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한, 그 남자의 목소리는 한마디로 단정 지을 수 없었다.'만약 꼭 표현을 한다면 차가움이나 단호함 중에 고민할 것이다. 27년을 살면서 들어본 목소리 중에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도은은 휴대폰 발신자를 확인하고 망설였으나 그의 성격을 말해주듯 끈질긴 벨소리는 어느새 전화를 받게 만들었다. 그녀는 작은 한숨을 쉬며 입을 들썩였다. 자신의 입장을 남에게 반복하는 것은 그리 편안한 일은 아니었다.'“네, 유도은입니다.”'-알고 있습니다. 유도은 씨에게 전화를 했으니…….'“네.”'그는 여전했다. 어쩌면 그녀가 하는 반복이 그에게도 해당되고, 일면식도 없는 철저한 타인끼리 곤혹이라는 단어를 나란히 앞에 두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시간이라는 것이 더 필요한 겁니까?'“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습니다.”'-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설마 제가 날짜도 모른다고 생각하십니까?'“그건 아닙니다.”'공격적인 질문, 그 남자의 성격 중에 일부분이겠지만 전부를 본 느낌이라 인상은 저절로 찌푸려졌다.'-그만큼 이쪽이 급하다는 말입니다. 정확하게 말씀을 해주십시오. 아니면 지금 시간이 되십니까? 만나 뵙고 싶습니다.'그녀는 침을 한번 삼켰다. 그의 막무가내는 매우 불편했고, 망설임의 꼬리마저 자르는 일이었다.'“저, 그렇게 급하시면 다른 쪽을 알아보시는 것이 좋겠네요.”'-알겠습니다.'그의 대답과 동시에 통화는 매몰차게 끊겼다. 그녀는 한동안 멍하니 전화기를 닫지도 못한 채 서있었다. 아쉬움일까.'만약 다른 종류의 대화였다면 기분이 상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의 차가운 목소리를 분명하게 들었음에도 그쪽의 사정을 알기에 조금의 화도 생기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휴대폰을 닫고선 다시 길을 걸었다.'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가을이 되려면 조금 남았지만 하늘은 높고 파랬다. 아버지는 저곳에서 행복할까, 아니면 인간의 감정을 모르는 한낱 영혼이 되었을까.'아버지가 떠난 지 벌써 오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원망하는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일 터였다. 하지만 생전 아버지의 무게를 잘 알고 있기에 한 자락의 투정조차 부릴 수 없었다.'사실 그 남자를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또한 현실을 생각하면 가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잘 다녔던 직장도 잃어버렸고 통장 속의 숫자는 줄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입주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린 것은 물론이거니와 홀로 남으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처음 그와 통화했을 때 바로 거절해야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녀의 목마름으로 남은 심리치료라는 것이 목구멍에 걸려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그저 그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로 듣는 것이 아닌 아이의 상처를 직접 보고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소망이 왜 없겠는가.'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는데 무언가 급한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하긴 어느 가족이 아이 앞에서 느긋해질 수 있을까, 아직 만나보지 않았지만 그의 말로는 부모의 이혼으로 따로 떨어져 살며 의사표현이 무척 서툴다고 했다.'어린 시절에 부모와 불행한 관계를 보낸 아이들의 상처는 꼬리를 물고 성장기까지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인생의 행복은커녕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았다.'언제나 자신에게 절대 한 가지의 이야기를 듣거나, 행동을 보고서 상대의 성격과 장래까지 추론하지 말자던 다짐이 약해졌다. 더구나 그 아이를 직접 보지도 않았으면서 왜 이렇게 그녀가 조바심이 이는 건지.'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끝난 이야기를 고심하는 것도 한심할 터였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떠밀려 마지못해 가고 싶은 욕구도 슬그머니 올라왔다. 어쩌면 목소리는 차가우나 조카를 열성적으로 생각하는 그의 마음이 와 닿은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