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준수한테도 애프터 신청 받았니?”'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선 아무리 궁금해도 묻지 않는 게 옳았다. 하지만 초조한 마음으로 앉아 있던 은진은 참지 못하고 도연에게 물었다. 어제 했던 미팅에서 첫눈에 반한 준수가 그녀의 파트너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응.”'일분일초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기다렸다는 듯 도연의 육감적인 입술에서 대답이 흘러나왔다.'쪼옥.'심드렁하게 대답한 도연은 만지작거리고 있던 스트로우를 이내 빨았다. 생과일주스의 냉기가 순식간에 뒷골과 식도를 자극해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채은진, 물어볼 걸 물어봐라. 도연이가 미팅해서 애프터를 한 번이라도 안 받아본 적 있었니? H대학의 퀸카로서 100% 성공률을 자랑하는데, 애프터를 못 받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희수는 도연의 떨떠름한 표정을 보고 나서야 대화에 끼어들었다. 왠지 모르게 조용히 넘어가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서였다. 실은 며칠 전부터 은진이 도연의 신경을 살살 긁어댔다.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지 않게 중재하려면 도연의 편을 들어줘야 하는 게 맞았다.'그렇다고 없는 사실을 말한 건 절대 아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하지 않던가. 도연은 어릴 때부터 흠 잡을 데가 없을 정도로 똑똑했고 외모 또한 출중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남학생들 사이에서 비너스라 불리며 추앙받았다. 대학교에 입학해서는 해마다 퀸카로 뽑혀 개교 이래 처음으로 4년 동안 퀸카 자리를 유지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추종자가 생겨났고 애프터 100%란 성공률도 갖게 된 것이었다.'“그건 좀 오버 아닐까? 도연이가 인기 있는 건 알겠지만…….”'희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은진이 묘한 뉘앙스의 말을 하다가 얼버무렸다. 도연은 물고 있던 스트로우를 급하게 떼어내며 은진을 바라보았다.'‘네가 이렇게 나온단 말이지?’'은진이 항상 시샘하고 있다는 걸 도연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베스트까지는 아니어도 친구로 지내는 사이라서 참아왔다. 하지만 기정사실로 알려진 것까지 비꼬자 기분이 나빠졌다. 요즘 들어 그녀가 신경을 긁어대도 참고 있었는데, 이번만큼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너 말 이상하게 한다. 뭐가 오버라는 거야? 미팅할 때마다 애프터 신청 받은 거 다 알면서.”'“호호호. 이도연! 네가 다른 애들보다 인기가 있다는 건 나도 인정해.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 세상 모든 남자가 너를 좋아할 거라는 생각은 좀…….”'“좀, 뭐?”'“아니다. 내가 말실수했다.”'은진은 도연이 까칠한 반응을 보이자, 더 하다가는 싸움이 날 것 같아 얼버무렸다.'“말을 했으면 끝까지 해야지, 왜 하다가 말아?”'“별말도 아닌데 괜히 말했나 보다. 미안해. 부러워서 그런 거야.”'‘부럽긴 개뿔.’'사실 은진은 도연에게 말한 것과 다른 마음이었다. K대 킹카인 준수까지 도연에게 넘어가자 부러운 건 둘째고 약이 올랐다. 게다가 좋게 말해주며 말싸움을 일단락을 지으려는데, 계속 물고 늘어지자 얄미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도연을 골탕 먹이고, 그녀의 인기까지 뺏고 싶다는 욕심이 스멀스멀 피어나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나도 중학교, 고등학교 땐 한 인기 했었는데. 정말 그렇게 해볼까?’'친구로서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은진도 알았다. 하지만 고향에서는 미인 축에 들었음에도 대학에 온 후론 도연에게 밀려나 이인자로 지냈던 날들을 떠올리니, 괜한 오기가 발동했다.'“채은진.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하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이 있음 해봐. 오늘은 우리 허심탄회하게 말해보자. 더 이상 너와 이런 일로 감정싸움하고 싶지 않으니까.”'“그래?”'때마침 들려온 도연의 목소리에 은진은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