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러다 말겠지 했던 가랑비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윤이안은 하나비가 아까 우산 없이 외출한 것을 알고 있었다. 걱정이 되었다. 이유는 굳이 스스로에게 묻지 않아도 이젠 너무 명확했다.'“형, 나 좀 나갔다 올게. 시간 걸릴지도 모르니까 그 사이에 무슨 일 있으면 핸드폰으로 연락해.”'“……알았어.”'무작정 우산을 들고 나섰으나, 그는 그녀의 행선지조차 몰랐다. 자가용이 없으니까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이다. 버스일까. 지하철일까?'지하철역은 집에서 십 분 정도 거리였지만 버스 정거장은 가까웠다. 고민하던 이안이 고개를 흔들고는 마음을 정했다.'“…….”'지하철 역 앞에서 기다리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두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삼십 분만 더 기다려보고 그때도 안 오면 가게 들러서 하나비가 집에 왔는지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하던 때, 누군가가 뒤에서 그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어? 이안 씨가 여긴 웬일?”'다행히,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이안은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억지로 감추지 않았다.'“나비 씨, 기다리고 있었지.”'“……응?”'갑작스런 친절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이유를 묻는 대신 또 평소처럼 말을 돌렸다.'“얼마동안 여기 서 있었던 거야? …… 전화라도 하지.”'“전화하면?”'그가 빤히 자신의 얼굴을 쳐다본다. 나비는 시선을 피했다.'“안 알려줬겠지. 나오지 말라고 했을 거잖아.”'“그건 그렇지만.”'그녀가 낮게 수긍했다. 우산을 건네받고, 두어 발자국 걷던 나비가 음음, 하고 목소리를 추스른 다음 반쯤 책망하는 어조로 그에게 물었다.'“만약 버스 타고 오는 거였으면 어쩌려고 여기서 이러고 있었어?”'“그럼 할 수 없는 거지 뭐.”'남 말하듯 선선히,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이안이었다. 덕분에 다시 할 말이 궁해진 나비는 그저 입을 다문 채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보다, 감동했지?”'불쑥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질문은 무심코 발로 찬 작은 돌이 연못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듯, 그렇게 무심한 감각이었다. 나비는 멍한 표정이 되었다.'“응?”'“감동했지?”'재차 묻는 이안 때문에 이번엔 조금 당황한 그녀가 어색하게 뒷목을 긁적였다.'“아, …… 뭐. 그랬어. 조금.”'“그럼, 상 줘야지.”'“응?”'계속해서 엉뚱한 방향으로 튀는 대화에 나비는 또 바보 같이 되묻고 말았다. 그러나 아까처럼 같은 말을 친절하게 반복하는 대신, 그가 우산을 기울였다. 행인들의 시선을 차단하듯이.'“…….”'“…….”'우산대를 쥐고 있는 것은 그의 오른손이었다. 아까 나비에게 여분의 우산을 준 이후로 줄곧 비어 있던 그의 왼손이 천천히 올라왔다. 그리곤.'나비 손에 들려 있던 사탕을 냉큼 빼앗았다.'“잘 먹을게.”'줄곧 혼란스럽던 나비는 그의 짧은 인사와 짧은 미소에 가까스로 평정을 차릴 수 있었다. 눈을 깜빡인 그녀가 그의 우산을 부드럽게 밀어내면서 이안에게 물었다.'“…… 어? 아. 근데 그걸로 괜찮겠어?”'“응.”'당연하게도, 그가 그녀에게 원하는 건 고작 사탕 따위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은 무리니까. 이안은 그녀를 향해 산뜻하게 웃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