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세우고 기다린지도 2시간이 지나갈 무렵. 꺼놨던 시동을 다시켜 히터를 틀며 바깥을 바라봤다. 자신이 바깥에 나올 때부터 어둑했던 길은 이제 새까매졌고 듬성듬성 불이 켜진 가로등빛으로 눈이 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네.”'승준은 무료하다 못해 화까지 날 지경이었다. 시간은 벌써 자정에 가까워져 갔고 차 안에 장시간 있던 승준의 몸도 반응을 보여 왔다.'“후아, 추워.”'몸을 부르르 떨며 담배를 피우기 위해 열었던 창문을 다시 닫고는 주변을 슬쩍 돌아봤다. '‘아무리 둘러봐도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안 보이네.’'결국 자신이 헛고생 했다는 걸 실감한 승준이 그녀의 집 앞을 슥 훑더니 안 되겠다는 듯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라이트를 켰다. 환한 라이트 불이 켜지자 승준은 허여멀건 무언가 때문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살빛이 비치고 걸어 다니는 걸 보아하니 사람은 맞는데 얼마나 걸어 온 건지 어깨 끝과 머리 위에 산처럼 쌓인 눈 때문에 사람인지 귀신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후줄근한 옷에 넝마 가방을 보고는 승준이 한숨을 내쉬며 차에서 내렸다. 얼마 되지 않는 거리를 지그재그로 걸어오는 그녀를 보니 거나하게 술이 취해있는 것 같았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랑 술을 마셨는지 여자를 저 따위로 보내는지 매너 빼면 시체인 승준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승준이 혀를 차며 성큼성큼 몇 걸음 걸어 그녀의 코앞에 섰지만 그걸 아는지 모르는 지 여전히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점점 더 승준의 근처에 다가왔다. 승준이 아차하는 순간, 은재가 승준의 가슴팍에 머리를 콩 박고는 뒤로 몸이 젖혀졌다.'“어?”'쓰러지는 은재를 승준이 한손으로 허리를 감아 잡아채자 은재가 반쯤 감았던 눈을 다시 번쩍 떴다. 목이 거의 꺾여 가로등 불빛이 직접적으로 닿았고 세상이 뿌옇게 보였다. 연거푸 마셨던 술이 다시 확 올라오는 거 같아 몸에 힘이 쭉 빠졌다. 그걸 알아챘는지 승준이 몸을 자신의 쪽으로 당겨 은재를 똑바로 세웠고 이내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흐릿한 시선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은재 때문에 승준은 결국 참지 못하고 다그치듯 물었다. '“뭡니까? 맘대로 전화도 끊어버리고 전화 걸어도 받지도 않고.”'“…….”'“술 마시느라 안 받았던 겁니까? 도대체 얼마나 마…….”'한참 자신을 세워놓은 은재에게 화풀이를 하려던 승준이 말을 멈췄다. 힘없는 그녀의 손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올라와 자신에 얼굴에 닿았기 때문이었다. 손을 올려놓은 채 미동 없이 수 초간 승준을 바라보는 은재의 눈빛은 지독히도 암울했고 또한 너무 깊었다. 승준 또한 그녀의 손끝이 닿자 순간 멍한 상태로 말을 잇지 못했다. 금세 부끄러운 마음에 그녀의 손을 치우려 했지만 왠지 모를 따스한 느낌에 그녀의 손을 뿌리 칠 수 없었다. 차가운 은재의 손이 얼굴에서 미끄러지듯 그의 목까지 내려와 승준의 목을 감아 자신의 쪽으로 끌어안았다. 그녀가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왠지 이대로 그녀의 손을 쳐냈다가는 그 큰 눈에 눈물이 흐를 것만 같은 얼굴이었기에 아무 말 없이 그녀에게 안겼다.'“미안해. 너한테 부담 줘서…….”'그녀가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다른 사람에게 하고자하는 말인지,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었지만 왠지 가슴 한쪽이 아파왔다. 누군가에게 애절하게 사과하는 사람에게 무슨 소리냐 묻기가 미안해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넋두리를 들어주었다.'“누나가……누나가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