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작화는 노란 꽃방울이 탐스럽지만, 먹게 되면 신경이 마비되어 숨을 멈추게 된다. 결국 죽음에 이르는 독초이지. 협죽도의 잎이나 나무껍질 또한 조금만 깨물어도 구역질이 나고 어지러움을 호소할 정도로 독을 가졌다. 디기탈리스는 독초이긴 하지만 심장약으로 쓰이기도 한다. 환자의 병세에 따라 독초는 사람을 죽이기도, 사람을 살리기는 독초이니라.”'“할아버지, 그만요. 귀 따갑게 들었던 이야기잖아요. 저기 있는 나난도 이미 다 외웠을 정도라구요.”'“너는 타이부족의 신녀(神女)다. 신녀로서의 자각이 아직도 부족한 게냐?”'“약초랑 독초 채취해올게요. 그럼 되죠? 다녀오겠습니다. 나난아, 가자.”'연은 자신의 할아버지이자 타이부족의 부족장 알칸의 가르침에 입을 삐죽이며 얼른 밖으로 나왔다. 뒤편에 조용히 서 있던 나난은 연의 돌발행동에 당황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다녀오거라.”'알칸의 말에 그제야 나난은 알겠다며 고개 숙여 인사한 후, 그녀를 따라나섰다. 그녀들이 나가고 난 후, 마을을 지키는 자신할멈이 알칸이 있는 움막 안으로 들어왔다. 자신할멈은 혀를 끌끌 차며 자리에 앉았다.'“아직도 저 계집을 감싸는 겝니까? 재앙의 씨앗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불행의 근원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할멈 그렇다 해도 나난을 버릴 순 없소. 연과 나난이 차라리 바뀌었다면 좋았을 것을.”'“그런 말씀 마세요. 감히 모르칸부족 따위의 배에서 낳은 계집을 어찌 그리 감싸고 돈단 말입니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그래도 가끔 악몽을 꾼다네. 아들이 그렇게 죽지만 않았더라면, 그 여자를 내가 죽이지만 않았더라면. 나도 이제 늙었나 보우.”'“며칠 뒤면 성년의 날, 그때는 반드시 떠나보내세요.”'자신할멈은 단호했다. 돌아서는 할멈을 보며 알칸은 아무말도 못하고 혀만 끌끌 찼다. 나난을 붙잡을 수도 그렇다고 데리고 있을수만도 없었다. '''부족장 알칸의 손녀딸이자, 타이부족의 신녀인 연은 나난에겐 소중하게 돌봐야 할 애기씨이자, 둘도 없는 친구 같은 존재였다. 최근 부쩍 잦아진 투정과 장난기에 알칸도 나난도 속수무책 당하기 바빴다.'“애기씨, 부족장님께서 역정 내시면 어쩌려구 그러세요.”'“너도 알잖아. 매번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지겨워.”'“애기씨두 참. 얼른 가세요. 날이 저물기 전에 풀을 뜯어야죠.”'“알았어. 난 이쪽으로 갈 테니까 넌 저쪽 산으로 가봐.”'“따로 가자구요?”'“그래야 빨리 찾지. 이젠 나 혼자서도 잘 다니니까 제발 쫓아올 생각말구. 알았지?”'“애, 애기씨, 날이 추워요. 땅이 얼어서 걸어다니기 힘들거에요.”'“괜찮아. 조심해서 걸을테니까 얼른 찾고 만나자.”'연의 당부에도 나난은 안심이 되지 않는 듯 한참동안이나 멀어져가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타이부족의 신녀라곤 해도, 늘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마냥 위태로워 보였다. 나난은 한숨을 내쉬며 산으로 들어갔다. 이곳엔 그녀만의 숨은 요새가 있어 늘 외롭고 힘들 때면 찾는 곳이기도 했다. 나난은 땀을 닦으며 금작화와 협죽도를 찾았다.'“찾았다, 돌미나리.”'독초를 찾고 난 후, 나난은 바닥에 드러누웠다. 나무 사이로 눈부신 햇살과 하얀 구름이 보였다. 추운 날이었지만, 땀을 잔뜩 흘린 탓에 온 몸이 끈적거렸다. 쭈그리고 앉아서 종일 독초를 찾아선지 허리도 아팠다. '“아무도 없겠지?”'나난은 독초들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옷을 벗었다. 그리곤 속치마 하나만 걸친 채 거리낌 없이 물속으로 들어갔다. 하얀김이 모락모락나는 온천의 따뜻한 기운에 손을 담궜다. 나난은씨익 웃으며 두 손에 물을 모아 세수를 했다. 햇볕에 그을린 주근깨투성이의 얼굴, 빨갛게 익은 볼과 커다란 눈망울이 개구진 사내아이와 닮아있었다. 예쁘지 않은 자신의 얼굴이 물에 비치자, 나난은 눈을 감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물속에 있다가 푸후, 물을 뱉어내며 고개를 들었다.'“꺄악!”'놀라버린 나난은 소리를 질렀다. 웬 사내가 맞은편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곤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당나귀에 실린 봇짐을 풀고 바닥에 앉았다.'“거, 거기 왜 있어요?”'“여기서 물 마시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건가?”'“유황이 섞여있는 물이라 먹음 안돼요.”'“그래? 그럼 어쩐담?”'“그쪽에 가죽물통 있으니까 그 물 먹어요.”'“고마워.”'사내가 가죽물통을 들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목이 한참 말라있던 차에 단비같이 시원하면서 상큼한 물맛이었다. '“그런데 물속에…….”'사내는 약간 씹히는 잎가루 맛에 입맛을 다셨다.'“박하잎이구나.”'“복통에 좋아서. 다 마셨으면 얼른 가요!”'“내가 왜?”'나난은 빨개진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 '“내, 내 옷이 거기에 있단 말이에요.”'“그래서?”'사내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서 팔짱을 낀 채 가만히 나난을 쳐다보았다. 난감한 나난은 등을 돌리고선 그에게 외쳤다.'“그쪽이 거기서 멀어져야 제가 옷을 가지러가죠. 아님, 가져다주던가요.”'“직접 가져가.”'“그럼 좀 비켜요.”'“싫은걸.”'남자는 그녀의 옷가지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곤 그 사이에 있는 이름 모를 풀들을 만졌다.'“식물뿌리를 채취해서 먹는 건가?”'“그, 그거…….”'나난이 말릴 사이도 없이 사내가 입안으로 풀을 집어넣었다. 놀란 나난은 소리를 지르며 물속에서 뛰쳐나왔다. 그리곤 목을 부여잡고 신음하는 사내의 옆으로 달려들었다.'“뱉어요. 어서 뱉어내라구요!”'“으윽.”'괴로운 듯 신음하는 사내를 보며 나난은 그의 등을 두 손으로 쳤다. 놀란 얼굴로 당황한 그녀의 손길에 남자는 신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키득거리는 웃음소리로 잠시 후 고개를 들어 크게 한바탕 웃음을 쏟아냈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난은 아무 말도 못하고 사내를 보았다.'그러자 사내는 입속에서 씹지도 않았던 풀을 도로 뱉어내며 피식 웃었다.'“독초를 모를 만큼 바보는 아니야.”'“이봐요!”'“그보다 고뿔 걸리겠어. 춥지 않아?”'사내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난은 얼른 뒤돌아섰다. 속치마 사이로 비치는 살결에 나난은 새빨개진 얼굴로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창피함과 두려움이 함께 엄습했다.'“걸쳐.”'사내는 곁에 있던 나난의 옷을 그녀에게 걸쳐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당나귀 등에 풀어둔 봇짐을 다시 올리고선 떠날 채비를 했다. 그러다가 나난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는 봇짐 속에서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내 잎을 입안에 집어넣고 질겅질겅 씹어댔다. 나난은 그의 행동을 의아한 듯 지켜보았다.'“왜…….”'다가서는 그의 발걸음에 나난이 흠칫하자, 그는 나난의 손을 잡아 그녀의 얼굴을 가까이 당겼다. 그리곤 입속에서 씹고 있던 삼백초를 꺼내 그녀의 어깨위에 올려주었다. 여기저기 긁힌 상처가 보기 안쓰러웠기 때문이다.'“이봐요!”'“삼백초야. 상처의 쓰라림이 좀 가실거야. 그럼.”'사내는 손을 흔들며 당나귀를 데리고 떠났다. 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난은 자신의 어깨에 놓인 삼백초를 만지작거렸다. 나쁜 사내는 아닌 듯 했지만, 한 번도 본 적 없는 복색이었다. 나난은 지금껏 타이부족 외의 다른 사람은 만나보지 못했다. 제 꼴만 이렇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나난은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마을로 돌아왔다. 예정된 시간보다 늦어졌지만 괜찮았다. 마을 사내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리고 있었다. 나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감을 들고 마을 공터로 나와 앉았다. 연의 빨래를 하러 나온 나난은 얼음같이 차가운 물에 두 손을 담그며 옆의 아낙들을 쳐다보았다.'“왜들 저렇게 모여계세요?”'“근처에 수상한 남자가 보였다나봐. 굉장히 우락부락한 사내인데 마을을 염탐했다는 거지.”'“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