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도 제대로 뜰 수 없을 만큼 난폭한 바람들이 사방에서 요동쳤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뒤에서, 앞에서 몰아치는 미친바람들은 거센 눈보라를 일으키며 사납게 울부짖었다. 시커먼 하늘을 뒤덮는 새하얀 눈가루를 헤집으며 달려 나온 남자는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주변을 미친 듯이 둘러보다 다시 눈보라치는 눈발 속을 달리며 무언가를 애타게 찾아 나섰다. '얇게 걸친 한 장의 와이셔츠는 쏟아지는 눈보라에 금세 흥건히 젖어들어 영하로 내려간 날씨에 딱딱하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무릎까지 쌓인 눈 탓에 제대로 달리지도 못하는 곳을 남자는 파헤치듯 흩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반드시 찾아야만 한다는 듯이, 자신의 몸이 얼어 가는 것도 알지 못한 채 남자는 위태롭게 사방을 헤맸다.'“하아, 하아…….”'가쁜 숨소리를 따라 흰 훈김이 피어올랐다. 알싸하게 어는 코끝에도 감각이 사라져 갔다. 가슴을 들썩이면서도 남자는 혹시 뭔가를 발견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자의 얼굴은 새파랗게 변했고, 그만큼 초조하고 불안한 듯 눈보라에 맞은 머리를 손으로 연신 휘저으며 더 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절박하게 사방을 둘러보며 뭔가를 찾아 헤매던 남자는 마침내 사방에서 때리는 눈보라를 향해 속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풀어놓듯 마구 손을 휘저으며 피를 토하듯 소리쳤다.'“안 돼!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없다구!”'남자는 그 말밖에 할 줄 모르는 자동인형처럼 똑같은 말을 하고, 또 하고, 또다시 했다. 비통하고 절실함을 쥐어짜듯 온몸으로 절절하게 부르짖었다. 하지만 남자의 애끓는 울부짖음에 되돌아온 메아리는 싸늘한 눈보라의 흐느낌뿐이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는 남자보다 더 비통하고 절절한 누군가의 또 다른 울음소리처럼.'눈이 내린다.'모든 것을 묻어버리는 무정한 눈이.'행복했던 추억도, 슬픔과 원통함도, 심지어 분노마저도 모두 이 눈 속에 뒤덮여 사라질 것 같았다. 그 스러지는 조각을 붙들기 위해 남자는 몸부림치고 있었다. 바람처럼 다가온 인연이 한 겹, 두 겹 겹쳐져, 모래를 적시는 빗물처럼 젖어들어 잃어버려서도, 놓쳐서도 안 되는 운명이 되었다. 그런 것이 한순간의 꿈처럼 날아가 버리는 것인가. 햇살 아래 덧없이 녹아버리고 말 미망(迷妄)이었던가. 남자는 그 비통한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리해 이렇게 눈발 속을 내달리는 것이다. '그 누군가를 찾을 수 있기를……. '그 누군가가 자신을 보아주길…….'일정한 방향도 없이 고함을 지르며 찾아 달리던 남자는 뭔가에 발이 걸린 듯 주춤거리다 앞으로 푹 고꾸라져 눈밭 위로 내동댕이쳐졌다. 남자는 일어나지 않은 채 손을 펼쳐 잡히는 대로 눈을 움켜쥐었다. 단단하게 뭉쳐지는 듯하다 손에 남아 있는 체온에 조금씩 녹아내리는 허망한 눈. 넓게 벌어진 남자의 어깨가 추위에 떨 듯 부들부들 떨렸다. 잔 떨림을 일으키던 어깨는 기어이 무너지듯 심하게 들썩거렸다. 억눌린 흐느낌이 남자의 입술 사이로 터지더니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크윽……. 흑…….”'무정한 눈바람은 남자의 애달픈 흐느낌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엎드린 그림자 위로 사정없이 떨어졌다.'단 한 번의 기회. 잃어버린 인연.'그 서글픈 현실이 보기 싫은 양 거센 눈보라가 몰아쳤다. 각양각색의 세상을 단 하나, 순백의 세상으로 가려 버리기 위해서 쉼 없이 눈발을 뿌렸다.'그 밤, 그 해 겨울 가장 많은 눈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