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딸랑, 방울 소리가 울렸다.'나풀나풀 떨어지는 연분홍 매화 꽃잎 사이로 영롱한 방울 소리가 맴돌다 사라졌다. 까르르거리는 치기 어린 웃음소리. 인형의 것처럼 작고 귀여운 소맷자락이 웃음소리를 따라 너울거리며 바람에 날리는 연분홍 꽃잎 사이를 나비처럼 팔락팔락 노닐었다. 어지럽게 흩날리는 꽃잎들 사이를 뱅뱅 휘감아 도는 연푸른 치맛자락. 딸랑딸랑, 윤기 흐르는 검은 머리카락에 앙증맞게 장식되어 있는 방울이 작은 머리통의 움직임을 따라 쉼 없이 맑은 소리를 울려댔다.'싸락눈처럼 내리는 분분한 천홍색 자락이 작은 여아(女兒)를 뒤덮었다. 티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처럼 깔깔 웃는 계집아이의 얼굴은 화사한 복숭앗빛이었다. 층층이 날리는 꽃잎들 사이를 빙빙 돌던 머루 같은 눈망울이 반짝 빛났다. 늘어서 있는 매화나무들 중 가장 커다란 나무 아래 서 있는 한 사내를 본 것이다.'“아버님!”'떨어지는 꽃잎들 사이를 돌개바람처럼 누비던 여아는 한달음에 달려갔다. 가쁘지도 않은 숨을 고르는 척 부러 헉헉거리면서 환한 얼굴로 아비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여아의 아비가 팔을 벌려 아이를 품에 안았다. 아이는 아비의 품이 좋은지 연신 젖살이 빠지지 않은 통통한 뺨을 아비의 옷자락에 비벼댔다.'“아버님, 아버님, 보세요, 청객(淸客)이 떨어지고 있어요. 예쁘지요?”'아이가 한 손으로 꽃잎을 날리고 있는 매화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그래, 예쁘구나.”'“어머님께 인사하고 이제 가는 거예요. 그죠?”'언젠가 아비가 변명처럼 만들어낸 이야기를 여태 기억하고 있는 듯 아이는 날리는 꽃잎 하나를 손바닥에 올려 받으며 귀엽게 재잘거렸다. 연분홍 눈이 쌓인 듯 몽실몽실 피어 있는 매화들이 이제는 하나둘씩 떨어져내려 흰 눈가루가 부서져 날리는 듯했다. '사내는 아이를 따라 날리는 매화 꽃잎들을 바라보았다. 이맘때 딸아이를 세상에 내어놓고 허망이 떠나버린 아내가 새삼스레 그리워 울컥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비의 맘을 모르는 아이는 아내를 닮은 얼굴로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 또한 맑은 아내를 닮았다. 사내는 아이를 단단히 안으며 소맷자락에서 옥함(玉函)처럼 네모난 상자를 꺼냈다. 뭘까 싶어 또랑또랑 바라보는 아이 앞에 상자를 내밀었다.'“열어보려무나.”'상자를 받아 든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비를 봤다.'“글피가 우리 소령(小鈴) 생일이기에 아비가 주는 선물이란다.”'선물이라는 말에 아이는 서둘러 상자를 열었다. 어른 손바닥만 한 상자 안에는 은팔찌처럼 보이는 둥근 환(環)이 붉은 비단 깔개 위에 자리해 있었다.'“아버님, 이게 뭐지요?”'아이는 자신의 팔목을 내보이며 의아한 듯 물었다. 아직 아이의 팔에 차기엔 너무 컸기 때문이다. 여아의 몽톡하고 두루뭉술한 팔목에 차면 헐렁헐렁한 것이 금방 쑥 빠져나올 듯했다.'“은린환(銀鱗環)이란다.”'“은린환이라고 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