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죽어버린 듯 창백한 낯빛이긴 하지만, 방 안에서 미동도 없이 누워있는 이는 아직 숨을 거두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장례식장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가 집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답답하고 억눌린 긴장감들이 한데 뭉쳐 꾸물거리는, 그래서 굳게 닫힌 육중한 문 밖에 모인 이들은 가느다란 숨소리조차 흩어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사전에 미리 약속이라도 해놓았던 것처럼, 방문만 뚫어져라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전국 5대, 수도권 3대 폭력조직중 하나로 꼽히는 ‘백상파’ 중간 보스들이, 그들의 우두머리 김문후가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접한 것은 밤 11시경, 즉 그때로부터 약 4시간 전이었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던 이들도 있었고, 한창 여자를 옆에 낀 채 즐기는 중이었던 이도 있었다. 연락을 받을 당시의 상황이 어땠던 간에, 그들은 모두 한달음에 용인으로 내려왔다. 마침 서울에 볼 일이 있어 집을 비웠다던 김문후의 아들도 굳은 얼굴로 얼마 있지 않아 집에 들어섰다. '한적하기 짝이 없는 용인의 외곽지역이 단 몇 시간 만에, 하나같이 검은 양복을 입고 험상궂은 인상을 한 사내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준비를 하는 게 좋겠구먼.”'김문후의 심박 수와 맥박을 체크하고 눈을 뒤집어 초점 없는 눈동자까지 꼼꼼히 살펴본 후 그의 주치의 황동희 박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더 이상은 목숨을 이어갈 가망성이 극히 낮다는 뜻이었다. '곁에서 차분하게 황 박사의 움직임을 따라잡고 있던 견후는 무겁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나름대로 축복이라고 생각하게. 잠든 채 가는 것이 망자(亡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라 하잖는가.”'위로라도 할 생각임이 분명한 황 박사의 말을 들으며 견후는 아버지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겉보기엔 이미 죽은 사람 같았다. 밤늦은 시간, 수원으로부터 급히 달려오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한 황 박사 역시 이미 손을 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견후는 잠자코 한 걸음 다가서, 아버지의 목 아래까지 단단히 이불을 덮어 주었다. 이제 곧 아버지의 죽음을 맞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해서인가, 유난히도 몸이 싸늘하게 느껴진다. 다시금 물러서며 그는 협탁 위 시계를 주시했다. 벌써 새벽 4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