는 기운을 하반신까지 보내지 않으려면 몸을 움직여야 했다. 희의 대답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준이 공을 허공에 띄우고는 거세게 라켓으로 내리쳤다. 그러자 빠르게 날아간 공이 벽에 부딪쳤다가 다시 튀어 올랐다. 그것을 빠르게 몸을 움직여 다시 되친 준이 공의 동선을 재며 발을 놀렸다.'“다음엔 내가 칠게요!”'어느 새 희가 라켓을 들고 그의 옆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벽에 튕겨 져 날아오른 공 역시 희 쪽으로 향했다. 속도가 굉장히 거세 눈 깜짝할 사이에 희의 코앞까지 날아들었다.'“어어어!”'준만큼 재빠르지 못한 움직임에 희의 안면이 공에 부딪치려는 찰나, 그녀의 손이 강한 힘에 쑤욱 당겨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빠르게 날아오는 공을 미처 피하지는 못했다. '“꺄앗!”'공이 뜨거운 열을 일으키며 그녀의 귀 위, 옆머리를 스치고 지나가자 희가 소리를 질렀다. 공은 희 뒤, 방탄유리에 부딪쳐 몸을 몇 번 더 튀기고는 바닥으로 떼구르르 굴러갔다.'“다쳤습니까?”'두 손으로 공이 스쳐 간 옆머리를 감아쥐고 인상을 찌푸리던 희가 가까이서 들리는 음성에 눈을 번쩍 떴다. 그러자 어디선가 본 옷이 고개 숙인 그녀의 눈 안에 들어왔다. 준이 입은 트레이닝복 일부분이었다.'희는 여전히 불에 덴 듯 화한 기운이 이는 옆머리를 문지르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준의 차갑지만 섬세한 얼굴이 한 뼘 거리에서 그녀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가슴이 이 두근, 삼두근 마구 뛰어 댔다. '“다쳤습니까?”'준이 다시금 물어 오자 희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안 다친 것 같아요? 아파요. 아파 죽겠네.”'희가 옆머리를 계속 문지르자 준이 손을 들어 희의 손을 떼어내고는 그 부분을 들여다봤다. 머리카락 속 두피가 빨간 것이 정말 큰일 날 뻔했다.'“아, 얼굴에 빵꾸날 뻔했네. 무식하게 이런 걸 왜 해요?”'괜스레 가까운 거리가 쑥스러워 희가 쫑알거렸다. 바로 눈앞에서 준의 굵직한 목과 목젖이 꿈틀거렸다. '“가르쳐 달라고 한 건 그쪽입니다. 얼음으로 식히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준은 저도 모르게 희의 옆머리에 입 바람을 살살 불어 가며 말했다. 그 살랑이는 바람에 희의 심박수가 더욱 빠르게 급증했다. 커다란 손이 머리카락을 살살 매만지며 파헤치더니 잘 보이지 않는지 뒤통수를 감싸 끌어당겼다.'“머리는 안 빠질 것 같습니다.”'준이 희의 머리통을 살살 만지며 말하는데 그의 어깨 위로 손이 올라왔다. 문득 자신들이 취하고 있는 자세가 생각나자 준이 희의 머리에서 손을 뗐다. 하지만 그녀의 가는 다리, 그것도 허벅지에 뻔뻔하게 올라가 있는 또 다른 손은 그대로 있었다.'“얼음찜질 해 주려고요?”'준을 올라타고 앉은 희가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그러자 준이 나머지 한 손마저 떼어내며 팔을 뒤로 짚었다. 그러자 희와 어느 정도 거리가 생겼다.'“괜찮은 것 같으니 비켜 주시겠습니까.”'준이 얼굴을 굳히며 희를 보았다. 그녀를 거세게 잡아당기는 힘의 반향에 바닥으로 넘어진 그의 다리를 희가 타고 올라앉은 상태였다. 준이 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희의 상처를 먼저 살핀 것이다. '가늘고 부드러운 여체가 다리 위에, 그것도 짧은 팬츠 속의 말캉한 엉덩이가 허벅지 위로 느껴지자 준이 턱에 힘을 바짝 줬다. 턱에 힘을 줘 봤자 별 상관이 있으랴 싶었으나 그렇게라도 해야 제멋대로 날뛰려는 감정이 통제될 것 같았다.'준의 얼굴에서 당혹감을 읽어낸 희가 더욱 진하게 웃었다. 재미있었다. 이 남자를 보면 늘 생각한 거지만 골려주고 싶었다. 차갑고 하는 말마다 재수 없는데 지금 그녀와 그가 처한 상황이 너무도 짜릿했다.'“강준 씨.”'준이 쌍꺼풀 진 서늘한 눈매로 희에게 무언의 압력을 줬다. '“우리가.”'가늘고 긴 팔이 뻗어 와 그의 목을 감아 끌어당기자 준이 버텼다. 하지만 덜덜거리며 삐거덕거리는 목이 그녀에게로 당겨졌다. 목 힘 하나로 두 손으로 끌어당기는 힘을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이렇게 하면.”'희가 엉덩이를 앞으로 조금 더 당겨 안자 늘씬한 허벅지 사이로 옷 속에 감춰진 탄탄한 복부가 닿았다. 더불어 그의 심벌 역시 엉덩이에 묵직하게 짓눌렸다.'“비키십시오.”'준이 냉랭한 얼굴로 다시 한 번 서늘하게 말하자 희가 빙글거렸다.'“연애하는 것처럼 보일까요?”'“무슨……!”'희가 급작스럽게 그의 목을 끌어당겨 안았다. 그러자 작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희의 가슴이 그의 목울대에 닿았다. 날씬한 복부 역시 그의 탄탄한 가슴에 딱 들어맞았다.'“이렇게 하면요.”'희가 일부러 준의 예민한 귀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