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변호사 부르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서재 좀 쓸게요.”'“마음대로.”'어깨를 으쓱하며 서재를 가리키는 민혁을 외면하고 분을 삭이며 서재 안으로 들어가 문을 쾅하고 닫아 버렸다. 움켜쥔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민혁은 분명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인 게 분명했다. 어쩜 저런 인간에게서 별이라는 작은 천사가 태어난 것인지……책상으로 가서 종이를 꺼내들었다. 마음의 여유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코끝에 스치는 책 향기에 취해 주변을 돌아보았을지도 몰랐다. 책상 위에 펼쳐진 하얀 종이 위에 이제부터 꼭 지켜야 할 것들을 적어 나갈 것이다. 계약이나 약속 따위를 내뱉은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건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다. 백지를 놓고 눈을 지그시 감고 심호흡을 크게 했다. 어차피 결혼하기로 한 이상 철저하게 무시해 줄 것이다. 그녀는 별이를 위해서 결정한 것이지 민혁에 대한 앙금 때문에 결정한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왜하냐고 질타를 해도 선택을 한 이상 나중에 별이의 곁을 떠날 때 웃으며 떠날 수 있게 최선을 다할 것이다. 현재 별이가 어려서 그녀를 의지하고 있지만 점차 그녀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 그것이 몇 년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동안 미뤄 두고 해 보지 못했던 것들을 하며 미래를 조금씩 설계해 나갈 것이다. 어찌 보면 그녀의 인생에 있어 휴가가 주어진 셈이다. 그것을 충분히 활용한다면 미래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보낼 수 있을 것이다.'‘정말 후회할 거야. 정민혁.’'' -꼭 지켜야 할 것들-''1. 서로의 사생활은 절대 참견하지 않기.'2. 별이를 제외하고는 어떤 것도 알려고 하지 않기.'3. 조금이라도 별이를 핑계로라도 스킨십을 하지 않기.'4. 모임이 있을 경우 우선 내 의견을 존중해 주기.'5. 어느 것 하나 마음대로 결정하지 않기.'6. 별이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 내가 무엇을 하든 참견하지 않기.'7. 집 안에선 최대한 별이와 같이 있을 때를 제외하곤 얼굴 마주치지 않기.'8. 별이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는 보내주기.'9. 마음에도 없는 연기를 하라고 하지 말기.'10. 일주일에 한번은 나를 제외한 별이와 지내기. (그 시간은 자유 시간.)'.'.'15. 위의 것들을 한 가지라도 어겼을 시 떠나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