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 그 여자, 장미후.''느닷없이 뛰어 들어온 여자는 성 작가를 끌어안고 울먹이기 시작했다. 2회분 대본이 나왔다고 해서 잠깐 성 작가의 집에 방문했던 참이었다. 꼼꼼하게 대본을 훑어보고, 미심쩍은 부분은 체크해가며 성 작가와 함께 작품에 대해 논의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워낙에 자기주장이 강한 작가이다 보니 일을 하다보면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당연히 조율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대개 작가의 집에까지 방문해서 대본을 다시 보고 같이 논의하고 수정하는 일은 없었다. 물론 서재경 작가 역시 그렇다고 했었다. 자신을 만나기 전까지는. '“지금이 몇 시냐?”'성 작가가 여전히 제 품에서 울먹거리고 있는 여자를 향해 물었다. 그녀의 물음에 괜스레 자신의 고개가 돌아가는 건 왠지 모르겠다. 시간은 벌써 12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자신이 이 집을 방문한 것이 7시. 벌써 4시간이 넘게 대본을 보고 상의하고 있던 중이었다는 것이다. 상의라기보다 대부분에서 대립되다보니, 다투는 게 태반이었지만 말이다.'“좀 늦었다. 그죠?”'성 작가의 물음에 힐끗 벽시계를 쳐다본 여자는 작은 혀를 쏙 내밀며 대꾸했다.'“많이 늦었지. 지금 12시거든요? 어떻게 왔어? 택시 탔어?”'성 작가가 새치름하게 눈을 흘기자,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다 동그랗게 뜬 눈을 요리저리 굴려댔다. 그 모습에 픽 웃음이 났다. 하지만 그 웃음에도 여자들은 자신을 쳐다보지 않았다. 둘에게 자신은 마치 없는 사람 같았다. 성 작가는 작은 여자를 - 여자는 작았다. 얼굴도, 몸집도, 눈물을 훔쳐내는 하얀 손도 - 달래느라 그랬고, 여자는 이 시간에 눈물바람으로 여기에 찾아올 수밖에 없었던 그 이유에 온 마음이 간 탓이라 그런 듯 보였다. 그는 철저히 관찰자의 입장에서 두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놓고 바라본다한들, 여자들에게선 별다른 항의가 없을 것 같았다. 두 여자는 각자의 이유로 서로에게 심취(?)해 있었으니까.'“꿈꿨어?”'성 작가가 물었다. 하지만 여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그럼, 갑자기 그 자식 생각났구나?”'다시 묻지만, 여자는 역시나 절레절레 고개만 흔들 뿐이었다. '그러니까 그럼 왜 운 거냐고. 그것도 이 시간에! '이젠 그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성 작가가 말한 그 자식에 대해서도. 아니, 여자가 성 작가와 무슨 관계에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서 가장 먼저.'“그럼?”'말해봐. 왜 그런 건데? '그 역시 집중했다. 그리고 곧 여자의 입술이 열렸다.'“자려고 누웠는데…….”'“누웠는데?”'“환이 얼굴이 생각 안 나잖아요.”'그래놓고는 또 서럽게 운다. 성 작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 이걸 어쩌지 라는 표정으로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그게…… 그렇게 서럽냐?”'입술이 바들바들 떨리게 울면서도 고개는 줄기차게 끄덕거린다. '대체 환이가…… 아아! '잠깐 누구지? 하고 생각했다. 한데 곧바로 떠올라버린다. 이 환. 서재경작가의 단 하나뿐인 아들. 삼 년 전, 느닷없는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우영아, 서재로 들어가서 봐. 얘, 좀 더 울 것 같다.”'그제야 자신의 존재가 생각났던지, 성 작가가 그에게 말했다. 그는 성 작가를 향해 고개를 한 번 까딱이고는 서재로 들어갔다. 여자의 눈이 동그래진다. 설마, 여기 자신이 앉아있었다는 것도 몰랐단 말인가? 그의 미간이 대번에 구겨졌다.''“일단 좀 앉자.”'우영이 서재로 들어가자, 재경이 미후를 향해 말했다. 미후는 그녀의 말에 말 잘 듣는 아이마냥 소파 한 가운데 자리를 잡고 앉았다.'“그만 좀 울어. 환이 보내고 너랑 나랑 만날 때마다 너 이렇게 울어. 이런 너 보는 나도 좀 생각해주지?”'“죄송해요.”'그제야 훌쩍훌쩍 울음을 멈출 기세를 보였다. 그런 미후를 바라보다 재경은 물을 한 잔 따라다 미후에게 건넸다. 꿀꺽꿀꺽 시원하게 한 컵을 다 비우더니 다시 또 배시시 웃는다. 그렇지.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그랬다. 그것을 몸소 체험하게 만든 이가 이 아이 아닌가. 처음 환일 따라오던 날부터 연방 웃는 낯이던 녀석이었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밉게 보려 해도 미워보이지가 않던 녀석이었다. 늘 상 웃는 낯이었으니, 어찌 미워 보일 수 있었을까.'“엄마 보면 환이가 딱 떠올라. 엄마가 환일 많이 닮았잖아.”'울음 끝이라 코맹맹이 소리로 말하는 미후를 살짝 흘겨보며 재경이 대꾸했다.'“야, 내가 환일 닮은 게 아니라, 환이가 날 닮은 거지.”'“어쨌든. 닮았단 게 중요하지. 처음에 되게 놀랬게? 엄마 눈을 환이한테 박아놓은 것 같더라니까. 새까만 게 얼마나 반짝거리는 지…… 얼마나 예쁜지…….”'“또 울어봐?”'재경이 무섭게 인상을 썼더니, 미후는 눈을 깜빡거리며 이제 막 솟아나오려던 눈물을 말렸다.'“장미후.”'“네?”'“열녀문 세워주랴?”'“…….”'“환이 보낸 지 벌써 3년이야. 나도 너처럼은 안 그래. 엄만데도 안 그래.”'“엄만 원래 정이 메마른 사람이잖아.”'새치름하게 대꾸하는 양이라니. 재경이 미후를 슬쩍 흘겼다. 그랬더니 입술을 삐죽이며 조용히 맞잖아, 그런다. 하!'“이제 좀 편해지자. 그 자식은 이제 추억이야. 현재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얘기야. 조금씩 버리는 것도 필요하단 말이야. 그렇게 끌어안고 현재를 슬퍼할 필요는 없다는 거야. 환이도 그걸 바랄 테고…….”'“근데, 엄마…… 그리움은 말이야. 현재예요. 그 그리움이 끝나지 않는 한, 난 환이 못 놔. 어떻게 놓겠어. 어떻게 그 이쁜 자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