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쭈? 네가 노려보면 어쩔 건데? 네가 노려보면 우리가 무서워서 도망갈 것 같냐?”'긴 생머리의 여고생들이 봄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퉁퉁 튕기며 말했다. 봄은 가방을 꼭 끌어안고 여고생들을 계속해서 노려봤다. 저 작은 체구 어디에서 그런 깡이 나오는 것일까. 여고생들이 손으로 꾹꾹 누르던 이마는 이미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눈 안 깔아?”'“싫은데?”'“와, 얘 봐라? 얘가 무서운 걸 모르네.”'손가락으로 이마를 퉁기던 여고생은 이제 손바닥으로 봄의 머리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봄의 이마가 슬쩍 구겨졌다. 그러나 피하진 않았다. '짝!'차진 마찰음이 봄의 귓속으로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피부끼리 달라붙어 찌르르한 통증을 만들어내는데도 봄은 앓는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그저 이런 아픔쯤이야 금방 지나가리라, 그렇게만 생각할 뿐이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이런 식으로 맞아본 적 없었지만 이것보다 더한 아픔을 봄은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봄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추슬러 앙버텼다. '“독한 년. 네가 뭔데 우릴 무시해.”'“무시한 적 없어. 그냥 신경을 끈 것뿐이야.”'“웃기시네. 네 그런 태도가 정말이지 짜증나. 알아?”'“내가 왜 남의 기분까지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는 건데?”'봄은 지루하다는 듯 하품을 했다. 여고생들은 그런 봄의 행동에 더 열이 받았는지 더 세게 머리를 내려쳤다. 봄의 긴 머리카락이 여고생들의 손짓을 따라서 허공에서 흔들렸다. 봄은 머리카락의 무의미한 춤사위를 지켜보며 지그시 속눈썹을 내리깔았다.'“얘는 더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다.”'“때려서 들었을 정신이었으면 진즉에 들었겠지.”'“아오. 뭐 이런 게 다 있냐?”'“그만 해!”'불쑥 들리는 남자의 음성에 여고생들이 놀라서 한걸음 물러났다. 저벅저벅. 남자의 구두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머리카락 끝자락만 내내 쳐다보던 봄은 자신의 발과 마주 선 남자의 구두를 보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허공으로 들린 시선이 익숙한 얼굴과 마주했다.'“괜찮니?”'오랜만에 느낀 연석의 진지한 눈빛이 봄을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봄은 금방이라도 저를 와락 끌어안을 것 같은 연석을 피해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여기 뭐 하러 왔어요?”'“내가 괜찮으냐고 물었잖아!”'“시끄러워요. 나한테 소리치지 마.”'연석은 뭐 하러 왔냐며 소리치는 봄의 팔목을 세차게 움켜잡았다. 그에게 잡힌 팔을 빼내려 봄이 온몸을 비틀어댔다. 그러나 연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봄을 붙잡은 채 여고생들을 향해 싸늘한 눈길을 던졌다.'“너희들 지금 봄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아저씨가 무슨 상관이세요?”'“폭력으로 인해서 어떤 처벌을 받을 수 있는지 알고나 대드는 거냐? 친절하게 읊어줄까?”'“돼, 됐어요. 에이, 재수가 없으려니까.”'연석의 당당한 음성에 여고생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연석은 여고생들이 뒷걸음질로 으슥한 골목을 벗어나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고 나서야 봄을 향해서 시선을 두었다. 봄은 여전히 연석을 벗어나려 몸부림 치고 있었다. 잠시라도 그와 살갗이 닿는 걸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그의 손을 연방 꼬집어 빨간 자국까지 만들어놓았다. 연석은 선명하게 손톱자국이 남은 손을 보며 잠시 한숨을 쉬었다가 봄을 품에 안았다. '“이거 놔요. 남들이 보면 원조교제 하는 줄 알아요.”'“나만 떳떳하면 돼. 원조교제 아니잖아, 우리.”'“남들이 그렇게 본다고요! 아저씨. 내가 그랬죠? 나한테 잘해 주지 말라고.”'“그럼 맞고 있는 애를 그냥 두니?”'연석은 품에서 잠시 봄을 떨어뜨려놓고 얼굴을 확인했다. 머리를 제법 세게 맞은 것 같았는데 이마가 붉어진 것 빼고는 별다른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그의 안도 섞인 한숨이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연석이 다시 봄의 뒤통수를 소중하게 감싸고 봄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봄의 귓가가 그의 가슴에 안착했다. 와우를 통해 들어오는 그의 심장 박동 소리가 봄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빨라지는 그의 박동이 자꾸만 봄을 목메게 만들었다. 봄은 콱 막혀버린 음성을 들키지 않으려 억지로 입술을 꼭 깨물고 숨을 참았다. '“제발 도망 좀 가지 마라.”'“비켜요. 숨 막혀.”'봄은 연석을 밀쳐내고 교복 치마를 툭툭 털었다. 치마가 손바닥에 부딪혀 거칠게 들썩거렸다. 대충 치마를 털어낸 봄은 어깨에 둘러져있는 가방을 퉁겨 메고 무심한 듯 연석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먼저 걸음을 옮겼다.'“봄아, 잠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