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리 다 나았어요, 이제 강재희 씨가 있을 필요가 없다니까?”'“내가 있어.”'“…….”'“널 보면 여기가 아파. 그러니까, 이제 네 차례야.”'수연의 손과 발이 돌돌 말려 접혀질 것만 같았다. 저 말도 안 되게 느끼한 입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 약혼자가 있다고 공격해도 파혼했다고 방어하고 사람이 변했다고 말하면 툭, 넘겨버리고. 이제는 정말 사람이 장난감이 된 기분이라 울적해져버린다. '이렇게 자꾸 다정하게 굴면 아직 움트지 않은, 움텄다하더라도 햇살을 받아들이지 못한 싹이 저도 모르게 솟아올라 아무것도 할 수 없게 꽁꽁 묶어둘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게 무서워서, 척척 걸어가자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는 동안 재희가 곧 자신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 뺐다.'“…….”'“뭐에요?”'그가 내민 손바닥에는 도어 록을 쉽게 풀 수 있는 전자열쇠가 들려 있었다. 동그란 판이 회색으로 빛을 보이고 용도는 알아도 쓰임을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려오자 재희는 수연의 손을 잡아 펼쳐 그 위에 열쇠를 놓아주었다. '“내 집 열쇠.”'“어…….”'“유일하게 내 이름으로 있는 거다.”'“…….”'모두 거짓인 가운데 단 하나뿐인 진실. '그래서 유일하게 그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을 재희는 선뜻 내밀고 있었다. 그래봐야 노(老)회장의 아래에서 버둥대는 꼴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다른 건 필요 없이 지금 강재희는 딱 지수연만 보인다. '사람들 앞에서 키스를 하고, 다리를 만지고, 안아대던 그것처럼. '간만에 오만한 표정이 재희의 얼굴에 서렸다.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그녀를 밀어 넣고 대신 층수를 눌러주며 기대어 선 그는 수연의 짧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다가 곧 몸을 떼어내었다. 움츠리고 볼을 붉히는 수연은 무척 부끄러운 듯하면서도 앙칼지게 툭툭 쳐댔고 열쇠만 이상하게 노려보았다. 그것이 어찌나 귀여운지 재희는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다시 잡고 고개를 쭉 뺐다.'“알지.”'난데없이 뭘 알겠어, 수연은 재희의 뜬구름 잡는 소리를 대충 흘려들으며 찌푸려진 눈으로 열쇠를 다시 돌려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뭘요.”'퉁명스럽게 대꾸하는 그녀에게 다가온 재희가 가볍게 입을 맞췄다. 맞이하면 맞이할 수록 이 입술은 점점 더 사랑스러워진다. 순식간에 립 키스를 당한 수연이 당황해 제 입술을 봉하는 순간 닫히는 문 사이로 재희의 뻔뻔한 음성이 들려왔다.'“내가 너 사랑하게 된 거.”'툭'그에게 다시 주기 위해 내밀었던 손에서 열쇠가 바닥으로 떨어져버렸다. 그녀의 심장만큼이나 세게.'……세상에. 딱히 믿고 있지는 않았지만 요즘 들어 무지하게 불러대고 있는 하느님.'수연은 멍하니 떠진 눈으로 재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엘리베이터 문이 완전히 닫히면서 그의 얼굴에 애틋한 애정이 여과 없이 돌아왔다. 불에라도 덴 듯, 온 몸이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