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햇살이 뭉근히 파고드는 옥탑방 마당에 비둘기가 내려앉았다. 제집 마당이라도 되는 듯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구구구구’ 울어 댄다. 지난밤 시켜 먹고 내놓은 자장면 그릇에 부리를 들이밀고 기어이 말라비틀어진 검은색 면을 끄집어냈다. 탁탁, 부리로 쪼아 맛있게 목구멍으로 넘긴 비둘기는 또다시 자장면 그릇에 파고들었다.'“훠이!”'그 순간,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비둘기를 쫓으려는 듯 험하게 울렸다. 하지만 이미 사람들에게 익숙해져 버린 비둘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그릇에 부리를 쪼아대고 있었다. 그러자 남자의 화난 슬리퍼가 날아왔다.'“이놈의 비둘기 새끼가!”'휙 날아간 슬리퍼는 비둘기가 재빨리 피하는 바람에 맞히지는 못했지만 비둘기를 쫓는 데는 효과가 있었다. 마치 화가 난 것처럼 ‘구구’거리며 옥상 아래로 날아가 버리는 비둘기를 보며 남자가 험악한 인상을 썼다.'“비둘기 새끼 주제에 사람을 보고 꿈쩍도 안 해? 네가 사람 새낀 줄 아냐?”'덜컹.'알루미늄 섀시로 만들어진 문이 열리며 젊은 여자가 얼굴을 내밀었다.'“밥 먹어.”'남자는 여자의 말에 던졌던 슬리퍼를 찾아 신고 안으로 들어갔다. 구수한 된장찌개와 김치 하나가 놓인 단출한 상이 차려져 있었다. 남자는 상 앞에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그러다 문득 화장대 앞에 앉아 있는 아내를 보고 인상을 썼다.'“아침부터 웬 화장이야?”'“미란 언니가 좀 보재.”'남자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왜?”'거울 속에 비친 아내의 얼굴은 아름다웠다. 화장을 하지 않아도 티 없이 고운 얼굴이다. 하지만 나이든 사람들이 하는 말대로 색기가 흐르는 얼굴이었다. 남자를 홀리는 데 강력하게 써 먹을 만한 눈은 웃을 때면 야릇한 주름을 만들며 유혹적으로 치켜 올라갔다. '하지만 오늘 아침 아내는 웃지 않았다. 아니, 최근 들어 웃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고생시키지 않겠다고 굳게 맹세하고 결혼할 때와 달리 이런 허름한 옥탑방에서 사는 것이 그녀에게는 늘 불만이었다. '아내는 큰딸을 낳은 후부터 점점 불만이 많아져 갔다. 둘째 딸을 낳은 후부터는 아예 대놓고 불평을 해댔다. 한때, 그가 잘나가는 행동대장이었을 때는 괜찮은 아파트에서 부족한 것 없이 살았지만, 이렇게 저렇게 밑의 아이들에게 치이고 형님들에게 밉보이면서부터 가세가 기울었다.'그래도 지금은 나아진 편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한참이나 먼 시골구석에서 살다가, 지금은 서울에서 살지 않는가. 비록 허름한 동네의 옥탑방이긴 해도. 하지만 이젠 좀 나아질 것이다. 어쩌면 다시 힘을 쓸 수 있는 기회도 잡을 것 같았다.'남자는 아내가 혹시 다른 마음이라도 먹고 결혼 전에 나가던 술집에 다시 나갈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그 여자는 왜 또 만나?”'아내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친언니나 다름없는데 만나지도 못해? 시골구석에 처박혀 있느라 만나지도 못했어. 언니가 서울바람 좀 쐬라고 밥 사 준대.”'“그래서 아침부터 화장질이야? 출근하는 남편, 밥상 앞에 덩그러니 앉혀 놓고 화장이나 해?”'아내가 신경질적인 동작으로 화장품을 딱 소리가 나게 내려놓고 돌아앉았다. 그리고 더 이상 싫은 소리 듣기 싫다는 듯 밥상 앞으로 다가와 앉았다.'“됐지? 잔소리 그만하고 어서 밥 먹고 나가. 오늘부터 나이트클럽 근무한다며? 어렵게 구한 자린데 일찍 가서 잘 보여야지.”'“그걸 알면서 왜 사람 속을 긁어?”'“알았어. 어서 먹기나 해.”'한층 기가 죽은 아내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남자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가 슬그머니 물었다.'“혹시…….”'남자가 눈을 치켜떴다.'“혹시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