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8 1월 26일 수요일''“헉!”'우열의 입에서 충격이 섞인 짜증이 튀어나왔다. 도대체 이건 또 뭐란 말인가? 서류를 펴자마자 튀어나오는 수많은 숫자들에 그의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지난 이틀 동안 집에도 못가고 밤새 야근을 하고, 오늘도 온종일 서류들에 파묻혀있느라 짜증이 이마까지 올라와있는 상태인데 이 서류는 결국 그의 인내심을 바닥내버렸다.'이 여자가 정말 날 말려 죽이려고 작정한 거 아니야? '손 안의 펜을 책상 위에 내던져버린 그는 거칠게 인터폰을 눌렀다.'“고 실장, 당장 들어와요!”'고함치듯 말하고 벌떡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자 허리에서 저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장장 50시간 정도를 의자에 파묻혀 있었던 대가였다. 그런데 그 공을 알아주긴커녕,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내 오늘은 기필코 저 사감선생을 이겨보리라.'그가 굳게 결심하고 있는 사이 노크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그리고 고 실장, 다희가 가슴팍에 서류철을 안고 들어왔다. 뭐야, 저건 또? 우열은 서류를 저주받은 물건인 양 혐오스럽게 바라보다가 다희가 책상 앞에 다다르자 서 있는 채로 책상 위의 서류철을 집어 들고 내밀었다. 앉아서 다희를 올려다보는 것보다 서서 내려다보는 것이 조금이라도 위협적이지 않을까하는 계산된 행동이었다.'“이게 뭡니까?”'우열이 내미는 서류철을 흘끔 내려다본 다희는 태평스레 말했다.'“우리 태월 그룹의 지난해 재무제표입니다.”'“그걸 지금 누가 몰라서 묻습니까? 맨 앞에 쓰여 있는 글자는 나도 읽을 줄 압니다. 내 말은 이게 왜 여기에 와 있냐는 겁니다!”'우열의 으르렁거림에 다희는 검은 뿔테 안경을 치켜 올리며 한 박자 쉬고는 천천히 타이르듯 대답했다.'“이제 이사님도 재무제표에 대해 배우실 때라고 생각합니다.”'역시나! 이 서류를 처음 봤을 때부터 들었던 불길한 예상이 적중했다. 우열은 뒷골이 당겨오는 느낌에 두 눈을 감았다. 정신 차리자. 여기서 정신줄 놓으면 저 사감 선생이 원하는 대로 된다. 깊은 심호흡을 한 그는 눈을 떴다.'“난 홍보부 이사입니다. 총무부 이사가 아니란 말입니다.”'“어느 부서에 있건 이사라는 자리에 앉아있다면 최소한 우리 그룹의 재정 상태에 대해 파악하고 계셔야지요. 그건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그리고 이사님이 언젠가 총무부로 가실 수도 있으니 미리 배워두셔야 합니다.”'억지로 침착한 척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자신과 달리 정말로 차분하고 느릿한 목소리가 우열의 화를 더 돋우었다. 결국 매번 그렇듯 우열의 분통이 터졌다.'“고 실장! 정말 이럴 겁니까? 지난 한 달 내내 나 집, 회사, 집, 회사, 다른 데는 발도 들이지 못하고 집, 회사만 왔다 갔다 하며 일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더 부려먹을 작정입니까?”'우열은 애원조까지 섞어가며 절규했다. 하지만 다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무덤덤했다.'“오늘 저녁 일곱 시, 레드 바에서 친구들과 모임 있으십니다.”'그거면 되지 않느냐는 투다.'“고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