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여야, 디야…….”'해로가(硏露歌)를 구성지게 노래하는 초로노인의 목소리를 선두로 뒤를 따르는 사람들의 훌쩍거림이 간헐적으로 터져 나왔다. 한 사람의 죽음 뒤에는 남은 자들의 무수한 감정이 요동친다. 슬픔의 몫을 가진 이도, 그렇지 않은 이라도 죽음을 애도하는 눈물에 대해 세상은 관대하다.'상여가 비탈진 산길을 느릿하게 올라갔다. 힘이 센 장정의 어깨에 메인 상여 위의 꽃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불꽃처럼 타올랐다. 건을 쓴 남자들의 손에 들린 긴 만장 역시 죽은 이를 안타깝게 배웅하듯 바람에 서글피 흔들렸다. '“보현아!”'어린아이를 위한 소복은 없었는지 몇 겹을 접어 올린 소매 단과 땅에 질질 끌려 이제는 흙물이 들어버린 치마를 입은 채 어정쩡하게 걷던 아이가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며 희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녀에겐 늘 친절한 숙모의 다정한 부름에 어른들의 보폭을 힘겹게 뒤따르던 발걸음이 멈추었다. '“안 힘들어? 이리와, 숙모 손잡고 가자.”'“네.”'죽음이 뭔지나 아는 나이일까.'겨우 7살,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녀야 할 나이였다. 세상의 슬픔이 뭔지를 이미 알아버린 텅 빈 눈빛을 보일 나이가 아니라. 보현의 다소곳한 대답에 그녀는 가슴이 메어왔다. 왈칵 치미는 눈물을 간신히 참고 내민 손을 보현은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왜?”'“숙모님도 힘드시잖아요.”'“난 괜찮아.”'그제야 비로소 그녀의 손에 고사리처럼 앙증맞은 손을 얽어오는 보현의 수줍은 모습에 참다못해 기어코 한숨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아버지가 죽었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보현은 꼭 해야 할 말이 아니면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워낙 경황이 없던지라 보현에게까지 신경을 쓰는 사람이 없었다. 겨우 숨을 돌리고 장지로 향하는 어른들 사이에 끼어 있는 보현을 보는 순간, 그녀는 애달픔이 뭔가를 깨닫고 있었다. 죽음에 대한 슬픔을 온전히 터트리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잠시 멈췄던 눈물샘을 터트리고야 말았다.'“이 어린것을 두고…….”'그녀의 혼잣말을 듣기라도 한 듯 몇 걸음 앞장서 걷던 미망인 문 씨가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았다.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 한 손에 들고는 한을 풀어내듯 아이고, 아이고 하며 이미 장례식장에서 익숙하게 듣던 곡소리를 구성지게 흘렸다. 마치 주변의 시선을 모으느라 애를 쓰듯 점점 커지는 문 여사의 곡소리는 산비탈을 힘겹게 오르는 사람들의 귓가를 애잔하게 파고들었다.'“꽉 잡아.”'어머니의 눈물에 선뜻 다가가지도 못하고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는 보현이 안타까워 그녀는 걸음을 떼며 말을 했다.'“고맙습니다.”'똑 부러지는 보현의 말투에 그녀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고사리 같은 여린 손을 잡고 망자를 애도하는 미망인의 통곡 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걸음을 옮겼다. 누가 해주었는지 단정하게 빗은 보현의 머리엔 선을 긋듯 단정한 가르마가 타져 있었고, 그 선을 경계로 양 갈래로 묶었다. 보현의 머리 위로 나무 사이를 파고든 햇살이 쨍 쏟아져 내렸다.'선산에 정해놓은 장지에 오르자 포클레인이 와서 미리 작업을 해놓았는지 벌건 흙이 파헤쳐져 있었다. 상여를 메고 있던 사람들이 같은 힘을 주어 내려놓자 얇은 종이로 만든 꽃들이 낙화를 하듯 파르르 떨림을 내보였다.'장례식장을 오가던 사람보다는 훨씬 숫자가 적은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예전부터 했을 그대로의 절차를 차근차근 밟아갔다. 그녀의 손을 놓고 네모반듯하게 파놓은 구덩이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보현이 깊이를 가늠하듯 가까이 다가가 내려다보다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이리 와.”'그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쪼르르 다가와 보현이 놓았던 손을 다시 잡았다. 절대적으로 그녀를 믿는다는 말처럼 결연해 보이는 몸짓에 보현의 단정하게 묶인 머리를 나머지 손으로 부드럽게 쓸었다.'“저렇게 울기만 하면 어쩌누, 얼른 제를 올리고 일을 해야지.”'집안의 어르신이 하염없이 통곡을 하며 몸부림치고 있는 미망인을 향해 걱정을 했다. 그녀의 눈이 서럽게 통곡을 하는 보현의 새엄마이자, 자신의 손위 동서를 바라보았다. 하긴 시집온 지 불과 2년도 채 되기도 전에 다시 홀로 되었으니 그 설움이 오죽할까 하는 안쓰러움이 밴 눈빛이었다. 몇 명이 붙어 미망인을 다독이며 울음을 잠재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녀의 곡소리는 시위를 하듯 점점 더 커졌고 사람들의 손길을 거부하듯 거친 몸부림까지 해댔다.'“아이고…… 보, 보현아…… 보…… 현아, 이리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