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자 ‘혼인의 계절’이다. 그 수식어에 걸맞게 Lovebird 웨딩홀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에 걸맞게 북적거렸다. ‘Lovebird’는 모란잉꼬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사이좋은 부부나 연인’을 의미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면 영원한 행복을 보장받는다는 말이 생겨나 소리 없이 퍼져나갔다. '그 때문인지 이곳을 찾는 이들은 최소 6개월 이전에 예약을 해야 했으며 여자들의 로망인 5월의 신부를 꿈꿀 수 있는 5월은 최소 일 년 전부터 예약을 해야 좋은 시간을 고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사람들에 해당되는 일이었고, 소위 재벌이라 불리는 이들은 언제나 예약이 가능했다.'“꿈같아요.”'맑은 날에 어울리는 거짓 하나 느껴지지 않는 말간 남자의 목소리엔 감추지 못한 설렘과 떨림이 담겨 있었고, 그 말을 꺼내는 남자의 얼굴에선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어내고 칭찬을 받은 어린아이와 같은 기쁨과 행복이 가득했다. 그런 그와 대조로 남자의 말간 웃음을 바라보는 여자의 얼굴에선 알 수 없는 아픔이 느껴졌지만, 남자는 벅찬 마음을 추스르느라 알아차리지 못했다.'“뭐가요?”'“몇 시간 후면 당신이 아내라는 이름으로 내 옆에 있게 된다는 거 그게 꿈같다고요.”'이기우. 서한그룹의 장남으로 스물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기획실의 실장이라는 직위에 오른 이였다. 어려서부터 후계자의 재목으로 키워졌던 그였지만 ‘재벌가의 망나니’라 불릴 정도로 아버지 서한그룹의 회장 이우철의 뜻에 따라주는 이는 아니었다. 그런 그가 180도 달라져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 단 한 번도 정도에 벗어나지 않는 길을 걸었다. 또한 모든 것은 자로 잰 듯 착오가 없어야 했고,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감정이 없는 이가 되었다. 그랬던 그가 4개월 전 열병과 같은 사랑에 빠지며 달라졌다. '집안에서 정해준 혼처를 버림과 동시에 서한그룹과 연을 끊은 그에게 남은 것은 눈앞에 있는 수련에 대한 사랑뿐이었다. '이 여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지옥과 같은 일상 속에서 그곳이 지옥이라는 것을 모른 채 다람쥐 쳇바퀴 돌듯 기계처럼 살았을 터였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단 하나를 잃고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게 될까 두려웠다. 그 두려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련이 물었다. '“행복해요?”'“그걸 왜 물어요? 수련 씨 지금 몰라서 묻는 건 아니죠? 너무 행복해서 심장이 멎을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싶어 묻는 거죠? 후자라면 다행이지만 전자라면 서운해요.”'마주잡고 걷던 손을 놓으며 묻는 말에 수련은 걸음을 멈추고 기우의 눈을 바라보았다. 옅은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토록 강한 태양 볕에도 녹지 않을 것처럼 얼음 같던 그에게 자신이 두려움이 된다는 사실이 행복하기보단 아팠다. 허나 그 아픔을 내색해서는 안 되기에 수련은 옅은 웃음을 만들어냈다. '“전자 아니에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하는 수련에게 기우가 대답했다.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행복해요. 근데, 너무 행복해서 떨려요. 그래서 걱정이에요.”'“걱정?”'걱정이라는 기우의 말에 수련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 두려움의 박동을 억누르고 되묻자 기우의 굳어 있던 얼굴 표정이 순식간에 풀리며 장난스런 웃음이 나타났다.'“당신 손에 반지 끼워주다 손이 덜덜 떨리면 어떻게 하죠? 아니면 당신 ‘사랑한다’ 주례 선생님 앞에 맹세하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외치면 어떻게 하죠? 나 지금 너무 행복해서 이렇게 떨리는데.”'수련의 고운 손을 잡아 빠르게 뛰고 있는 제 심장 위에 올려놓은 기우의 얼굴엔 그 누가 보아도 절로 행복해질 웃음만이 가득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수련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미안해요.”'“뭐라고 했어요?”'너무도 작은 응얼거림과 같은 말에 알아듣지 못한 기우가 되묻자, 수련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그의 손을 잡아끌어 눈앞에 있는 Lovebird 웨딩홀로 들어갔다. '“아니에요.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