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왔어? 벌써 20분 지났나?”'준석은 식당 한쪽에 걸린 시계를 보며 말했다. 회사에서 여기까지는 꽤나 먼 거리였다. 아직 10분도 지나지 않은 시간인데 형이 왔을 리가 없었다.'“몸보신이라고 말할 때부터 알아봤어. 너한테 봄이 몸보신 좀 시키라고 부탁한 게 잘못이지. 어휴, 중간에 차가 막혀서 그렇지 안 그러면 더 빨리 왔을 거야. 봄이 많이 마셨냐?”'“그냥 조금. 소주를 마셔서 그런지 금방 뻗었네.”'“인마, 미성년자한테 술을 먹이면 어쩌자는 거야?”'“그러는 형은 미성년자랑 결혼도 했으면서 핀잔은.”'준석이 툴툴댔지만 연석은 신경 쓰지 않고 미동 없는 봄을 일으켜 세웠다. 연석이 일으켜 세운 보람도 없이 봄이 축 늘어져서 테이블로 머리가 떨어졌다. 연석은 찰나에 테이블 위로 손을 얹었다. 그의 손 위로 봄의 머리가 안착했다.'“안되겠다. 봄이 업어야겠어. 봄아. 여보, 정신 좀 차려 봐.”'“으응. 잘래.”'“그래, 얼른 집에 가서 자자. 업힐래?”'“싫어. 안아 줘.”'“안기고 싶으면 제대로 앉아. 그래야 안아 주지.”'봄은 벌떡 일어나서 탁자를 지지대 삼아 허리를 곧추세웠다. 곧 연석이 팔을 벌리자 폭하고 그의 품으로 안겼다. 그는 봄의 다리 사이에 손을 넣어 봄을 들어 올렸다. 가볍다. 식사에 신경을 쓴다고 썼는데도 여전히 봄은 가볍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얼굴도 많이 상한 것 같았다. 연석은 봄의 바짝 패인 볼우물을 보자 마음 한 구석이 싸하니 아파왔다.'“오빠…….”'“그래, 오빠 왔어. 오빠랑 얼른 집에 가자.”'여느 때와 달리 얌전히 안겨오는 봄을 보면서 연석이 얼른 정신을 차렸다. 옅은 알코올 냄새가 났다. 연석은 봄을 이렇게 만든 준석에게 눈을 빗뜨다가 밖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준석아, 차 문 열어.”'준석이 밖으로 나가서 차 문을 열자 연석이 조심스럽게 뒷좌석에 봄을 뉘였다. 연석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연석이 봄을 뉘이고 자리를 봐줄 동안 준석은 가게로 돌아가서 계산을 하고 봄의 신발과 책가방을 챙겨 가게를 나왔다. '“형. 나 형네 집에서 자고 가면 안 돼?”'“안 돼.”'“빨리 집에 가서 형수 재워야 하잖아. 형수 불편하게 뒷좌석에 놔 둘 거야?”'“남는 방 없어. 넌 여기서 택시 타고 가.”'“형! 아오, 내가 진짜 잠만 자고 간다니까? 거실에서 자도 되니까 형네 집에 재워 주기만 해. 응?”'제발, Please. 준석이 애원하자 연석이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석이 넌 봄이 안 떨어지게 뒷좌석에 타.”'“Yes, sir.”'준석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운전대를 잡는 연석을 향해 슬쩍 웃음 지었다. 뒷좌석에 뻗어 있던 봄이 뒤척이자 준석이 봄의 머리를 들어 자신의 다리에 얹어 놓았다. 아까보다는 한결 편한 자세가 되어선지 봄의 입가도 느슨하게 늘어졌다.'준석의 휴대전화에서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진동으로 해놓지 않아 제법 큰 소리가 나자 운전을 하던 연석이 백미러를 통해 준석에게 일렀다.'“진동으로 해 놔. 봄이 깬다.”'“술 마셔서 소리도 못 들을 건데, 뭐. 형은 봄이라면 진짜 사족을 못 쓰더라.”'“시끄러워. 휴대전화나 진동으로 해 놔.”'“네, 네.”'준석은 휴대전화를 열어 수신자를 확인했다. 아버지였다. 진동으로 바꾸고 문자를 확인한 뒤에 아버지에게 문자를 보냈다. '- 오늘 형네 집에서 자고 갑니다. - '조금 있으니 아버지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준석이 연석의 부탁으로 봄을 만나러 간다고 했을 때부터 연석과 봄을 좀 붙여주라고 신신당부하던 아버지였다. 집을 나선지 한참 지났으니 일이 어떻게 됐나 궁금할 법도 했다. '- 성공했다니 다행이구나. 역시 그 둘은 좀 붙여 놔야 해. -'운전하는 틈틈이 뒷좌석에 있는 봄을 훔쳐보던 연석은 혼자서 실실 웃고 있는 준석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녀석이 여자가 생겼나?’ '연석은 워낙 자유분방한 녀석이니 여자 문제일 수도 있겠다 싶어 그냥 신경을 꺼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