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지른 듯 솟은 절벽 사이로 거친 말발굽 소리가 뽀얀 흙먼지와 함께 뒤섞여 천지를 흔들었다.'“하. 하!”'말을 모는 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다급했다. 말발굽 소리 또한 규칙적이지 않았고 무언가에 쫓기듯 어지럽게 뒤엉켰다. 아니나 다를까. 뽀얀 흙먼지 뒤로 또 다른 흙먼지가 저돌적인 전차 군단의 모양새로 그들을 추격해 왔다. 뒤따르는 무리의 말발굽 소리는 절벽 틈으로 솟아 오른 바위기둥만큼이나 위협적이고 날카로웠다. 앞선 무리는 더욱 속력을 내 달렸다. 추격하는 무리도 그만큼 속력을 냈다. '하늘에 닿을 듯 높다랗게 솟은 절벽 위에서 그 숨 막히는 추격전을 여유롭지만 날카로운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한 사내가 있었다. 사내의 얼굴은 가면으로 가려져 있었다. 가면 아래 번뜩이는 눈동자는 들짐승의 날것 그대로를 품은 듯 맹렬했다. '추격전은 더욱 치열함을 더해 갔다. 목숨을 담보로 한 전투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앞 선 무리가 이전보다 좁아진 길로 들어서자 사내는 허리춤에 매어둔 호각을 꺼내들었다. 사내는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은 눈빛을 번뜩이며 호각을 길게 불었다. 그와 동시에 앞서 달리던 무리의 말들이 앞으로 거꾸러지며 말 위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누구 하나 그 사태를 피한 사람은 없었다. 사내의 신호에 맞추어 숨어 있던 군사들이 긴 쇠사슬로 말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 것이다. '놀란 말들의 포효소리와 날뛰는 말발굽을 피해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추격자들을 피해 황급히 달아나려는 자들의 다급한 숨소리, 그들을 쫓아가는 자들의 노련한 말발굽 소리, 달아나는 자들 위로 가차 없이 날아드는 화살, 격렬하게 부딪치는 검 소리, 죽어 쓰러지는 자들의 마지막 비명소리로 절벽 아래는 이전보다 더한 아비규환으로 얽혀들었다.'여전히 날카롭지만 여유로운 시선으로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난투극을 내려다보고 있던 사내는 날렵한 도망자를 발견하고 말고삐를 움켜잡았다.'“허!”'사내는 가파르게 깎아지른 절벽을 한 치 망설임도 없이 내달렸다. '“허. 허!”'사내의 목소리는 천지를 호령하듯 우렁찼다. 죽을힘을 다해 내달리는 동아는 그 우렁찬 목소리와 살벌한 말발굽이 그녀를 쫓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틀림없이 지배자였다. 그가 아니고서는 가파른 절벽을 그토록 날렵하게 말을 타고 내려올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사력을 다해 지배자로부터 도망쳤다.'중원에는 수많은 종족들이 크고 작은 부족을 이루며 살아 왔다. 부족들 간의 영토분쟁이나 세력 싸움이 끊이지 않았지만 ‘지배자’라 일컬어지는 절대 권력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중원의 판도를 바꿀 만한 큰 사건은 없었다.'지배자가 ‘추’ 부족의 족장으로 등장한 것은 사 년 전의 일이었다. 그는 이전의 족장이었던 친릭의 직계가 아니었다. 친릭의 장자를 제치고 족장이 된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친릭의 맏형이었던 친주의 아들이라는 소문만 나돌았다. 그가 어떤 절차를 거쳐 추 부족의 족장이 된 것인지, 친릭이나 그의 장자가 그에게 순순히 족장 자리를 내어준 이유가 무엇인지, 그 모든 것은 어둠 속에 감추어져 있었다. 중요한 사실은 그가 추 부족의 족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로 추 부족은 국가의 체제를 갖추었고 지배자는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황제라 칭하지 않았다. 그는 추 제국뿐만 아니라 중원의 지배자로 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