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남자의 첫 마디였다. 다소 무례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예의 바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그것. 그 말을 듣자마자 주리는 테이블 아래로 숨겨진 자신의 양손을 꽈악, 마주 잡았다. 그리고는 알아듣지 못했다는 듯 그에게 되물었다.'“네?”'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눈꺼풀을 깜빡거리는 주리의 말에 남자가 입술을 닫았다. 작고 어린 아가씨가 상처 받지 않을 거절의 말을 고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두 사람이 마주하고 있는 자리는 호텔의 커피숍. 대한민국의 맞선 보는 남녀들, 열이라면 여덟이 선택하는 ‘맞선 공식 지정 장소’였다.'다소 시끄러운 듯한 창밖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남자를 바라보며 주리가 숨을 한 번 고르는 동안 남자는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온 재킷 안주머니를 뒤져 담뱃갑을 꺼냈다. '“아직은 결혼할 생각, 없습니다.”'“저도 결혼할 생각은 없는데요?”'생각이 없는 듯한 주리의 말에 남자가 픽, 웃었다. '“그거 다행이네요. 생각이 같아서.”'불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가만히 물고 있던 남자가 입술을 느슨하게 잡아당겼다. 미소가 서리며 입가에 매력적인 주름이 움푹 자리 잡았다.'“그럼 간단하게 식사나 하고 헤어질까요?”'“어머, 잘못 알아들으셨나 보다.”'주리가 건드리면 톡! 망울져 터질 듯한 상큼한 오렌지같이 톡톡 튀는 말투로 대답했다. 너무나도 상큼한 아가씨다. 남자가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주리는 상큼하고 발랄했다.'“무슨 말인지?”'“지금 당장 결혼할 생각은 없다는 말이었어요.”'생글거리며 주리가 웃었다. 그 모습이 다소 영악해 보인다고 생각하며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아주 약간……여자는 생각했던 이미지와 달랐다.'“그 말은?”'“결혼하고 싶다는 말이 아니었어요. 만나 보고 싶다는 말이죠.”'주리가 그녀 특유의 생글거리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보오얀 양 볼에 움푹 볼우물이 파였다. 특기라면 특기라고 할 수 있는 초필살 무기, 미소를 앞세우며 주리는 깜찍하게 꿈틀거리는 검은 속내를 감췄다.'“나와 만나고 싶다는 말입니까?”'“그럼 누가 있겠어요?”'만만치 않은 상대다. 남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깔끔하고 쉽게 끝이 날 것이라 예상했던 자리가 의외로 복잡해지고 있었다. '“이유는?”'시계의 초침이 째깍째깍, 잘도 흘러간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자꾸만 바보 같은 질문을 자신보다 한참은 어린 여자한테 하고 있었다.'“그 이유를 물어봐야 알겠어요?”'기가 막힌다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말투는 충분히 그랬다. 생글거리며 예의로 포장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녀는 스물하고도 셋. 아직은 10대의 티를 채 벗지도 않은 어린 소녀였다. '“싫다고 하면 보쌈이라도 해서 데려가려는 마음으로 나왔으니까 거절하려면 아예 말조차 꺼내지 말아요.”'조금은 단호하다 싶은 주리의 말에 그는 그저 미간을 찡그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쪽이…….”'“주리.”'“?”'“주리라고요, 내 이름. 안주리.”'“아, 주리 양.”'이름 뒤에 당연하다는 듯 ‘양’이라는 호칭을 써서 어린아이 취급하는 그의 모습에 울컥, 반감이 들었지만 애써 무시하고는 고개를 바싹 들어 올렸다. 하마터면 표정을 확 구겨 버릴 뻔 했다.'“주리 양이 어려서 지금 잘못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스물 셋이면 어리지 않아요. 성인이죠.”'“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