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릴라 이야기''''''1'''''''그는 나의 태양이었으나, 나는 태양이 아닌 짙은 암흑이었다. 내 어둠으로 태양 같은 그를 파멸시켰다. 그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어머니, 저 좀 보세요.”'' 집 안 화덕에서 음식을 만들던 여인이 고개를 들자 집으로 돌아온 아들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찬찬히 아들의 얼굴을 살폈다. 표정을 보니 심상치가 않았다. 그녀는 손을 털고는 아들이 기다리는 의자로 가서 앉았다.'' “무슨 일이냐? 양들이 네 말을 듣지 않느냐?”'' “…….”'' “말 못할 사정이라도 있는 거냐?”'' “먼저 약속을 해 주세요. 제가 무엇을 묻더라도 꼭 진실을 이야기해 주신다고 말입니다.”'' “질문이 무엇인지 알아야 대답을 하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응수하기는 했으나 가슴 한가운데가 철렁 내려앉는 것을 경험한 그녀는 침착해 지려고 애썼다. 놀란 심장은 급격하게 피를 내뿜으며 순환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녀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아들을 쳐다보았다. 어느새 어린 티는 사라지고 성숙한 청년의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아버지를 닮아 골격이 크고 남자다운 얼굴…. 갑자기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그녀는 서둘러 눈물을 훔치고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던 아들이 불쑥 한 마디를 내뱉었다.'' “제 아버지는 누구입니까?”'' “그건…….”'' “말씀해 주세요. 오늘은 꼭 진실을 알아야겠습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험한 골짜기에서 따로 지내야 하는 겁니까? 왜 주변 사람들이 저만 보면 놀라 파랗게 질려 도망가는 거지요? 제 아버지는 누구입니까? 뭐 하는 사람이지요? 왜 모든 사람들이 저만 보면 부들부들 떨면서 도망가는 겁니까? 이유가 뭐지요 어머니?”'' 그녀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이제 아들은 성인이었고 더 이상 숨길 수도 없었다. 두려워하던 때가 되었다. '' “샤마슈, 내 아들아. 너는 결코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를 두었다. 그러니 화를 내지도, 슬퍼하지도 마라. 네가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네 아비가 아니라 바로 나다.”'' 샤마슈는 슬픔에 잠긴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장성한 아들을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퇴색하지 않은 화려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붉은빛이 도는 찬란한 금발은 그 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색이었으며, 섬세한 이목구비는 아직도 뭇 사내들의 애간장을 녹일 만큼 수려했다. '' “무슨 말이지요, 어머니? 상세히 말씀해 주세요. 전 알아야겠습니다. 제겐 그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 말이 맞다. 그래… 벌써 20여 년 전의 이야기 구나. 그 때 당시 나는 너무나도 어렸단다….”'''''' “무슨 일이야 언니? 왜 우는 거지?”'' 데릴라는 눈물로 범벅된 니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니나는 침대에 엎어져 울다가 안으로 들어선 동생을 보고 그녀를 부둥켜안았다.'' “어쩌면 좋아…. 아버지가 내 결혼을 결정하셨어.”'' “뭐라고?”'' 데릴라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언니가 같은 마을에 사는 가난한 석공 라무와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라무가 너무나도 가난한 청년이어서 아버지가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 발 더 나아가 낯선 사람과의 결혼을 밀어붙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 사람이 누구야? 누구기에 완강한 아버지가 그리 쉽게 결혼을 승낙한 거지?”'' 데릴라의 추궁에 니나는 눈물을 머금은 조그만 목소리로 답했다.'' “그는 우리와 달라. 유대인이야.”'' “말도 안 돼! 어째서 아버지는 그런 사람에게 언니를 보내려 하는 거지? 유대인보다 라무가 백배는 나아!”'' 데릴라의 높은 목소리에 니나의 목소리는 더욱 작아져 나중에는 웅얼거림으로 바뀌었다.'' “그 사람은…, 비록 유대인이지만…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어. 우리 부족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단 말이야. 그래서….”'' “언니는 그 사람을 알아?”'' 니나의 고개가 위 아래로 움직였다.'' “가자의 성읍에서… 그와 마주친 적이 있어.”'' “그래서 그 남자가 언니를 보고 홀딱 반해버린 거야? 아버지는 그 남자가 무서워서 결혼 요청을 거절하지 못한 것이고, 지금 언니가 울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거란 말이지?”'' “그래.”'' 데릴라는 얼굴을 찌푸린 채 니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언니는 너무나도 곱고 고와서 누군가 꼭 보호를 해 주어야만 살 수 있는 여자였다. 같은 여자의 눈으로 보아도 언니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녀에게는 남자들의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묘한 힘이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그 남자는 아마도 언니의 그 점에 반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언니는 그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정말 싫은 거야? 한 번 더 아버지에게 말해 보면 안 될까?”'' “안, 안 돼!” ''니나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데릴라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언니는 외모만 나약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심성 역시 너무나도 나약했다. '' “그런 짓 하지 마 데릴라. 큰 일이 날 거야. 그 남자는……. 자신을 거부하는 사람을 용납할 성격이 아니야. 그를 거부한다면 우린 모두 죽을지도 몰라.”'' “그런 게 어딨어!”'' “그 남자는 우리 부족들이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야. 만약 내가 그의 결혼을 거절한다면… 그 사람을 두려워하는 우리 부족 사람들에게 미움을 살 거야.”'' 니나의 말은 얼굴도 모르는 낯선 남자에게 격렬한 반발심이 들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대체 그 남자가 무엇이기에 평화로운 이 가정을 이렇게 뒤흔들어 놓는지 데릴라는 용납할 수 없었다. '' “그 잘난 남자 이름이나 알자.”'' “삼손(태양 같은 사나이 또는 작은 태양)이라고 해.”'' “삼손? 웃기는군. 언니는 그럼 그 남자에게 아무 감정도 없는 거지?”'' “그건…….”'' 이상하게도 니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데릴라는 이상한 언니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했다. '' 이건 또 무슨 반응이지?'' “왜 그래? 강제로 하는 결혼이라며? 그래서 울고 있던 것 아니야?”'' 데릴라의 물음에 니나가 한숨을 쉬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동생의 순진해서 더욱 날카로운 눈망울을 바라보며 이런 묘한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였다.'' “그 남자는… 뭐랄까… 강렬한 힘으로 뭉쳐진 남자야. 그 매력은 말로 다 할 수는 없지만 여자라면 누구나가 반할 정도지. 강한 야성미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그 남자를 보면 가슴이 너무나도 두근거려. 그건 마음과는 상관없는 본능이란 거야. 데릴라, 넌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그에 비해 라무는 생각만 해도 좋은 그런 사람이야. 그를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고….”'' 니나는 두 손을 꽉 쥐고 꿈을 꾸는 것 같이 몽롱한 눈을 하고 있었다. 데릴라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언니는 결혼을 좀 더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었다. 데릴라가 고개를 흔들자 아름다운 금발이 흔들렸다. 니나는 동생을 바라보면서 미소 지었다.'' “알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겠지. 사실 나도 마찬가지니까. 휴… 넌 조금만 더 크면 정말 엄청난 미인이 될 거야 데릴라. 다섯 성읍의 모든 남자들이 네 발밑에 무릎을 꿇을 것이고 아버지는 누구를 사위로 맞이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하시겠지. 네가 조금만 더 큰다면 내 마음을 알 수 있을 거야.”'' “무슨 소리야? 언니만큼 예쁜 사람은 없어. 난 이렇게 이상한 머리색을 하고 있는걸.”'' 니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투덜거리는 데릴라를 바라보았다. 아직 채 피어나지 않았지만 이, 삼 년만 지난다면 동생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다. 갑자기 치솟는 감정으로 인해 니나는 동생을 다시 꼭 끌어안았다.'' “알지?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넌 내 친동생이나 마찬가지야. 내 걱정은 하지 마. 잘 될 거야. 그렇게만 생각하자.”'' 데릴라는 니나의 말에 언니를 꼭 끌어안았다. '' 사실 두 자매는 친자매가 아니라 사촌 간이었다. 데릴라의 아버지는 전쟁 중에 사망했고, 어머니는 산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아가 된 데릴라를 거둔 것이 바로 니나의 아버지였고 둘은 친자매보다 더한 애정으로 이어져 있었다.'' “언니, 그럼 한 가지만 약속해 줘.”'' “응?”'' “꼭 행복하겠다고 말이야. 어떤 상황이라도 행복하겠다고 약속해 줄 수 있어?”'' 니나는 부드럽게 웃었다.'' “알았어.”'''''' 데릴라는 베일을 쓴 채 몰래 결혼식을 훔쳐보았다. 풍속에 따라 결혼식에 공공연하게 얼굴을 내밀 수는 없었지만 언니가 말한 그 삼손이란 남자가 너무나도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데릴라는 문 뒤에 숨어 남자들만 가득한 그곳을 차근차근 눈으로 훑으며 살폈다. 수십 명의 남자들이 모였지만 문제의 남자를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 그는 기골이 장대했다. 대강의 눈어림만으로도 다른 남자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놀랄만한 거구임에도 불구하고 우둔해보이기는커녕 민첩하기 그지없었고, 행동 하나하나에도 자신감과 힘이 넘쳐났다. 데릴라의 예리한 눈이 그의 얼굴을 주목했다. 특이하게도 그는 검고 긴 머리카락을 묶지 않고 어깨 너머로 늘어뜨려 야성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데릴라는 꼼꼼하게 남자의 표정을 살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의 짙은 눈썹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 너무나도 남자답고 멋진 사나이였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순순히 인정했다. 일부러 드러내려하지 않아도 그의 온몸은 잘난 사내라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그 때였다. 잠시 동안의 침묵을 깨고 한 사나이가 그에게 시비를 걸었다. 데릴라는 그 사람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는 바로 언니 니나의 연인이었던 라무였다.'' “어서 드시오. 결혼을 했으면 당연히 축하주 한잔은 해야지. 이 딤나(마을 이름) 최고의 미인을 데려갔으니 술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나는 술을 못합니다.”'' 라무는 그의 대답을 듣자 더욱 빈정댔다. 사랑하는 여인을 빼앗긴 질투심이 그의 목소리 속에 배어들었다.'' “용사로 소문난 당신이 술을 못한다니, 그 말을 믿으란 말입니까? 혹시 우리와 어울리기 싫어서 그런 핑계를 대는 것은 아닙니까? 분명 우리는 당신네 부족과는 풍습이 다르지요. 그러나 당신이 우리 부족의 여인을 아내로 맞이해 지금 이 자리에 있다면 우리의 풍속을 따라야 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술을 즐기는 사람들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옳소! 옳소!”'' “당연한 말이오.”'' 가뜩이나 삼손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남자들이 라무의 말에 동조했다. 삼손은 더욱 인상을 찌푸렸다. 분명한 도발이었다. 그것을 잘 알지만 아직 젊은 그는 태연하게 넘길 수가 없었다. 그의 말투가 거칠어졌다.'' “그래? 그 반대가 아닐까? 니나가 나의 아내가 되었다면 그녀가 나를 따라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삼손의 말에 의기양양했던 라무의 인상이 딱딱하게 굳었다. 분위기는 점점 험악하게 흘러갔다.'' “당신네 관습이라는 것이 대체 뭐요? 신부의 집에 구혼하러 오는 데 아버지도 없이 달랑 혼자 찾아와 결혼 승낙을 받는 것? 아니면 결혼식에 신랑 측에서 단 한 명의 축하 하객도 참석하지 않은 것? 내 이 말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당신이 이렇게 나오니 해야겠소. 우리는 들러리 없이 혼자 온 당신을 이해할 수 없소이다. 당신은 부모에게 결혼승낙을 받은 것이오? 아니면 모든 것을 독단으로 결정한 것이오? 엄연히 우리는 당신네 부족 사람들 대신 결혼 들러리를 선 것이고, 당신은 우리를 접대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오. 그런데 청을 들어주기는커녕 분위기를 망치려 들다니?”'' 삼손은 라무의 적절한 지적에 할 말을 잃었다. 그가 지적한 부분은 삼손도 반박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삼손의 자존심을 심하게 긁었다.'' “좋아. 술 동이를 가져 와.”'' 삼손이 험악하게 외치자 시종이 서둘러 술 단지를 가져왔다. 삼손은 시종 둘이 낑낑대고 가져온 술 단지를 가볍게 한 손으로 들고 가득 담겨 있던 포도주를 남김없이 다 마셔버렸다.'' “이제 됐나? 그렇다면 내 할 도리는 다 한 셈이지?”'' “…….”'' 삼손의 고압적인 눈빛 하나에 사람들은 모두 침묵을 지켰다. 데릴라는 이 광경을 빠짐없이 살펴보았다. 그는 엄청난 에너지를 내뿜는 남자였다. 한 순간에 수많은 남자들을 제압한 그의 기세는 정말 대단했다. 그녀는 장정 둘이 들기에도 무거운 술 단지를 가볍게 한 손에 들어올린 남자를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정말 탐나는 남자였다. 가슴이 절로 뛰기 시작했다. 그제야 데릴라는 언니의 말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 그 남자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려. 그것은 본능이야.'' 그러나 그는 가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 데릴라는 그만 눈을 뗐다. 더 이상의 호기심과 관심은 자신을 위해서도 위험한 일이다. 그녀는 언니 니나가 들어가 있는 신방에 들어가는 삼손의 뒷모습을 우울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 그는 언니의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