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우리 밥 먹을래?”'공주의 목소리가 나긋나긋했다.'“밥? 그렇지 뭐. 어디서 볼까?”'“자기 엄마 식당으로 와. 인사도 할 겸 거기서 만나자.”'용배가 후다닥 놀랐다.'“뭐야! 너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야? 아직 우리 엄마를 만날 만큼 우린 그런 관계가…….”'“잔소리하지 마. 나 먼저 가 있을 테니 어서 와.”'용배의 반응은 완전 무시당하고 있었다. 공주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이런! 젠장!”'용배는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아직 단 한 번도 엄마에게 여자를 소개시켜 본 적이 없는 용배였다. 막무가내인 공주의 너무 일방적인 행동이 은근히 부담이 되었다.'문득 어젯밤의 엄마의 말이 생각이 났다. 어디에 있는지 몰라도 세상 어디엔가 자신에게 맞는 짝이 있다고 했다. 글래머인 차 실장도 나가떨어진 마당에 가냘픈 공주가 자신과 궁합이 맞으리라곤 전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공주가 너무 일방적으로 나온다면 결국 서로가 심한 상처를 입을 것 같아 걱정이 앞선 것이다. 서로가 맞지 않는다면 그것은 풀기 어려운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었다.'서둘러 식당에 도착해 용배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식당 안은 손님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공주가 보이지 않았다.'‘휴! 아직 오지 않은 모양이네.’'용배는 한숨을 쉬었다. 밖에서 공주를 기다리다 다른 곳으로 가려고 생각했다. 막 발길을 돌리려고 할 때였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아가야! 7번에 소주 하나 드려라!”'그리고 뒤를 이어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예! 어머님!”'공주의 목소리였다. 용배가 깜짝 놀라 돌아보니 공주가 앞치마를 두르고 이마에 땀을 흘리며 주방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용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야! 너 여기서 뭐해?”'용배가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공주가 그를 돌아보며 배시시 웃었다. 그러자 엄마가 용배를 보며 소리쳤다.'“이놈아! 뭘 뻔히 보고 있어? 어서 덤벼들어서 저기 테이블 좀 치워라. 어서!”'엄마가 손님들이 먹고 나간 그릇이 널려 있는 테이블을 가리키며 음성을 높였다. 엉겁결에 용배도 팔을 걷어붙이고 덤벼들어야 했다. 공주는 조금도 어색한 것이 없이 식당 일을 척척 잘 해내고 있었다. 그녀는 손님들에게는 입 안에 혀처럼 곱살스레 구면서 재빠르기는 번개 같았다.'“아가! 여기 탕 올려라!”'엄마는 마치 공주를 며느리 부리듯이 일을 시키고 있었다.'‘저러다 정말 뒷감당을 어떻게 하시려고 저러시지?’'용배가 걱정이 되어 엄마를 바라봤지만 엄마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한참을 북새통을 치르고서야 한가해졌다. 손님이 좀 뜸해져서야 엄마는 자리에 앉으며 공주에게 말했다.'“아가! 이리 와. 이젠 쉬어도 된다.”'“네! 어머니!”'공주가 재빨리 달려와 엄마의 턱밑에 쪼그리고 앉았다.'“그래! 힘들지?”'“아뇨! 이 정도는 끄떡없어요.”'“그래? 하긴 너 엉덩짝이 재빠르게는 생겼다.”'엄마는 벌써 공주를 완전 며느리로 눈도장을 찍은 눈치였다. 문제는 공주가 제집 안방처럼 거침없이 식당을 오간다는 것이었다.'“야! 너 왜 이래?”'용배가 난감한 얼굴로 공주에게 물었다.'“왜? 내가 뭘 어쨌다고?”'“네가 왜 여기서 내 마누라라도 되는 것처럼 이러냐고?”'용배가 어이가 없어 공주에게 따지었다. 그러자 엄마가 용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난데없이 용배의 머리통을 후려 갈겼다.'“에라이! 망할 놈이 제 마누라 보고 말하는 꼬락서니 하곤.”'용배는 깜짝 놀랐다. '“엄마! 마누라라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용배가 펄쩍 뛰었지만 어머닌 눈도 깜짝하지 않고는 공주를 곁에 앉히고는 엉덩이를 톡톡 쳐 주었다.'“어이구! 예쁜 것! 어디서 이런 복덩어리가 굴러들어 온 거야?”'“고마워요! 어머님.”'공주도 같이 맞장구를 치며 애교를 떨었다. 기가 막힐 일이었다. 인사하러 가자고 한 지가 불과 한 시간도 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두 사람은 이미 20년은 같이 산 것처럼 허물없이 가까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