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책상의 휘어진 다리가 건조한 마룻바닥을 긁고 할퀴었다. '-끼이익, 끼이익.'불쾌한 소리는 두 귀를 틀어막고 싶을 만큼 계속 이어졌다. 두 귀를 막는 대신 여자는 책상의 모서리를 힘껏 부여잡았다. 가냘픈 몸이 속수무책으로 흔들렸다. '‘차라리 죽여 줘.’'자그마한 여자의 입술이 연신 달싹거렸다.'‘멈춰. 제발 멈추라고.’'허나 소리 없는 외침은 공허한 가슴에 메아리만 남길 뿐이었다. 푸른 멍 자국으로 뒤덮인 여자의 손이 책상 위에 놓인 스탠드로 향했다. '‘죽어. 너도 나도.’'순간 잠든 아이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지유, 자신의 딸이자 이 남자와는 무관한.'“너 참 지독한 여자야.”'‘그러는 넌…… ?’'여자의 얼굴에 슬며시 미소가 번졌다. 남자의 말은 마치 신호와도 같았다. 겁탈하듯 욕정을 채우고 자신의 것을 분출할 때 남자는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니나 다를까, 화끈거리는 다리 사이로 미끈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구역질 나. 너도 나도.’'책상 위에 엎어진 여자의 시선이 창으로 쏟아지는 달빛을 무심히 뒤쫓았다. '‘선우 오빠.’'그리운 이를 부르는 윤의 악몽은 아직……끝나지 않았다.''남자의 팽팽한 시선이 굳게 닫힌 서재의 문을 끈질기게 두드렸다. 벌써 두 시간째, 허나 지난 이 년의 세월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 시간이었다. 저 문 너머에 윤이 있다. 자신의 여자가, 자신의 아내가. 자신의 형을 사랑했던 한 여자가. 굳게 닫힌 서재의 문이 마치 윤의 마음과도 같았다. 두드리고 깨부숴도 절대 열리지 않는 윤의 마음,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죽을힘을 다해 버텼다. 자신의 여자이기 때문에. 되찾을 것이었다. 자신의 아내가 된 것이 마땅한 이 바보 같은 여자를. 시우의 서글픈 눈동자가 옛 기억을 회상하듯 깊어졌다. ''지독한 악몽은 햇살 좋은 어느 날 운명처럼 시작되었다. 국내 굴지의 기업인 선우와 유성, 명실상부한 두 그룹은 정, 재계의 1, 2위를 다투며 국내외의 경제를 움직였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허나 선대 회장부터 친분이 있던 두 그룹은 사이가 돈독하고 집안의 왕래가 잦은 편이었다.'“시우야.”'같은 반 친구인 윤이었다. 선우 윤, 웃는 모습이 참 예쁜 아이. 선우 그룹의 금지옥엽 외동딸이자 자신과는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던 친구. 과연 윤은 알고 있을까? 윤의 이름을 부르던 순간 자신의 심장이 얼마나 떨렸는지, 같은 반이 되기 위해 자신이 어떠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는지를. 두근거리던 시우의 심장이 윤의 한마디에 차갑게 굳어갔다.'“시우야. 선우 오빠와 나, 마치 운명 같지 않니? 선우 윤, 윤선우. 오빠 이름 속에 내가 있고, 내 이름 속에 오빠가 있잖아.”'원망스러웠다. 자신의 존재가, 자신의 운명이. 난생처음 시우는 엇갈린 시련을 안긴 하늘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윤선우. 자신의 형이자, 윤의 첫사랑. 엇갈린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