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뭐?”' 진우는 순간 귀에 들린 서희의 말에 멈칫하던 그는 양주잔을 쥐고 있던 손을 멈추며 되물었다. 소파에 앉아 자신의 앞에서 굳은 표정으로 서있는 서희를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주욱 훑어봤다. 저 여자 입에서 방금 나온 말이 과연 사실일까? ' 놀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던 진우는 그녀를 만났던 그 날을 떠올렸다. ' ' 서희는 눈앞에 보이는 거뭇한 물체에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힘이 다 빠져버렸는지 축 늘어진 채 시멘트 바닥에 엎드려있던 물체는 곧 떨리는 팔로 땅을 짚어 일어나려고 안간힘 쓰는 듯 했다. 그러나 연거푸 물체는 엎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시력이 안 좋은 그녀는 꽤 오랫동안 지켜본 후에야 그건 쓰레기 더미가 아니라 사람이란 걸 알아차렸다. 원래 모르는 사람의 일에는 참견하지 않는 것이 좋다. 거기다 저 사람은 이 늦은 시간에 골목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이다. 흘러내리려는 책들을 고쳐들며 서희는 힐끔 쓰러져있는 사람을 쳐다보다 이내 고개를 돌려버린 채 다른 길 쪽으로 향했다. ' “야…….”' 겨우 목구멍에서 목소리를 긁어 모아내는 소리마냥 쇳덩이들끼리 긁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미 쉴 대로 쉬어버린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자 서희는 자연스레 인상을 구겼다. ' “크윽……. 너는 사람이 다 죽어가는 데도…….”' 남자 목소리에 서희는 뒤로 돌아 그를 쳐다봤다. 배를 움켜쥐고 힘겨워하는 남자의 모습에 차츰 서희의 시선이 배를 움켜쥔 남자의 손으로 떨어진다. 피였다. 검붉은 피가 셔츠를 적셔가고 있었다. 겨우 눈만 한번 크게 뜨고는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와 버리는 서희는 저 남자가 자신에게 함부로 행동할 수 없는 입장이란 걸 깨달으며 그에게 서서히 다가간다. 여전히 어떻게든지 몸을 일으키려고 버둥거리는 남자는 서희가 다가오는 발소리를 듣게 되자 더욱더 살기 위해 버둥거리는 것 같았다.' “아직 안 죽었네요.” ' “뭐?” ' “이 정도 출혈이면 죽어야할 텐데 그 목숨 한번 질기네. 나만큼이나…….” ' “빠……빨리 핸드폰이나 꺼내서 구급……차.” ' “핸드폰 없어요.”' “뭐……. 너 원시인이냐.” ' 그녀를 올려다보는 남자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며 입 안에 가득 고인 피를 ‘퉤’하고 뱉어냈다. 피를 보면서도 어떠한 동요 없이 말을 내뱉는 서희를 보며 그녀가 어쩌면 정상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교복이었고, 그 지역에서 가장 공부 잘한다는 명문 국립고였다. ' “…….”' 남자가 입고 있는 옷 역시 교복이었다. 서희는 그가 학생이며 자신의 또래일 거라 추측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기다려 봐요. 꽤나 살고 싶어 하는 눈치니까……. 근처에 공중전화가 있으니까 구급차 불러줄게요.” ' 책 더미를 시멘트 바닥에 내려놓고 뛰어가는 서희의 뒷모습을 보며 남자는 그녀가 과연 말대로 돌아오기나 할까 생각했다. '' 젠장. 토낀 거야 그 여자애? ''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서희로 인해 진우는 고통스러운 배를 움켜쥐고 시야가 점점 뿌옇게 변해감을 느꼈다. 아무리 기다려도 구급차 달려오는 소리는커녕, 그 여학생이 돌아오는 발자국 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