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아침이었다. 학교에 가려고 나오던 지아는 축축한 공기가 불쾌한지 인상을 쓰며 다시 안으로 들어가 신발장에 처박혀 있던 군청색의 2단 우산을 꺼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터라 퀴퀴한 냄새가 나서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워낙에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아침부터 기분이 축 가라앉았다. '학생들의 등교 시간과 회사원들의 출근 시간이 겹쳐져선지 버스는 만원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몸이 부대끼는 것은 둘째로 치고 누군가의 젖은 우산이 이따금 교복에 닿을 때마다 찝찝함과 짜증스러움에 당장이라도 버스에서 내리고 싶었다.'발목에서 접은 새하얀 양말엔 벌써 구정물이 몇 방울 떨어졌다. 여학생들은 검은색 납작 구두를 신으라는 교칙이 도대체 몇 년 전통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학생회장이 된다면 꼭 바꾸고 싶은 교칙 중 하나였다. '‘3학년씩이나 돼서 그런 귀찮은 일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급우들이 귀찮은 일을 떠밀다시피 해서 지금 반장으로 있지만 번거롭기만 했다. 임원 일은 수차례 경험을 했기 때문에 능숙하게 했지만 본격적으로 수험 태세에 돌입하는 내년에는 절대 임원을 맡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이럴 때는 종종 요령이 좋은 동생이 부러웠다. '끼이익! 버스가 급정거하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앞으로 쏠렸다. 지아는 사람들에 파묻혀 하마터면 질식할 뻔했다. '겨우 버스에서 내려 우산을 펼치고 교문에 들어섰다. 비가 내리는데도 학생주임과 선도부원들은 우산을 쓰고 학생들의 복장 검사를 하고 있었다. '“오, 지아 이제 오냐?”'“안녕하세요.”'국어 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학생주임은 지아를 바로 알아보았다. 잠시 그녀를 훑은 후에 고개를 합격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이놈의 새끼, 귀에 달린 게 뭐야?”'방금까지만 해도 지아에게 상냥하던 학생주임은 그녀 뒤로 교문에 들어서던 한 남학생을 발견하고는 벼락같은 음성으로 호통을 쳤다. 귀고리를 찬 남학생은 학생주임에게 귀를 붙잡혀 질질 끌려갔다. 선생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남학생이 손아귀에 꼭 붙들려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웃겨서 다른 학생들도 키득키득 웃었다. '지아 역시 빙그레 웃다가 시간을 확인하고는 걸음을 서둘렀다. 현관에 다다를 때 즈음, 낯익은 뒷모습이 보였다. 같은 반의 남학생 두 명이 아무런 무늬가 없는 까만 우산을 함께 쓰고 있었다. '운동 부원답게 군인처럼 머리를 짧게 깎은 남자 아이는 최태원, 벌써 여러 스카우터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열혈 야구 소년이었다. 그와는 정반대로 명백히 교칙 위반을 한 긴 머리카락을 눈에 띄는 밝은 갈색으로 염색하고 셔츠는 바지 밖으로 다 빼놓고 넥타이는 입학식 때 이후로 맨 적이 없는 날라리는 태원과 어릴 적부터 친구라는 강인혁이었다. '그의 성격이 나빠서 함부로 그를 건드리려고 하는 학생들이 없었다. 인혁의 모친이 유명한 영화배우라는 소문을 듣긴 했는데 지아는 그런 것이 저토록 불량스럽게 행동해도 될 만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태원이 현관 앞에서 우산을 탁탁 털어내고는 접었다. 일자형의 우산은 태원에게 작아 보였다. 저렇게 한 덩치씩 하는 남자애들이 우산을 함께 써도 괜찮았을지 의심스러웠는데 아니나 다를까, 인혁은 왼쪽 어깨가, 태원은 오른쪽 어깨가 젖어 있었다. '다 큰 남자 두 명이 한 우산을 같이 쓰는 건 꼴불견이었다. 우산이 체형보다 훨씬 작다면 더더욱. 본인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인혁이 태원의 가슴을 주먹으로 치자 태원은 키득거리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