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칵.'재완은 잠든 정인이 깨지 않도록 조심하며 차에서 내린 후 몇 대의 차량만 빼고는 텅 빈 것이나 다름없는 레스트 에어리어의 넓은 주차장을 훑어보았다. 거대하고 웅장한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고속도로변 한군데를 차지한 휴게소는 을씨년스러웠다.'한 시간 전 로키 산맥이라고 적힌 푯말을 지나쳐 온 이후로 하늘은 어두운 회색빛을 띠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비를 뿌릴 듯 무거운 기운을 내뿜으며 황량한 산속의 위용을 더욱 근엄하게 만들었다.'정인이 잠든 모습을 다시 한 번 쳐다본 후 습관처럼 차의 문을 잠그고 주차장의 넓이에 비해 턱없이 작아 보이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딸랑.'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종소리가 울린다. 그러자 상점 안쪽에 있던 주인이 서둘러 계산대 앞으로 나왔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큰 마을에 한 번 더 들를 생각으로 간단한 먹을거리와 신문을 주문하면서도 그의 눈은 주차장에 서 있는 자동차에 가 있었다.'계산을 치르고 주인이 물건을 담는 것을 지켜보던 재완은 문득 이제 막 주차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대형 트럭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트럭은 곧장 정인이 잠들어 있는 지프 옆으로 다가갔다.'재완은 쓸어 담듯이 물건을 담아 매점의 출구를 향해 빠르게 걸었다.''부우우웅.'재완은 자신의 바로 앞을 스쳐 지나가 한참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는 트럭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이곳은 미국이다. 긴 시간 비행을 하고 몇 시간을 차를 달려 로키 산맥으로 진입한 지가 벌써 한 시간째인데 아직도 떨치지 못한 예민함이 애꿎은 트럭을 향해 날카롭게 일어섰다. 위험한 지역에서 지내며 생긴 경계 습관이 시도 때도 없이 민감하게 튀어나온다.'세계 곳곳의 분쟁 지역을 돌아다녀서인지, 아니면 몇 년 만에 찾아온 휴가를 실감하지 못해서인지 그의 몸은 여전히 긴장으로 뭉쳤다.'탁.'재완은 뒷좌석에 구입한 물건을 내려놓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아직도 잠에서 깰 생각이 없어 보이는 여자의 옆모습을 한번 훑어본 후 시동을 걸었다.'부르릉.'시동 소리에 그녀가 깼을까 봐 다시 눈길을 돌렸지만 그녀는 여전히 잠든 채였다. 피곤할 것이다. 비행시간도 비행시간이지만 어젯밤 라스베이거스에서 보낸 하룻밤이 더 문제였을 것이다. 지난밤을 떠올리는 재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또 은근하게 피어오르는 욕망이 다시 아랫도리에 몰리자 낭패라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재완은 자세를 고쳐 앉고 천천히 액셀을 밟았다.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오늘밤 안에 산장에 도착한다면 그녀를 마음껏 안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생각만으로 마음이 급해진 그는 액셀을 밟은 발에 힘을 주었다.'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의 오두막에 그녀를 데려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그곳을 찾을 때면 늘 혼자였지만 이젠 그녀와 함께 보낼 시간들을 떠올리며 그는 더욱더 속력을 높였다.''무언가가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잔잔하게 울렸다. 툭, 툭 하는 소리가 음악처럼 리듬감 있게 울렸다. 일정한 박자를 유지하며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정인은 천천히 잠에서 깨어났다.'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투명하고 아름다운 물방울이었다. 잔잔한 물방울이 차창에 맺혀 주르륵 창틀 아래로 미끄러진다. 그리고 물방울이 맺혔던 그 자리에 또 다른 물방울이 이슬처럼 방울졌다.'비…….'정인은 완전히 눈을 뜨고 창 너머로 보이는 아름다운 광경에 감탄했다. 희미한 안개가 서린 숲은 틀림없이 요정들이 존재할 것 같은 환상의 세계처럼 신비롭게 보였다. 계곡 아래로 펼쳐진 붉고 푸른 광경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절경이었다. 내리는 빗줄기에 희미하게 퍼져 나가는 안개는 산허리를 휘감고 하늘을 부유하며 푸른 숲을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아름다웠다.'천천히 고개를 돌린 그녀는 운전에 집중한 재완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깬 것을 알고 그가 잠시 눈길을 주었다가 다시 길로 시선을 돌린다.'“배고프면 뒷좌석에 먹을 게 있어.”'저 남자는 강철인가? 어째서 피곤한 기색이 전혀 없을까?'정인은 지난 밤 자신과 마찬가지로 한숨도 못 잤던 그를 생각하며 의아해 했다. 부스스 몸을 일으킨 그녀는 뒷좌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런 봉투가 보인다. 그가 말한 먹을거리인 모양이다.'그녀는 다시 그를 쳐다보았다.'“피곤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